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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는 벤츠 타는 공주를 꿈꾼다

마담뚜:삐리리 삐리리 삐리리
변변: 여보세요?
마담뚜:경민 님, 전화번호 맞으시죠?
변변: 네, 그런데 누구시죠?
마담뚜:결혼정보 회사 ㅇㅇ입니다. 상류층 전문직 프리미엄 중매해드려요. 아주 능력 있고 점잖은 분이 있으셔서 매칭을 해드릴까 해서 연락드렸는데 괜찮으시지요?
변변: 아, 그러세요? 좋지요!! 그런데 애 둘 딸린 유부녀인데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맞선보고 괜찮으면 지금 남편과 정리해 볼 수도 있어요”
마담뚜:아 죄송합니다. 뚜우뚜우뚜우-





 오늘 한 동안 뜸하던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매업체 마담뚜의 전화가 친히 걸려온 것이다. 조건으로 매칭 되는 ‘중매의 세계’에서는 나이, 특히, ‘여성의 나이’는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 여성의 나이에 따라 매칭 할 수 있는 남성들의 그레이드가 좌우된다. 남성 고객들은 여성의 외모, 인성, 직업보다도 여성의 생물학적 나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그러한 점이 중매 등급에서 반영된다. 그래서 소위 고스펙의 나이 든 여성보다 스펙은 낮더라도 젊은 여성을 선호한다. 그런데, 45살 정신줄 놓고 사는 여자 변호사인 나에게 ‘상류층 전문직 프리미엄 중매’를 아직도 해주실 수 있다고 일부러 전화까지 주시니 황송스럽기까지 하다.  “네가 이런 여자인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했다”라고 우리 남편으로부터 양심 고백까지 당한 터였다. ‘중매시장에서 여자 나이 45살인데도 아직 매칭 가능하구나. 내 나이 30대 중반에도 매칭이 쉽지 않았는데, 재혼 남성으로 알아봐 주려고 전화하셨던 걸까. 지금 나는 몇 등급 즈음되려나.’ 일하다 말고 혼자 웃음이 터진다. 서른 중반 결혼이 급한 나이, 한 때는 언제나 매칭 되려나 참 간절히 기다려졌던 전화. 지금은 유부녀의 신분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전화. 


 내가 결혼정보업체를 처음 만나게 된 기억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로스쿨 3년을 마치고 변호사시험을 합격하면 법조인이 되지만, 그 전에는 기약할 수 없는 기나긴 수험생활을 견디고 3차에 걸친 사법고시를 합격하고도 다시 2년의 험난한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쳐야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 사법연수생은 곧바로 법원직 5급 공무원의 신분이 주어지고, 사법연수원에서 이수해야 할 실무과정을 수차례 시험을 거쳐 과락 없이 마쳐야 수료가 가능하다. 


 임기 초에 사법연수원에서 발행하는 연수생 수첩이 있다. 그 수첩에 들어갈 사진을 연수원에서 줄을 서서 촬영하는데, 연수생들은 그 사진의 중요성을 선배들로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에 한껏 꾸미고 찍는다. 연수생 수첩에는 사법연수생 전원의 신상정보가 들어간다. 나이, 성별, 학력, 전화번호에 나의 외모를 인증해 줄 위 사진까지. 그 수첩은 공식적으로는 연수생들 사이에서 동료들의 정보를 공유하여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뭔가 주기능 외에도 아주 핫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비공식적으로는 미혼남녀 연수생에게 꽃미남, 꽃미녀, 훈남 훈녀 발굴의 계기가 된다. 사진을 보고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의 인적 구성의 상황 파악까지도 가능해진다. 수첩 덕분에 옆반 훈남과 맺어지기도 한다.



