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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혈통


“띠링띠링”
“여보세요”
“변경민 씨 맞으신가요? 서울 oo지방검찰청 박 oo검사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서울 oo지방검찰청 박 oo검사라고요. 변경민 씨의 명의가 도용되어 수사 진행 중이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어머, 박 oo검사님, 목소리가 많이 달라지셨어요. 저 기억 안 나세요? 검사님한테 실무수습받았던 변경민 검사시보예요.”
“철커덕... 삐이 삐이 삐이”



전화 속 목소리는 분명 내가 아는 박 oo검사님의 목소리도 억양도 사투리도 아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내가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하자 보이스피싱 조직원도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조직원 입장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아는 검사님 이름을 대는 바람에 한 건 날린 셈이니 진짜 재수 없다 할 수도 있겠다. 나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인터넷 검색부터 해보았다. 올해 서울 oo지검 인사이동 뉴스가 뜬다. 서울 oo지검 박 oo검사.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 인사이동 명단을 보고 전화를 돌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 덕분에 나는 십여 년 전 검찰실무수습 담당 검사님의 인사이동 근황까지 알게 되었다.


 사법연수생들은 2년 차가 되면 법원, 검찰, 변호사 사무실에 각 2개월씩 실무수습을 하게 된다. 1년 차에 서류로만 익혔던 실무지식들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실전에 투입되어 2년 차에 체험해보는 것이다. 


 검사직무대리로 일하면서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아버지가 친딸 두 명을 강간하고 성추행한 사건이었다. 당시 범행 가해자에 대한 피의자 신문을 맡게 되었고, 사건의 내용도 전개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피해자들은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가출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할머니, 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년 간 친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했던 상황이었는데, 할머니, 고모 등 다른 가족이 어린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강간 피의자(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공소 제기되기 전 단계에 있는 자)라는 말에 체격이 크고 사나운 성격일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실제로 검찰청을 방문한 남자는 작은 키에 왜소하고 어리숙하고 유순한 남자였다. 처음에는 신문사항에 대해 ‘아니다. 모른다’라고 부인하다가, 취조를 거듭하자 시인하였다. 오랜 기간 다수의 범행을 하였고, 성범죄 수사의 특징상 일시, 장소, 강간의 행위태양을 매 행위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피의자는 자신이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했을지언정,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수치심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당시 나름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직무대리였기에 피의자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사정 욕구를 채우려면 성매매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어린 딸들을 성폭행한 겁니까?” 그러자, 피의자는 “아이고, 저는 성매매 같은 거 전혀 모릅니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돈도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친딸 강간을 하였다는 것인가?


 “피의자분, 피의자 신문조서 읽고 사실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도장 찍으세요.”라고 말하자, 피의자는 서류를 읽지도 않고 그냥 도장을 찍으려 하였다. 그래서, “안 읽고 막 찍으시면 안 되고, 내용을 읽고 말한 대로 적혀있는지 확인한 다음 도장 찍으셔야 돼요”라고 하자, 피의자는 쭈뼛거리다가 “한글을 읽을 줄 몰라요”라고 답했다. 피의자는 교육열이 높고 문맹률이 낮은 한국사회에서 보기 드문 문맹이었다. 그 대답에 피의자의 부모가 피의자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했을지, 와이프가 왜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가출을 했을지,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었을지, 가해자가 왜 친딸 강간에 대한 죄의식이 없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소아성애 장애는 아동(보통 13세 이하)과 관련된 성적으로 흥분되는 상상이나, 충동 또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는 성 도착증의 한 형태이다. 소아성애자는 어린 소년, 어린 소녀 또는 양쪽 모두에 매력을 느끼며, 아동에게만 매력을 느끼거나 아동과 성인 모두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대개 아이를 알고 있는 성인이거나 가족 구성원, 양부모 또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선생님이나 코치 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고, 자신의 가족 내의 소아에게만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근친상간). 약탈적 소아성애자는 폭력과 강압을 사용하여 아동을 성적 행위로 끌어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경우 그 아동이나 아동의 애완동물을 해치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데, 이런 소아성애자들 대부분은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다고 한다. 많은 소아성애자가 약물남용 또는 의존성과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앓게 되는데, 이들은 가정 불화 속에 자란 경우가 많고, 결혼 생활에 갈등을 겪는 일도 흔하다. 


