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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는 것


변변: 이혼을 생각하시게 된 이유가 뭘까요?
구제님: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채팅 앱에, 변태마사지에. 여자가 한 둘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이럴 줄 몰랐어요
변변: 구제님, 남편이랑 연애를 오래 하셨나요?”
구제님: 3년이요
변변: 어떻게 만나셨지요?
구제님: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만났어요
변변: 혹시 교제기간 중에 남편이 바람피우는 일은 없으셨나요?
구제님: 있었어요. 몇 번 걸렸는데 무릎 꿇고 빌고. 저 아니면 안 된다고 죽는다고 해서. 친한 언니가 남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철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애 낳으면 진짜 바람 잡힐 줄 알았어요
변변: 그 친한 언니분은 결혼생활 노하우가 많으신가 봐요?
구제님: 아뇨. 아직 결혼 안 했는데요..





 결혼 8개월 되었을 무렵 친구 부부와 커플 여행을 가게 되었다. 저녁식사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피곤했던 와이프들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남은 남편 둘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이네켄 대용량 맥주 5리터를 소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밤새 주방 식탁에 앉아 술잔을 비워댔다. 


“나는 와이프가 이럴 때마다 진짜 이해가 안 된다.”

“형님. 맞습니다. 저도 경민이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공부할 때 책을 읽고 이해해보려고 하다가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운다 아입니까. 이해가 안 되면 외워야 됩니다. 시험은 쳐야 되니까. 형님, 공부해보셨잖아요. 잘 아시잖아요. 헤헤. 그래서 저는 경민이를 그냥 외우기로 했습니다. 한잔 더 하시 지예.” 


 결혼한 지 1년이 안 된 신혼의 두 커플은 한창 서로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맞춰가고 있던 중이었다.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나는 설핏 잠이 깨어 두 남편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내가 이해 안 된다니 남편의 무지함에 화를 내야 하나, 나를 외우면서까지 받아들여줘서 고맙다 해야 하나.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다 있는가. 그렇다. 결혼은 이렇게 ‘이해 안 됨’과 ‘어처구니없음’으로 남녀가 충돌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자신만의 습관으로 살아온 두 인격체의 결합. 지난한 과거가 나의 습관을 만들었고, 그 습관이 곧 현재의 나이기에 스스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들이 상대방에겐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나의 습관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그 생경한 순간과 정면 승부해야 한다. 실은 단 하나의 ‘다름’으로도 평생을 싸우기에 족하다. 다름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민들레 홀씨는 ‘몰이해’라는 바람을 타고 널리 널리 퍼져나가 수십, 수백 가지 다른 듯 비슷한 상황 속에서 똑같은 패턴의 싸움의 꽃을 피워낸다. 그 싸움 속에서 자기가 옳다고 맹렬히 상대를 설득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해가 안 되니 외울 것인가 혹은 포기할 것인가. 






 이혼상담을 받으러 온 A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에게 나는 왜 연애사를 물었을까? 위자료를 얼마 받을 수 있는지, 불륜 증거 수집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이야기를 왜 하나 의아할 수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에서 찾는다. 구제님의 캐릭터와 히스토리를 파악해야 상대방 캐릭터가 추측되고, 그래야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그 결과 나는 A구제님은 이혼소송을 시작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A구제님은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남자의 바람을 몇 번 목격했다고 했다. 남자는 바람을 피우는 것을 즐기는 습관과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습관과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우리 남편의 말마따나 이해가 안 되니 외우기라도 하자는 각오로도 포용하기 힘들 정도로 ‘바람’은 너무나도 치명적인 습관과 성격이다. 그러함에도 A구제님은 남자가 울며 용서를 구하고 사정하자 마구 흔들리셨다. A구제님은 바람피운 남자 친구와 헤어지라는 직언을 해주는 친구를 거르지 말고, 바람피우는 남자를 걸렀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A구제님은 남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철든다는 친한 언니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혼도 안 해본 지인의 말을 말이다. 지인분이 진지하게 그런 말을 했고, A구제님이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지인분은 A구제님이 이 남자에 대한 미련 때문에 차마 못 떠날 것을 알고, A구제님 마음 편하라고 위로차 듣기 좋은 말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A구제님은 그 위로의 말을 덥석 받아 정말 진실일 거라 굳게 믿는 정신승리를 하고, 연애 단계에서 손절해야 할 남자와 결혼까지 하는 큰 실수를 범하였다. 





 바람 안 피우는 놈은 있지만, 한 번만 바람피우는 놈은 없다. 그런데, 한 번 바람을 용서해준 사람은 또 용서해 주게 마련이다. 바람피운 남편은 바람을 용서하는 마음 약한 아내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파고든다. A구제님의 남편은 이번에도 아내의 킬링 포인트를 파악하여 또다시 공략할 것이다. “자기야,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줘. 다시는 안 그럴게. 우리 OO이(자녀)를 생각해서 한 번만 용서해줘. 휴대폰 패턴 공개하고 매일 검사받을게.”  이에 A구제님은 생각할 것이다. ‘큰 소리 뻥뻥 고함만 치던 우리 남편이 이번에는 진심으로 용서도 빌고, 철통보안이던 휴대폰까지 모두 공개하겠다고 하네. 우리 남편이 정말 달라졌어. 따지고 보면 남자가 사회생활하다 보면 업소여성들과 원나잇 할 수도 있는 거지. 마음 주며 만나는 게 바람이지, 우리 남편처럼 사정 욕구를 분출한 거는 바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다시 한번 정신승리를 이루어 내실 것이다. 이번의 발각을 교훈 삼아 남편의 외도 스킬은 더욱 진화할 것이고, 내연녀와 연락하는 전용 세컨드폰을 숨기기에 더 완벽한 공간을 찾아내고, 카카오톡 메신저 대신 텔레그램 메신저로 사이버 망명을 하여 불특정 다수 여성과의 은밀한 일대일 채팅을 즐길 것이다. 


