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헬스장 회원 가입을 해 놓고 꾸준히 다니지 못했다. 본전 생각에 가끔 목욕만 하러 다니다 한계를 느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PT(개인 운동 훈련)를 등록했다. 매주 2회씩 가다 보니 어느덧 20회째다.
처음에는 조금만 경험해 볼 생각으로 운동복을 따로 장만하지 않고 편한 옷을 입고 신발도 헬스장에서 신던 걸 그대로 신고 갔다. 지금은 본격적인 운동 모드로 PT 연장할 때마다 운동복, 러닝화 등 장비를 하나씩 장만하고 있는데 꽤 동기부여가 된다.
등이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랫 풀 다운을 하면서 등 근육을 깨워 본다. 옛날 통닭 같은 광배근(활배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등의 힘부터 기르고 싶다. 척추기립근을 바로 세우면 마음의 중심도 든든하게 잡힐 것 같다.
설명을 듣지 않고 기구를 쓸 때는 기구에 붙은 큐알코드를 읽어 영상을 보며 동작을 따라 했다. 겉보기 동작만으로는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흉내만 낸 거였다.
무게를 당긴 다음 밀 때, 순순히 끌려가지 말고 단단히 붙잡고 가라는 선생님 말씀이 신선했다. '힘을 쓸 때는 딸려가지 말고 끝까지 배에 힘을 붙잡고 있으라.' 운동 동작이 아닌 다른 행위를 할 때도 휩쓸리지 말고 중심은 스스로 잡고 있어야 하기에, 마찬가지 아닌가 여운이 깊었다.
멀티 스미스 머신, 전신을 사용하는 기구를 쓰다보면 <키르케> 도입부에 나오는 사슬에 결박된 프로메테우스가 된 기분이다. 운동 안 하고 읽고 쓰고 먹고 생각만 주야장천한 죄가 크므로 운동으로 속죄합니다. 내가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가 얼만큼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PT 후에 유산소를 2~30분간 하고 마친다. 스텝퍼는 처음 시작할 때 3분이 한계였는데 이제 11분까지 할 수 있다. 러닝머신은 가벼운 걷기로 시작했는데 이제 강도 7까지 뛸 수 있다. 조금씩 운동 능력이 향상되어 보람있다.
몸이 많이 굳어 스트레칭이 잘 되지 않지만 선생님의 정교하고 활기찬 동작을 허술하게 허우적대며 따라하기만 해도 땀이 쏟아진다. 누워서 하거나 엎드려 할 때는 익숙한 직립 동물의 시선이 아닌 낯선 시야를 접한다. 목을 쭈욱 빼고 굽어지지 않는 허리를 늘리다보면 실로 한 마리의 거북이가 된 심정이다. 허벅지 근육으로 다리를 접었다 펴며 '개구리는 이거 참 잘 하던데'하고 부러워진다.
들어갈 때면 한 없이 축축 쳐지며 무거웠던 몸이 땀을 쫙 빼고 나오면 어찌나 가벼운지, 이 맛을 보려고 운동을 하는구나 싶다. 인간은 역시 몸을 움직여야 활력이 생기게끔 설계되었나보다.
PT 20회차 인바디 결과를 보니 운동 시작하고 두 달 반 동안 골격근 0.9kg 증가, 체지방 4kg 감소, 기초대사량은 32kcal 증가했다. 관장님이 추이가 좋다고 했다.
명절 전까지는 식단도 꾸준히 했는데, 연휴 이후로 거의 못했다. 배달 앱을 지운 지 3주차인데 장 보고 상 차리느라 식단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20회차 인바디를 재면서 식단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결과가 양호해서 다행이었다.
빵과 단 커피를 좋아하는 나인데, 이제 빵만 먹으면 뭔가 헛헛하다. 단백질이 모자란 느낌을 받는다. 아인슈페너, 화이트모카를 보내주고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환영한다.
두달 반 가량 운동으로 짧아졌던 목이 다시 생겨 반갑다. 이제 잃어버린 허리를 발굴할 차례다.
오늘(3/5)은 경칩(驚蟄),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다. 나의 등과 허벅지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