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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 아이와 화해하기

엄마: 이젠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아. 네 외할머니가 전화한 이후로는.
나: 무슨 전화?
엄마: 외할머니한테서 얼마 전에 전화가 왔어. “네가 맞이라고 너한테 집안일 시키고, 동생들 돌보라고 하고, 내 마음에 들게 안 돼 있으면 혼냈던 거 미안하다. 그때는 엄마도 니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다” 고 엄마한테 사과를 하는 거야. 그런데, 그 전화 통화 이후로 신기하게 악몽이 사라졌어. 한 달에 한 번씩은 뭔가에 쫓겨 도망치다 엉엉 울면서 깨곤 했었는데 말이야.
나: 다행이네. 엄마한테 외할머니의 말이 큰 상처가 됐었다가 사과하는 말에 치유가 되었나 보다. 이 기회에 엄마도 나한테 사과할 거 없나 생각해 봐. 하하.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정적인 상호작용 또한 매우 긴밀하게 하게 된다. 그런데, 남이 주는 상처보다 가족들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는 더 깊이 더 오래 쓰라리다. 무조건적이고 원초적인 사랑과 격려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받는 모욕과 멸시는 자존감에 치명타를 준다. 


 나는 두 명의 딸을 키우고 있다. 딸들을 착하고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보통의 엄마와 같다. 하지만,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송무와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고 체력에 한계가 와서 바늘 하나 들어갈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찰나에 딸들의 사소한 실수와 투정이 나를 자극하면 나는 욱하여 고함을 지르고, 딸들은 주눅 들어 울곤 한다. 그런 나에게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조세핀 김 교수님의 말씀은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듯한 팩트 폭격이었다. 


어머님들, 애들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유난히 짜증을 내고 화를 낼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많이 힘드시죠?
그럴 때는 어머님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내가 아이에게 요즘 많이 화내지 않았나 하고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거든요.


 내가 짜증을 낸 것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메아리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A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이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하겠다고 찾아오셨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고 있다고 하셨다. “남편이 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물건을 던질 때마다 너무나 모욕적이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나만 희생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참고 참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애들에게 까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해서 더는 못 참겠어요.” A구제님은 푸석해진 뺨 위로 눈물을 떨구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자녀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갖기를 원하시는지 물었다.





“딸에 대한 양육권은 제가 갖고, 아들은 남편보고 키우라고 해주세요. 아들이 하는 행세가 아주 지 아빠랑 판박이라서 감당을 못 하겠어요.”


 자녀들을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엄마가 당연히 양육권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양육권을 갖지 않겠다는 엄마가 상당히 많다. 아들이 가정폭력을 하는 아빠를 보면서 무섭게 아빠의 폭력적인 언행을 답습하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 대한 훈육과 유대감 형성에 실패하여 사이가 극도로 틀어진 케이스다. 그런데,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엄마가 아빠로부터 어린 자녀들을 제 때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채로 방치한 잘못이 발견된다. 엄마가 남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남편과 꼭 닮은 아들에게 폭언을 하며 해소하거나, 가정폭력을 하는 아빠가 엄마에게도 자신과 같이 폭압적인 훈육을 할 것을 강요하여 엄마가 가정폭력 아빠의 종용에 따라 자녀들에 대해 직접 아동학대를 하거나 아동학대를 방관한 것이다. 소통이 잘되는 동성인 딸은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대감을 갖는 반면, 대화로 자신의 감정을 소통하는 것에 서투른 아들과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엄마는 서로를 배척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따로 사세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관계를 묻는 나의 질문에 A구제님은 허탈한 표정으로 답하셨다. 진작 알았으니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동정심과 보호본능 때문에 이 남자와 결혼한 게 잘못이었다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고 하셨다. 





 프로이트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경험이 해결되지 못한 채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억압되어 있는 감정이라고 보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내 안에 잠재해 있다가 강한 스트레스나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 부닥치면 비이성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유발한다. 당신이지만, 동시에 당신과는 독립된 여섯 살의 화가 난 아이가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가 당신이 화가 나면 아이처럼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때리도록 조종한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를 위해서는 내면 아이가 상처받았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만나 인정해주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여주어야 한다. A구제님의 남편은 A구제님의 시아버지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로 인해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내면은 정서적 성장을 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A구제님의 남편 속 내면 아이는  가족들에게 그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상처를 주었고, A구제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상처를 대물림하고 있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부모가 아이에게 습관적으로 모욕적인 언행을 하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대부분 낮은 자존감을 보인다. 
  -1996년 Pawlak & Klein 연구결과
                           

 미국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 댄 킨들러가 그의 저서, ‘새로운 여자의 탄생, 알파걸’에서 학업,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성, 알파걸을 정의하였다. 그런데, 알파걸에게는 알파걸이 아닌 여성들과 다른 큰 차이점이 있었다. 알파걸은 비 알파걸과 달리 아빠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고, 특히 아빠와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긴밀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자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정서적 지지가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어 알파걸을 탄생시켰다. 정서적 지지를 해 주는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여자아이는 아빠 같은 남자를 선호하며 남자를 보는 안목 또한 높아서 좋은 남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자존감은 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은 자존감 DNA를 가진 부모의 아이는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자존감 높은 배우자를 선택한다. 낮은 자존감 DNA를 가진 부모의 아이는 낮은 자존감을 갖고, 좋은 배우자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자존감은 배우자를 고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역경도 수월하게 헤쳐나가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더불어 배우자와 자녀들도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런데, 높은 자존감 DNA를 대물림할지,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대물림할지를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임의로 선택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마음이 열려있다면 바로 잡을 기회는 있다.





 “남편은 부부상담을 극도로 꺼렸어요” 남편의 의처증으로 이혼을 결심하신 B구제님은 남편과 부부상담을 받아보셨는지 묻자 쓸쓸히 답하셨다. B구제님이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간청했을 때에는 남편은 냉담했었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런데 왜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해? 싸우는 이유는 뻔하고, 내가 답을 알고 있으니 해결할 수 있어” 라며, 문제를 회피하였다. 그리고, 상처가 곪아 터져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B구제님이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뒤늦게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미 기차는 떠났다.


  살다 보면 비이성적인 분노와 불안, 돌발행동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면 아이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한편,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회피하고, 나아가, 가족들의 권유와 경고에도 자신을 돌아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B구제님의 남편은 후자였다. 고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무능함을 지적당하며 유년시절을 위축되어 보냈던 남편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조차 없이 결혼을 했고, 본인의 낮은 자존감을 의심하는 대신 아내의 불륜 외도를 의심했다. 그래서, 흥신소를 붙여 아내의 뒷조사를 하였다.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휴대폰에 스파이앱을 깔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러나, 아내의 불륜 외도 사실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자신이 의처증 환자임이 확인될 뿐이었다.


 B구제님의 남편이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불쑥불쑥 나타나 자신과 배우자를 괴롭힐 때, 아내의 조언을 진작 듣고 스스로를 돌보는 노력을 했다면 뒤늦은 후회를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타인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을 몹시 힘들어한다. 하지만, 자존감 낮은 부모를 만나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자존감 낮은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설령 물려받은 자존감이 낮아 내면에 큰 상처를 지녔다 해도 자아성찰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해야 한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그 누구도 대신 키워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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