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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비혼 주의

                빨간머리 앤의 선택

       

나:  너는 왜 결혼을 안 하냐? 
아는 동생: 돈이 없어. 
나: 결혼하고 벌면 되잖아. 어떻게 다 갖춰놓고 시작하냐.
아는 동생: 같이 살 집도 없는데, 누구 데려와 고생시키려고. 누나는 집도 있고, 좋겠다.
나: 야, 내가 사는 집 내 거 아니야. oo은행 꺼야. 거실 들어가기 전에 여기 문 앞에서 현관까지만 딱 내 거고, 안방, 거실, 화장실 전부 00 은행 지분이야.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을 꿈꾸는 남녀들은 경제력을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를 반대 해석하면,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결혼을 하기 힘든 세상이 된 셈이다. 


 모 결혼정보업체에서 조사한 2020년 기준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을 본 적이 있다. 여자들은 신랑감의 성격, 가치관 다음으로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남자들은 신붓감의 성격, 가치관 다음으로 외모를 본다고 하였다. 그러나이어지는 반전


이상적인 신랑의 연소득 5,749만 원, 자산 2억 7,795만 원
 이상적인 신부의 연소득 4,328만 원, 자산 1억 9,761만 원   
-2020년 기준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
     

 연봉이 예선전이었다. 예선을 통과해야 성격도, 가치관도 있다. 통계가 말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연봉과 자산에 좋은 성격도 훌륭한 가치관도 압도당한다. 경제력이 예선전인 결혼시장의 분위기는 미혼들을 비혼 주의자로 내모는 데 일조한다.


 김연자 가수는 아모르파티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노래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혼은 인류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제도였을 뿐, 필수가 아니었다. 결혼은 인류의 필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유목민은 동물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고 초원을 지켜내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 척박한 삶을 살았다. 전쟁 중 죽은 젊은 남자들의 유가족의 생존을 보장하고, 부족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 미망인의 재가를 독려하며 일부다처제를 취하였다. 


 고산지대의 사람들은 유목민들과 반대였다. 제한된 좁은 경지 안에서 개간하여 살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었기에 인구를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그 결과 형제들이 한 명의 아내와 혼인하게 함으로써 적은 인구수를 유지하는 일처다부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실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일부일처제도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인류는 농경사회로 정착하게 되면서 사유재산을 누리게 되었고, 내 생애에 다 써버리지 못한 사유재산을 후손에게 남기게 되었는데, 그 소중한 재산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에게 주기는 아까웠다. 사유재산을 진짜 나의 자식에게 상속해 주길 원하는 욕구는 부계 불확실성이라는 변수를 효과적으로 해소할 필요를 낳았고, 일부일처제라는 제도가 탄생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포유류의 약 9%에게서만 발견되고 동물적 본능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이의제기되는 일부일처제를 제도화하여 살고 있다. 그런데, 결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계 확실성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 이상의 책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하나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가족을 부양한다는 무게감에 가혹하게 짓눌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결혼제도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잘 먹고 잘 살려고 결혼을 거부하게 되었다.


‘결혼’을 포기하고 ‘비혼 주의’를 선택한 N포 세대. ‘나 혼자 산다’는 선택은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에 이어 ‘집 포기, 경력 포기’까지 포기할 것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N포가 되었다. 인생을 즐기고 삶에 제약을 받을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N포 세대는 역설적으로 형제, 자매의 수가 적어서 그 윗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족한 의식주를 제공받았고, 사교육, 대학 진학, 어학연수 등 교육적인 혜택 또한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장기불황, 취업난 속에 학자금 대출변제도 어려운데 물가는 비싸고 집값은 더 비싸 절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누려왔던 것들을 더 제약받고 포기해야 한다면 많이 망설여질 것이다. 때문에 관습이 요구하는 결혼이라는 버거운 짐을 지는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짐만 지고 홀로 살아가겠다는 개인주의 가치관을 선택했다. 