 


 연수원에서의 커플이 많이 생기는 비결에는 연수원 생활의 특수성도 한몫한다. 빡빡한 수업일정, 주말 내내 매달려야 완성할 수 있는 어려운 과제, 가공할 만한 시험량과 공부량, 그 와중에 치루어야 할 잦은 회식, 체육대회와 MT. 이 모든 것들이 차질 없이 완벽하게 치러져야 한다. 승부욕 강한 연수원의 세계에선 우리 반이 공부만 잘하고 체육대회에서 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침에 체육대회 연습, 오전 수업 2개, 점심식사 시간에 밥 먹고 체육대회 연습, 오후에 수업, 주말 과제 배부, 저녁에 1박 2일 MT 출발. 이 모든 것이 하루 일정인 적도 있었다. 감히 사법연수원생은 공부하는 특전사, 공부하는 707부대이다. 그 와중에 다 못한 숙제 빌려주고 힘든 일정의 애환을 술로 달래며 끈끈한 우정이 애정으로 거듭난다. 고난과 인고의 사법연수원 생활을 함께 하는 아드레날린 팡팡 매력 뿜 뿜 하는 젊은 연수생의 연애는 무죄이지 않는가.


 애인 없는 연수생들은 초반 MT에서 눈도장 찍고 탐색전 펼치다 발 빠르게 커플이 되고, 더러는 연수원 밖 애인이 있는 연수생들도 몇 달이 지나면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는 말 따라 애인과 헤어지고 연수원 내에서 새로운 연애를 하기도 한다. 염문만 뿌리다 헤어지기도 하지만,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때문에 사법연수원의 교수님들도 연수원 내에서의 연수생의 연애를 적극 권장하고 기뻐하신다. “연수원 안에서 못 만나면 밖에서 만나기 힘듭니다. 특히 여자 연수생들!” 하며 뼈 때리는 말씀을 웃으며 하시고, 여자 연수생들은 “설마 저 허당 오빠가 최선이라고?” 하며 흡사 공포를 느끼곤 했다. 학부시절, 법대 여자들이 법대 남자 우습게 알지만, 사회에 나가면 법대 남자만 한 남자들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속설을 한차례 경험으로 검증하였던 터라 위 공포는 배가되었다. 


 하여튼 이렇게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연수생 수첩을 노리는 자가 또 있으니, 바로 마담뚜들이다. 마담뚜들에게는 이 수첩이 VIP 고객명단이 된다. 생각해보라. 이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정보를 회원가입 절차 없이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 소문에는 마담뚜들이 그 수첩을 암암리에 매수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법제가 지금에 비해 현저히 미비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듯. 





 마담뚜들은 입수한 수첩을 스캔한 다음 남자 연수생들에게는 무한한 혜택을 선사하신다. 회원가입비나 만남에 따른 수수료 없이 맞선녀를 만날 수 있는 특전을 부여한다. 아니다. 오히려 맞선녀를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말이 맞겠다. 마담뚜들은 맞선녀로부터 회원가입비나 만남에 따른 수수료를 받고, 남자 연수생들은 무료로 선 볼기회를 얻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환상의 메커니즘이다. 남자 연수생들이 계속되는 낯선 만남에 대한 피로도를 어필할라치면 맞선녀 만나러 가는 교통비와 식비를 지급해주시며 용기를 북돋워주시기도 한다. 

 한편, 이분들은 여자 연수생에게는 한없이 박하시다. 회원 가입하려면 비싼 회원가입비를 할인 없이 내야 하고, 1회 만남 시마다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수십만 원의 수수료를 얄짤없이 차감한다. 남자 연수생들은 합격과 동시에 중매업체 호감 등급이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여자 연수생들은 기껏 열공해서 합격하고 현직 5급 공무원이자 예비 법조인이 되어도 중매시장에서는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더 인기가 하락할 뿐이었다. 


 주말이면 맞선 보러 간다고 우쭐하며 단장하고 나서는 연수원 오빠들을 보면서 우리 여자 연수생들은 쑥덕거렸다. “저 오빠가 민간인들에게는 통한다니 신기하다.” 사회에선 예비 법조인, 일등신랑감이지만, 우리에겐 술 먹으면서 아재 개그 하는 어수룩한 동네 오빠일 뿐. 우리는 속속들이 알다 보니 환상이 1도 없었다. 하지만, 중매시장에서 그들은 더없이 핫한 존재였고, 전문직 남성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았다.