 소아성애의 원인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나뉘는데, 유아기에 엄마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쉽게 다루고 조절할 수 있는 아이를 선택하게 된다는 이론(오이디푸스기에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보상)과 어린 시절 자신이 부모로부터 당한 피해를 자신도 똑같이 가해자가 되어 행한다는 이론(유년기의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등이 있다. 그런데 소름 끼치는 사실은 소아성애자의 대부분이 아동기에 성적 학대를 당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저학력 저소득 빈곤층이어서 생긴 일이고, 그에 국한 지어서 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소득 빈곤층의 어린아이들이 사회적 관심이나 정서적 지원이 취약해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고학력, 고연봉의 직업군이면서 소아성애자인 경우도 많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개 아이를 알고 있는 성인이거나 가족 구성원, 양부모 또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선생님이나 코치 등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학력과 연봉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일이고, 나에게 절대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장담할 수 없다. 언론에 알려지는 일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실제 피해사례는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의 확률이라도 그 1%에 내가 해당된다면 내가 100%의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혼 변호사로 오랜 기간 활동하다 보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세상의 추악한 모습들을 직면하게 될 때가 많다. 그중 가장 마음 아픈 일들이 부모의 자녀 학대, 특히 성적 학대 부분이다. 남편이 친딸 내지 친아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들의 사연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해서 멘털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당사자인 구제님들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설명하기에 부족한 충격과 불안함으로 정신과 약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아성애 장애자의 자녀들에 대한 성폭행은 워낙 은밀하게 행해지다 보니 그 증거를 잡기 매우 어려울뿐더러,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찰을 해야 비로소 이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게 되고,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여 발견시기가 늦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피해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도 가족 성범죄의 특성상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며 피해자와 그 보호자를 과대망상으로 치부하고, 주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구제님들이 막막한 심정을 토로하신다. 


 한 구제님의 경우 뒤늦게 딸의 피해사실을 알고 변변을 찾아와 오열하셨다. 나는 이혼소송으로 위자료 청구, 재산분할 청구를 하면서 동시에 구제님이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 친권을 단독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였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성적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와 산다는 것이 지옥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나아가, 배우자의 면접교섭권 행사를 박탈 내지 제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 몹시 어려운 부분이다. 구제님이 갖고 있는 부실한 증거만으로 상대방의 성도착증, 소아성애증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동학대로 형사고소를 하여 혐의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했다. “아이들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 형태로 여자 경찰분이 피해자 조사를 하시니 너무 걱정 말고 용기를 내세요”라고 구제님을 독려했다. 동시에 가정법원에 소명자료를 제출하여 심리검사를 통하여 가해자인 배우자와 자녀의 심리상태를 파악하여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그 결과, 구제님은 친권, 양육권을 모두 얻게 되었고, 자녀들은 가해자로부터 안전하게 분리되어 부당한 면접교섭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다. 






 요즘 교제 중인 사람과 결혼 전에 웨딩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유행이다. 건강한 2세의 탄생을 위해 임신능력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상대방의 육체적인 건강과 임신 가능성 만이 아니다. 상대방이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성적으로 건전한 지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징후는 대체로 가풍에서 드러난다. 


 엄마처럼 안 살겠다고 다짐하던 딸이 엄마 팔자를 대물림한다. 신체건강이 유전이나 가족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는 정신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성격 또한 가족으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아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부분이 많다. 아빠의 주폭에 엄마가 고통받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목격해 온 여자가 남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결혼 후 남편에게 불안감을 투사하여 부부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을 낳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람피우는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깊이 남아 있던 남자가 결혼 후 아내에 대한 의처증으로 결혼생활을 갈등 상황에 빠뜨린다. 내가 가족을 존경할지 혐오할지는 나의 선택이지만, 그들의 습관과 언행은 내 선택과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나에게 물든다.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가족이다.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반드시 상대방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만나보아야 한다. 가족의 가풍도 충분히 탐색하고, 이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충분히 알아보고, 가족이 이 사람을 이 사람이 가족을 어떻게 여기고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어머니를 보면 그 딸의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고, 아버지를 보면 그 아들이 어떻게 늙어갈지 추측할 수 있다. 가족들의 사고방식과 언행이 상식적이지 않고, 그 역사가 굴곡져 있다면 교제 중인 사람을 더 철저히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상대방이 가족들의 비행을 타산지석 삼아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 이상, 가족들의 비행을 답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그 나쁜 혈통은 당신이 낳은 아이마저 괴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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