 하지만, 비혼 주의는 경제 불황,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일까? 조선시대 가뭄과 흉년으로 배를 굶고,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어려움을 탓하며 출산을 의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비하면, 현대인들은 먹고사는 것이 풍족함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환경을 탓하며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과거로 가보자.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한국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셨다. 부모님의 부모님들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삶의 터전을 잃어 피난을 가는 가혹하고 모진 상황 속에서도 자녀들을 예닐곱 명씩 낳았다. 상상해보라.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한 치 앞을 모른 채 마땅한 거처도 없이 피난을 떠도는 궁박한 상황을. 보릿고개라 먹고살기가 힘들고, 전쟁으로 척박해진 환경 속에서도 대를 이어나갔다. 휴전이 되고 폐허가 된 자리를 재건하느라 여전히 경제적으로 궁핍했음에도 오히려 베이비붐이 일었다. 전후인 1955~1963년 경에는 전례 없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1차 베이비 부머라고 불리는 그들은 훗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전쟁 직후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먹고살기 힘들다고 출산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멈추었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자녀를 많이 낳아 베이비붐이 일어났다.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단칸방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자는 열악한 상황 속에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가당키나 했나 싶지만, 그들은 성공적으로 많은 수의 자녀를 낳았다. 





 이를 보면 경제 불황, 경제적 궁핍이라는 환경적 요인만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의 의지를 꺾었을까? 가뭄에도 씨를 심은 마을 사람들은 다음 해 수확할 희망으로 기근을 버텨내는데, 씨를 심지 않은 마을은 희망이 없어 기근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는고 한다. 더 나은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역경을 이겨낼 힘을 준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분위기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게끔 비관적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 부의 양극화, 부의 세습과 가난의 대물림. 흙수저, 금수저, 이생망이라는 신조어에서 이미 출발선이 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의 미래를 결코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자괴감을 읽게 된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인데, 미디어에서 보는 화려한 상류층들의 삶과 비교되는 나의 초라한 현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린다. 


 하지만, 똑같이 주어진 환경에서도 늘 진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있고, 그들은 다른 결과를 도출해내곤 한다. 별명이 빨간 머리 앤인 몽상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독신주의자였다. 지금으로 치면 비혼 주의자에 가깝겠다. 자신만의 독특한 이상형이 있었고, 그 이상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던 친구는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와 첫눈에 반해 연애를 했고, 결혼하기로 했다. 친구는 명문대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친구의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하시는 재력가셨다. 이에 비해 친구의 남자 친구는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기계공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학벌과 재력에 현격히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친구를 반대했고, 친구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라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결혼식을 하고 신혼을 시작해야 했다. 결국, 친구는 제한된 예산안에서 식을 올리느라, 럭셔리한 호텔 결혼식을 포기하고 대실료가 싼 구청의 저렴한 공간을 빌려야 했다.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으로 갈음했다. 부촌의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는 대신 작은 도시의 외진 곳에서 전세를 구하였다. “나는 우리를 선택했어” 라며 웃는 친구의 자신감 있는 미소는 아름다웠다. 친구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친구는 이미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을 만나거나,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자신과 잘 맞는 운명의 상대를 바로 골랐다. 그 결과 자신이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지만, 현재의 소박한 삶을 기꺼이 선택하고 남편과 함께 부족한 것들을 차차 채워나가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내 친구 빨간머리 앤은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엄마가 되었고, 가족으로부터만 받을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을 더 빨리 누릴 수 있었다. 


 많은 하객들이 동반된 화려한 예식, 수억 원의 예물, 예단을 포기하고, 친한 지인들과 조촐하게 스몰웨딩을 하고 간소한 예단과 저렴한 살 곳을 얻어 소박하게 시작하는 합리적인 커플들이 늘었다. 허례허식을 피하고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여 결혼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여건은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그들에게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주어진 짐을 기꺼이 배우자와 함께 지고 갈 준비가 되어있다. 함께 할 여정이 주는 큰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수많은 난관과 예측불허의 불안함이 있지만 삶을 살아내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듯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결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당장의 불이익과 불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 자체를 포기한다면 영영 반쪽짜리 삶만을 살게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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