 A구제님이 혼인신고를 했더라도 자녀가 없었다면 이혼을 강하게 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A구제님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A구제님에게는 아직 어린 자녀가 있었다. 물론, A구제님이 이혼할 용기를 내신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란 둘 중 하나다. 바람피운 남편이 적반하장으로 이혼하자고 하거나, A구제님이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할 때이다. 후자의 경우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는 것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A구제님은 배신당한 기억과 고군분투하며 남편의 업신여김 속에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감수하셔야 할 것이다.


 개과천선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다. B구제님은 자신의 말에 절대복종하고 불평불만을 자상하게 받아주던 가정적이고 순진한 남편의 외도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으셨다. B구제님은 남편의 소행은 괘씸하지만, 평소 남편의 착한 행실을 생각하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남편을 내칠 수 없다며 어찌할 바 몰라하셨다. 나는 그런 구제님에게 이혼소송 대신 상간자 소송을 권하였다. 그리고 남편에게 상간자 소송을 할 계획임을 알리고 이실직고할 것을 요청하시도록 했다. 상간자 소송이란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한 상대방에게 불륜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배우자의 태도에 비추어 어느 부류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용서를 할 가치가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이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신중하게 이혼할 수 있다.


 B구제님의 남편은 상간자와 어떻게 처음 만났고, 어떻게 유혹당했는지, 주고받은 대화 내용부터 데이트 내용과 성관계 장소, 횟수까지 육하원칙에 따라 조목조목 상세하게 진술서를 써주셨다. A4용지 빽빽하게 10장 분량이 나왔다. 상간녀는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B구제님의 남편이 부정행위 행각에 대해 진술서에서 워낙 소상하게 밝혔기 때문에 진술의 신빙성은 B구제님의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시종일관 B구제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협조하는 남편을 보며 상간자와의 관계는 완전히 청산된 것으로 보이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한 번은 선처해주셔도 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다.





 바람피운 배우자가 모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상간자 소송에 대한 협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간자 편에 서서 내연녀의 소송을 돕는 배신 파도 있다. 이런 정황이 드러나면, 이혼을 망설이던 구제님들도 미련 없이 이혼을 결정하신다.


 다른 한 부류는 중도파이다. 배우자에게 “문제 크게 만들지 말고 소 취하해라” 며 소송을 말리고 협조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간자와 내통하지도 않는 부류이다. 이 부류가 경험적으로 가장 많은 것 같다. 최소한 배 신파에 해당하지 않음이 검증되었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되 구제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변함없는지,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불륜의 경우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용서할지 이혼할지 궁리라도 하지만, 배우자의 악습관이 도박처럼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는 참 암담하다. C구제님은 도박을 일삼는 배우자와 이혼하기 위하여 소장을 접수하고 소송 진행 중이었다. 배우자는 이혼을 못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소송을 한창 진행했는데, 배우자가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전부 구제님에게 이전해 줄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사정했다. 구제님은 어린 자녀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소 취하를 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신중하게 본인의 안전을 고려하여 결정하셔야 한다. 소 취하를 하면 진행되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중에 상황이 나빠져 다시 이혼을 하려면 소장 접수부터 다시 시작하셔야 한다” 고 조언드렸다. 그러나, 결국은 소 취하를 선택하셨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에 C구제님은 이혼을 하겠다고 다시 도움을 요청하셨다. 이혼사유는 역시 상습도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박 중독 남편은 C구제님에게 명의를 이전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아파트에 관하여 이미 담보대출을 받아 도박으로 탕진해버린 상태였고, C구제님 명의로 몰래 신용대출을 받아 도박자금으로 날리고 변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C구제님은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렇듯 습관은 바뀌지 않는다. 배우자의 악습관, 악성 격에 대한 나의 회복탄력성이 소진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을 견뎌낼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혼소송을 겪으면서 위 시구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말 앞에는 숨어있는 단어가 있음을 배웠다. 그 단어는 ‘바뀌지 않는’이다. 한 사람의 바꿀 수 없는 과거의 경험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현재의 습관과 성격을, 그 현재의 습관과 성격은 바뀌지 않을 미래를 데리고 온다. 과거의 경험이 만든 현재의 습관과 성격이 거역할 수 없는 미래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배우자로 적합한 지 따질 때 상대방이 가진 현재의 경제적 능력, 직업, 학벌, 외모 등의 스펙에만 매몰되지 말자. 상대방의 현재 습관과 성격을 파악하여 그의 미래를 점쳐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미래는 예측 불가하다고 하지만, 통찰력을 발휘한다면 상대방의 현재의 습관과 성격을 통해 미래를 슬쩍 엿볼 수 있다. 다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두 휘발되고 난 후 부부는 완벽한 타인임을 인지하고 냉철하게 결정해야 한다. 나쁜 습관과 악성격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하기에 벅찬 운명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다가 올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부드러운 봄바람 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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