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뻔소-에피소드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랑을 받은 브런치북 '이뻔소(이혼할 뻔했네 소중한 너를 두고)' 에피소드입니다.
'이상한 목공방 2'를 한 주 쉬는 관계로 지난가을에 쓴 글을 다듬어 올려 봅니다.
이전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많은 작가님들의 공감과 응원과 위로에 감사드립니다.
종일 뉴스를 들으니 얼마나 많은 말들이 속에서 부글거리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들은 다 접어두고 딱 글 올리기 힘든 이유만 썼지요.
그리고 일부러 답글은 달지 않았습니다.
함께라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국일수록 위로가 되는 글을 써달라는 당부에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치지 말고 힘내서 함께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내 봅시다.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자바리~ 자바리~ 노래를 부르던 낚시광 남편은 토요일 새벽 5시가 되면 세수도 않고 떡진 머리 위에 모자만 눌러쓰고 낚시가방을 챙겨 나가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자바리를 잡아 왔다.
남편 왈. 자바리는 1kg에 20만 원이 넘는 값비싼 고급 어종으로 수도권에서는 맛보기 힘든 환상적인 맛이라고 한다.
(자바리는 제주에서는 다금바리로 불리지만 실제 다금바리는 살짝 다른 어종이다.
자바리는 농어목 / 바리과 / 우레기속 / 자바리종이고
다금바리는 농어목 / 바리과 / 다금바리속 / 다금바리종으로 분류된다. 이종사촌? 정도 되는 셈이다.)
나는 해산물은 좋아해도 생선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드디어 자바리를 잡아왔으니 소주 한잔에 말동무라도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바리와의 힘싸움에서 승리한 무용담만 한 시간은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남편은 요즘 낚시에 진심이다. 틈 날 때마다 낚시 너튜브를 보고, 바늘에 낚싯줄을 묶으며(바늘도 낚싯줄도 굵기와 종류가 다양하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낚시를 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남편 회사 이 XX 본부장도 낚시 광이다. 그는 주로 배낚시를 즐기던 사람이다. 배낚시라고 고기가 잘 잡힌다는 보장은 없다. 이 본부장은 남편을 따라 좌대낚시를 해보고 손맛에 푹 빠져 매주 낚시를 가자며 조른다. 그놈에 자바리 타령을 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자바라만 풀어놓는 낚시터는 자리값이 두 배다.)
일할 때는 삐걱대도 낚시할 때는 쿵짝이 잘 맞는 둘이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다시는 가지 안 가겠다 다짐을 하는 것도 둘이 똑같다. (참고로 이 본부장은 작년 한 해 동안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아들이 왜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느냐고 놀려대니 다시는 낚시 가지 않겠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낚시 가지 않겠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는 민망함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것을. 남편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바늘에 낚싯줄을 묶고 이 본부장은 또 낚시를 가자며 조를 것이 뻔하다.
좌대낚시 자리 값은 보통 6만 원으로 냉난방이 가능한 방갈로를 빌리면 2인 기본 20만 원이 넘는다. 땅을 파 물을 채워 물고기를 풀어놓고 잡는 것이 어린아이 낚시 놀이랑 다를 게 없다. 뭐 하러 그 비싼 돈을 주고 낚시놀이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동네 저수지에서 붕어낚시를 자주 다니던 남편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민물이 바닷물로 바뀐 것뿐 남편의 낚시 놀이는 여전하다.
남편은 다이소 단골이다. 용돈이 많지 않으니 낚시 용품을 살 돈이 부족하다. 착한 가격을 자랑하는 다이소에는 요즘 골프, 낚시, 캠핑용품등 각종 취미 레저용품들이 늘고 있다. 그러니 남편은 다이소 가는 것이 즐겁다.
어느 날은 해외 배송이 도착했다. 낚시용 구명조끼가 온 것이다. 특이하게도 구명조끼에 작은 소품들을 매달수 있게 되어있다. 남편은 다이소에서 구입한 소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신이 났다.
특별히 주문한 대두모자를 쓰고, 소품을 매단 조끼를 입고, 자기 방 문 앞에서 부엌까지 런웨이를 한다. 성큼성큼 걸어와 싱크대로 가 설거지를 한다.
"왜 조끼를 입고 설거지를 해?"
"멋있잖아!"
"하나도 안 멋있는데?"
"에이~ 그렇다고 치자!"
"헐~~ 그럼 내가 사진 찍어 줄까?"
"이히히히!"
그래. 너의 즐겁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응원해 볼게. 다만 고기랑만 놀지 말고 나랑도 좀 놀자!
자바리를 며칠 숙성시킨 후 드디어 시식하는 날이다.
