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결혼
나: 너는 왜 결혼을 안 하니? 돈은 살면서 벌어도 된다.
아는 동생: 돈도 돈이지만, 다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 자아실현도 해야지. 왜 누나는 자꾸 결혼하라 그래요? 그렇게 결혼이 좋아요?
나: 야, 자아실현에 결혼만큼 좋은 게 없어. 인격 수양하기 딱이에요. 결혼이 얼마나 좋은데. 내 전생의 업장을 소멸한다는 맘으로 하루하루 사는데,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아.
돌잡이 아기를 아기띠에 메고 이혼상담을 하러 오는 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는 산후우울증에 힘이 들어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드는데, 남편은 돈 버는 게 더 힘들다며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래요.”“출산휴가 마치고 복직해서 새로운 일 맡아 적응 중인데 회사 눈치 많이 보여요. 그런데 퇴근하고 오면 아이 돌보는 일은 또 고스란히 엄마 몫이에요. 남편은 회사 핑계로 매일 밤늦게 들어와요”
출산과 동시에 여성은 양육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자녀 출산과 육아라는 루틴을 반복하면서 겪는 산후우울증, 사회에서 도태되어 간다는 고립감, 경력단절을 극복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등의 정신적 고통 또한 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차별들을 열거하고 있다. 나에게도 그 차별의 모습들이 전혀 생경하지 않다.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나다 순서로 학번이 정해지지 않고, 남자아이들의 학번이 끝나면 뒤이어 여자아이들의 학번이 오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아이스크림(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어 올리는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을 하면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에게 바지를 입고 다니라고 하셨다. 출산 후 하던 일을 접고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은 자아실현에 대한 날개가 꺾인 채 제사와 명절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고 시누이가 다녀갈 때까지 친정에 가지 못하고 맘충이라는 모욕에 상처를 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아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그 내용에 매우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서 극단적인 페미니즘이라는 비판도 거세게 일었었다. 나는 남편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함께 보았다. 극 중 남편이 아내를 걱정하고 가사노동과 육아를 도와주지만, 김지영의 정신병이 심해진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남편은 영화를 본 다음, “김지영 정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사는 현대인이 있나? 그 정도는 여자든 남자든 감수하고 사는 거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남편의 지적은 일부는 타당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의미에서 과장되었다. 현실과 몹시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구제님들은 김지영처럼 전업주부가 아니고 주로 맞벌이임이 다르다. 또한, 그녀들의 남편은 영화 속 김지영의 남편과 결이 많이 다르다. 그 남편들은 김지영의 남편처럼 아내를 돕지 않는다.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지만,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거의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하고, 돈을 벌다 온 아내가 남편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달라고 하면, 그들은 “너도 나처럼 많이 벌어 와 봐라. 그때는 내가 집안일 도와줄게. 푼돈 벌어오는 주제에 유세는.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집안일까지 시킬 거면 돈도 안 되는 일 그만 관둬라.” 라며 아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맞벌이 주부의 경우도 이런데, 전업주부인 구제님의 경우는 밥벌레 취급당하기 일쑤다.
나는 상처받은 구제님들에게 말한다. “남편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돕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때 남편에게 말하세요. 당신이 해야 할 몫은 가사노동과 육아의 절반인데, 당신이 그 의무를 다 못 하고 있다. 당신을 돕고 있는 건 오히려 나라고요. 구제님의 가사노동과 육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남편의 소득과 비슷할 겁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각 개인 저마다의 천 가지, 만 가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결혼을 꺼리는 공통의 이유가 있고, 그것이 사회구조적인 원인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이유로 치부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남성에게 가족부양의 의무를, 여성에게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의무를 부여했다. 하지만, 여성들도 더 이상 가족부양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여성들에게도 동등하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짐으로써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을뿐더러 남성들도 혼자 벌어 생계유지가 녹록지 않기 때문에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여 살림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성들에게는 추가적으로 가족부양의무가 생겼음에도 가사노동과 양육의무로부터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남성들은 가사노동 및 자녀양육의무를 분담하기를 외면하거나 대등하게 분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갈등이 생겼다.
