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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Dec 08. 2021

방송국 첫 출근 후 충격적이던 것

무거운 사람이 되어야지

"자막 디자인을 맡아주세요"


속으로 헉 제가요..? 저요?라는 말이 차올라 입 밖으로까지 나올 뻔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덕에 삼킬 수 있었다. 디자인 맡아주시고.. 다 하시면 편집 바로 들어가면 돼요. 짧게 짧게 컷 하는 형식이라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이번 주까지 가능하죠? 너무 부담 갖진 말고 최대한이요.


'wow...'

"네 일단 해보겠습니다."


첫날이었다. 뭐든 처음은 떨리는 법. 늘 가고 싶던 방송국, 방송국 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었고 제일 애정을 가지고 있던 곳에 출근하게 되었다. 가면 무슨 일을 맡을지, 사람들은 어떨지, 보안이 강하다던데 들어갈 땐 어떻게 들어갈지, 내 자리는 어딜지, 첫인사는 어떻게 건넬지..... 아주 작은 생각부터, 그 생각이 점점 커진 건지 원래 컸던 생각인지 모를 만큼 전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출근을 하고 팀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산뜻한 긴장감이 몸속에 퍼졌고 어제 날 어지럽히던 생각들을 다 걷어내지 못한 채 첫 업무를 받았다. 나는 뉴미디어를 통해 방송국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팀에 속했다. 처음 받은 업무도 앞으로 업로드될 콘텐츠 중 하나였다. 아무리 짧은 영상이라 해도 총 8개 영상을 작업해야 했다. 말씀하신 대로 이번 주까지, 그러니까 5일 동안 자막 디자인부터 2-5분 분량 영상을 총 8개 완성해야 했.. 다..... 네 일단 해보겠단 대답에서 '일단'은 5일 안에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미리 깔아 둔 쿠션이었다.


제목에 언급한 ‘충격’은 첫날부터 바로 일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이나 촉박한 데드라인이 아니다.


"아 ooo 말이 너무 많아 짜증나"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사람에 대해 뱉은 다른 사람의 감상이었다. 촬영을 다녀온 사람이었고 건네받은 촬영본에서는 출연자에 대한 기분이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예의를 지켰고 긍정적이었으며 출연자가 촬영을 잘할 수 있게끔 디렉팅 해주던 사람이었다. 촬영 과정이 힘들었던 탓인지, 마음처럼 잘 연출되지 않아서 그런지 위와 같은 말(위에선 많이 순화했다) 외에도 부정적인 말을 꽤 했다.


맞장구를 치기에 난감한, 듣고 있기 편하지 않은 말들이었다. 첫 일이라 아직 때(?)가 묻지 않은 눈으로 접해서 그런가. 말이 많아 짜증 난다는 사람은 활발하고 에너지 넘쳐 보였고, 말이 많기에 웃음 포인트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좋았다.


방송국 밖에 있을 때 여러 콘텐츠를 접하고 챙겨보던 소비자로서, 제작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출연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정을 바탕으로 더 매력적으로 편집해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별생각 없거나 좋은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자칫 내가 그 출연자라면 속상할 것 같은 말들이 많이 오간다. 큰 사고를 쳤다거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 다소 가볍게 오가는 얘기들이 많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정말 애정을 바탕으로 대하는 제작자도 많다.) 첫날 아무것도 모른 채 봐서, 심지어 처음 맡은 일이니 더 좋게 봐진 걸 수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 그 출연자가 힘들게 했을 수도 있고 다른 내가 모를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든 생각은,


어떻게 느끼든 범법행위나 인간 윤리에 어긋나지 않은 이상 출연자에 대해 평가하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도 쉬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굳이 나서 알리지 않아야겠다.

한 연예인에 대한 -이렇다더라 들리는 소문은 한번 더 걸러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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