처음 회를 쳐 보는 것이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은 나는 종이까지 슬라이스 치는 칼솜씨를 발휘해 최대한 얇게 저몄다. 곁들임 반찬과 소주를 식탁에 올려두고 마주 앉았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남편이 말했다.
"자가기 먼저 먹어 볼래?"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치! 이게 뭐라고 저렇게 기대를 해? 그래. 내가 맞장구는 쳐 준다.'
활짝 웃으며 화답을 했다.
"에이~ 자기가 먼저 먹어 봐!"
남편이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해맑은 미소가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그래? 그럼 내가 먼저 먹어 볼까?"
그러고는 자바리 한 점을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그런데... 말이 없다. 묘한 표정이다.
나도 한 점 초장을 듬북 찍어 입에 넣었다. '이게 무슨 맛이지?' 말 없는 남편 대신 먼저 맛을 평가했다.
"담백하고 좀 부드럽고 비린내는 확실히 덜한데... 음...... 이게 그렇게 맛있는 건가?"
남편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그러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 그다지 특별한 맛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회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나은 것 같기는 한데. 글쎄... 20만 원짜리 맛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말이. 나도 맛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솔직히 별 기대도 안 했어. 회가 그냥 회 맛이지 뭐!"
남편은 실망한 눈치다.
"이 본부장 말로는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던데! 그래서 엄청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회 맛을 모르나?"
"그런가?"
"나야 뭐! 원래 초장맛으로 먹는 사람이니까. 그 맛이 그 맛인데. 아무리 그래도 환상적인 맛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그냥 광어나 우럭으로 먹자! 돈 아깝다."
"우리는 광어나 우럭도 잘 안 먹잖아!"
"그렇긴 하지... 에이~ 다시는 내가 자바리 잡으러 가나 봐라!"
"아이고~ 퍽이나??"
다음날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방긋 웃으며 하는 말이
"이본부장이 그러는데 자바리는 얇게 썰면 맛이 없데!"
"무슨 말이야? 언제는 얇게 썰어야 맛있다더니?"
"몰라. 좀 두껍게 썰어야 된다는데?"
"웃기시네! 됐어. 어차피 회 맛은 다 거기서 거기야."
"그렇기는 하지!"
남편은 나를 만나 회를 먹기 시작한 사람이다. 대구 촌구석에 살면서 생선이라고 해봐야 소금에 절인 고등어나 조기 구경이 전부였다. 생선 맛도 모르는데 회 맛을 알리 없다. 나는 섬에서 자랐지만 회는 즐기지는 않는다. 어차피 회 맛을 모르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회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야. 비싼 고기 잡아와 봐야 소용없어. 자바리 낚시 그만 가! 돈 아까워!"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더 두껍게 썰어서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또 자바리 잡으러 간다고?"
"음... 글쎄??"
부드럽고 차분하지만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도 말 꼬리는 살짝 올려주었다.
"자기야..."
"응??"
내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남편도 분명히 봤을 것이다.
"작작 좀 해! 지겨워!!!"
남편을 공격할 때는 부드러운 말투와 미소가 관건이다. 단어로 봐서는 공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부드러운 말투는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쿠션 역할을 한다. 남자들은 부드러움에 약하다. 특히 민수는 그렇다. 공격이 아닌 듯 부드럽게 치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부드러움이 과하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화를 낸다 해도 어차피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마찬가지다. 언성을 높여 화를 돋우고 자폭 하느리 못 알아듣더라도 부드럽게 뒤통수를 갈기고 빠져나오는 것이 차라리 낫다. 오랜 싸움에서 나온 노하우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면 내 속이라도 편해야 할 것 아닌가.
남편은 특유의 넉살로 받아친다.
"에이~ 사랑하잖아~"
이 놈에 인간은 사랑한다는 말을 꼭 써야 할 때 안 쓰고 자기 아쉽고 난처할 때만 꺼내드니 더 얄밉다.
"야!! 사랑한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거 아니라고 했지!"
"에이~ 그래도 사랑하는 걸 어떻게 해~~"
"아유~ 미친다. 그래! 그럼 이리 와 봐!! 내가 아주 사랑스럽게 깨물어 줄게~"
"으아~~~~"
남편은 언제 또 다녀왔는지 한 겨울인데도 바닷가에 낚시꾼들이 많다며 반가워한다.
"그래? 날이 추워서 고기가 안 잡힐 텐데?"
"그래도 바닷가에 낚시 꾼들이 엄청 많아!"
"바닷바람 장난 아니야! 추워!"
"나도 가도 돼?"
"에이~ 가지 마! 감기 걸려."
"그렇겠지?"
계엄 이후였다.
그들은 어쩌면 고기를 낚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의 회복이 시급한 요즘.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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