나는 39세의 나이에 첫 딸을 출산하였고, 밤중 수유로 쪽잠을 자면서 서면작성 업무와 재판 출정 업무를 병행하였다. 남편이 수면방해를 받으면 일에 지장이 있을까 봐 배려하여 다른 방에서 편하게 자도록 했기 때문에 남편은 수유를 돕지 않았다. 몇 달 후 나는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과로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남편은 내 나이가 있으니 몸 추스르는 대로 서둘러 둘째를 갖자고 말했다. 부부 사이에 극명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나는 41세의 나이에 다시 둘째 딸을 낳게 되었다. 남편은 내심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 아이를 하나 더 낳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밤잠을 설치며 모유수유 하기를 몇 달,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토로하였다. 그러자, 평소 자신이 아주 공평하고 합리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던 남편은 “그게 뭣이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니? 됐다 마. 내가 할게!”하며 큰 소리를 뻥뻥 치고는 둘째 아이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고, 그때부터 분유로 밤샘 수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몸과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 나는 남편에게 늦기 전에 셋째를 갖자고 했고, 연일 밤을 새우느라 초췌해진 남편은 비장한 표정으로 둘째 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소리고. 아들이 왜 필요하니. 딸 둘이면 됐지. 오늘 부로 이 아이가 막내다!!!”
여성은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즉시 가사노동과 육아의 최종 책임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합의되었든 합의되지 않았든. 하지만, 모성애와 별론으로 모든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일을 늘 행복해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거나 누가 더 힘든지 힘듦을 경쟁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가사노동과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85%의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겪고, 그중 10~20%의 여성들이 실제로 우울증이나 정신병을 겪는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돕자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맞이하는 출산과 육아는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누구나 감당해낼 법한 정도의 스트레스로 김지영이 정신병을 앓는다는 것이 과장되었다고 비난을 하기에 앞서 김지영의 아픔을 경청해 줄 관용과 배려가 필요하다. 하물며 곁에 있는 남편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가 있을까. 가사노동, 출산과 육아는 결코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가족 구성원들을 건강하게 살 수 있게끔 보살피는 위대한 일이기에 이를 제대로 해내려면 온 가족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의 부양의무와 양육의무의 이중고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처럼 소수의 예외적인 이야기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학벌과 직업을 떠나 모든 여성의 숙제이다. 내가 사법연수원에 재직 당시 판사로 계시던 연수원 교수님께서 여성 연수생들만을 데리고 식사를 하며 조언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난다. “법조인으로서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체력이 매우 중요하다. 끼니도 잘 챙겨 먹고 영양제도 꼭꼭 챙겨 먹고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한다” 고 하셨다. 그때 연수원 여자 동기들과 주고받았던 싸늘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지금껏 법조인이 되겠다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공부해왔는데, 결혼하고 나면 이보다 더 힘들다니 우리는 모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실제 경험적으로도 육아와 일을 양립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출근시간이 임박해오는 바쁜 아침 시각에 어린이집 원복을 안 입고 공주 드레스를 입겠다고 떼쓰는 다섯 살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그래도 밖에 나가면 나름 인정받는 변호사이고 법정에서 논쟁을 하면 지지 않는데 내가 왜 이런 하찮은 일로 이 아이랑 다투면서 절절매고 있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한편,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보람찬 기분으로 퇴근을 하더라도 엄마가 일하는 동안 맘껏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자책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아실현이라는 개인의 욕구와 엄마라는 역할에서 유래되는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뇌하는 것이 워킹맘의 일상이다.
하지만, 결혼을 한 선배들은 왜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서만 말하고, 그 모든 희생을 능가하는 기쁨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가.
우리 아기를 처음 만나러 갔던 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까만 초음파 모니터를 보는데
반짝하고 별이 빛나는 걸 봤다.
너무 이뻤다.
바로 아기 심장이 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기 태명은 윤성이가 되었다.
빛날 윤, 별 성. 나의 빛나는 별이
무럭무럭 자라서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이 세상 모든 기쁨이 내 것이 되었다.
-나의 육아일기 중
나는 엄마가 되면 내가 아기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조건 없는 완전한 사랑을 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출산 전 나와 내 주변의 안위 만이 관심사였다면, 아이를 낳아 완전한 사랑을 받게 된 이후에는 이 사회가 행복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지구가 건강해지길 바라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이다. 아이가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지켜줄 수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나의 사명을 다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조우하고, 현재의 나를 재발견하고, 나의 어머니를 추억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기적이다. 여러분들에게도 그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러함에도 결혼’을 말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