  나도 맞선 시장에 진입했을 때 배우자가 전문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에, 전문직 남성을 선호하는 이들의 심리가 이해가 된다. 경제 호황의 시기는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다더라’며 전설처럼 추억되고 있고, 지금은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황의 터널 속을 계속 달리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들의 근로소득으로는 숨만 쉬고 물만 먹고 수십 년 돈을 모아도 살 수 있을까 말까 하다. 수직 상승하는 집값을 따라잡는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평범한 남자 친구와 결혼하여 내 집 마련을 하려면 30년 거치 대출금을 내고 허리띠 졸라맨 채로 십수 년의 기간 동안 끝없는 오르막길을 가야 한다. 은행 대출금은 내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 할 동반자가 되었다. 이 모든 걸 체념하고 불안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에 눈을 떴을 때, 미모에다 착함까지 겸비한 사기 캐릭터의 여성이 본부장님, 실장님, 의사, 변호사 등 고액 연봉의 남성과 사랑을 완성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적잖은 힐링이 된다. 내가 그 여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살짝 꿈꾸게 된다. 남성의 고액 연봉은 경제적 압박감으로부터 나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줄 치트키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연수원 오빠들은 선을 보고 오면 우리에게 맞선 후기를 들려주었다. 맞선녀의 나이, 외모, 태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런데, 흥미진진하더니 ‘기승전 맘에 안 든다’는 하소연으로 이어진다. 막상 사진을 빼앗아 보면 예쁘장한 외모의 부잣집 젊은 아가씨가 웃고 있었다. 우리는 “오빠, 오빠 나이에 이렇게 어리고 예쁜 여자면 감사해야지. 뭘 그리 따져? 눈 왜 이리 높아” 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고 놀려댔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자 연수생들이 터무니없이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직시했기에 더 선택을 어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자가 본연의 나를 만나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조건을 보고 만나려 한다는 것을 남자 연수생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건으로 성사된 만남이었기에 장인의 재력, 여자의 외모, 남자를 존중해 줄 성품 일지 따질 것들이 더 많아졌다. 결국, 그들 중 일부는 연수원 커플이 되어 결혼까지 하였고, 그들 중 많은 수는 마이너스통장의 빚을 갚아주고 집과 차, 개업까지 보장해주기로 한 장인의 딸과 결혼하였고, 그들 중 극소수만이 수험생활을 내조했던 평범한 여자 친구와 의리로 결혼까지 골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오빠의 의리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전문직 남성들의 결혼 패턴, 왜 이런 걸까?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남자 연수원 동기의 맞선 후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맞선을 위해 서울에 있는 모 대형 복합쇼핑몰 커피숍까지 차를 몰고 갔단다. 이만 자리를 파하려는데 맞선녀는 “잠깐만요” 했다고 한다. 잠시 기다렸더니, 맞선녀가 아래층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그 영수증을 내밀더란다. “오빠, 이거 보여주시면 주차비 무료예요” 그때 그 동생은 이 여자에게 한눈에 반했고, 이 여자와 결혼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맞선녀는 명품시계를 선물한 것도 아닌데, 영수증 한 장에 이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불황은 전문직 남성들도 두렵게 한다. 전문직 남자들도 든든한 아내를 원한다. 장인의 재력, 아내의 든든한 수입이면 좋고 설령 그것이 아니라도 아내의 든든한 재테크 능력, 알뜰살뜰한 살림살이 능력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하물며 평범한 회사원 남성들은 어떠할까? 경제력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맞벌이가 가능한 여자’ ‘공무원, 교사’가 신붓감 1순위로 등극한 노골적인 세상이 된 것이다. 불황은 생존을 위협하고, 불안은 안정을 택하게 한다. 결혼이라는 화두 아래,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혹시 그대는 아직도 백마 탄 왕자가 간택해주는 환상을 꿈꾸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 백마 탄 왕자는 벤츠 타는 공주를 꿈꾼다. 내가 혼자서도 당당히 바로 설 수 있어야 행복하고,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둘이 있을 때도 행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결혼은 홀로 선 두 사람이 만나 행진하는 것이다. 홀로 서지 못한 채 나의 결핍을 채워 줄 누군가를 결혼으로 채워 넣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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