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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라 Nov 08. 2022

힘을 빼기

초보운전 이야기

한 달 전 운전 연수를 다시 받았다. 네 번째 도전하는 운전 연수다. 지난 달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라는 통지를 받고서야 면허를 딴지 1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간 운전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면허도 땄고, 연수도 받았다. 사고도 냈고, 수리도 했다. 야간 운전, 우중 운전도 했다. 수원에서 제부도도 다녀오고 평택도 다녀오고 동해까지 다녀왔다. 하다못해 운전을 주제로 열한 페이지짜리 에세이까지 썼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아직도 운전하기가 어렵다.

“정지연님은 운전대 잡고 30분 지나야 긴장이 풀리네요.” 하루에 세 시간씩, 삼 일째 연수중에 강사님께 들은 말이다.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고 했다. 운전대도 너무 꽉 쥐고 있단다. 운전할 때 힘이 들어가야 할 곳은 허리와 엉덩이뿐이란다. 발뒤꿈치는 바닥에 고정한 채 브레이크와 액셀도 살살 밟아야하는데 발이 공중에 떠 있어 페달도 세게 밟게 된다고 했다. 고개를 잔뜩 치켜든 채로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잘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학생 때는 시험을 치다 코피를 흘렸고, 아르바이트도 새벽에 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주말에도 일을 했고, 자정 넘어서까지 회식을 했다. 줄기차게 연애도 하고 결혼식도 또래보다 이르게 했다. 아기를 키울 때는 출산 후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은 채로 애면글면했다. 내 시간도 포기할 수 없어 잠도 적게 잤다. 체력이 떨어져 운동을 했는데 초반에 늘 지나치게 힘을 쓰는 바람에 번번이 나가떨어졌다. 병원출입만 늘었다. 잠도 얼마나 곤하게 자는지 험한 꿈이라도 꾼 마냥 입을 꽉 다문 채 깨어나곤 했다.

운전을 시작할 때도 열의에 불탔다. 첫아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 일찌감치 면허를 땄다. 미리 1년은 운전연습을 해야 등하교 때 차량이 몰리는 학교 앞 혼잡구간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의욕만큼 운은 따라주지 않았고 차를 끌고 나갈 때마다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일이 벌어졌다. 운전을 향한 열의는 점점 위축되고 쪼그라들다가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울렁증은 점점 커지고 시동을 걸고 차가 미끄러져 나갈 때마다 수명이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간편한 대안이 있을 때는 힘든 도전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는데다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였다. 환경을 보호한다, 비용을 아낀다 하면서 핑계는 수월하게 쌓여갔다. 그렇게 운전대를 놓고 한동안 차라리 속편하게 지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베스트 드라이버를 향한 열망을 간직했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기 전 일단 드라이버라도 되어야 했다. 운전연수를 거듭하며 이제야 가느다란 실마리를 얻는다.

노련한 사람이 솜씨 좋게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쉬워 보인다. 잘하는 사람들은 남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조금도 수고롭지 않은 듯 쉽사리 이루어낸다. 노래를 잘하려면 일단 몸에 힘을 빼야 한단다.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라나. 악기를 연주할 때도 그렇고 그림을 그릴 때도 선을 긋는 손에 들어가는 힘이 적당해야 잘 그려진다. 힘을 뺄 때 긴장이 풀리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편안함이 비결이었다. 하는 사람도 편하고 보는 사람도 편할 때야 비로소 순조롭다.

운전대를 살며시 쥐어본다. 발뒤꿈치는 바닥에 내려놓고 브레이크에 살짝 발을 얹는다. 이제야 준비가 다 되었다. 큰 기대 없이, 될 때까지 그냥 해보기로 한다. 힘을 빼니 마음이 편하다. 처음에는 기세로 다음에는 추세로 막판에는 힘을 뺀다. 항상 기세만 앞세우고 추세로 이어가지 못했다.  초보운전뿐 아니라 새로이 도전하는 모든 일 앞에서 필요한 자세겠다. 궤도에 올려놓고 습관으로 만들어 마침내 편안해 지는 시간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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