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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09. 2023

저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요



추적추적 가을비가 찾아온 지난 주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적당하게 승객이 탑승한 버스에 올랐는데, 한 여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크림색 원피스에 갈색 부츠, 한 손엔 맑고 투명한 비닐우산을 들고 검은색 핸드백을 든 다른 손으로는 의자 손잡이를 동시에 쥐고 있었다. 다른 승객 삼십칠 명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어색함이 싫었는지 우리는 동시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차창밖에는 강한 비바람으로 노란 은행잎이 후드득 떨어졌다.



버스는 마지막으로 탑승한 남학생이 계단을 오르자마자 문을 닫고 빠르게 출발했다. 버스 뒤편에서 다른 승용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기도 전 비좁은 공간에서 젖은 우산으로 거슬리게 하는 아저씨를 피해 처음 시선이 머물렀던 여성 쪽으로 향했다. 의도하진 않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을 바라봤지만,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습한 공기로 인해서 차 안과 안경까지 뿌연 습기가 찼고 덕분에 숨도 거칠어졌다. 그녀와 내 어깨 사이는 지름 오 센티 기둥과 기둥 두 배 정도 공간만 남았다. 대략 센티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우리가 함께한 버스는 첫 번째 정거장에 도착했다. 어느새 나는 기둥에 붙었지만, 기둥과 그녀 사이는 뒤에서 급하게 내리는 학생 두 명이 통과한 어깨너비 정도로 벌어졌다. 대략 이십팔 센티 정도.



다시 차 문이 닫히고 엔진 굉음과 함께 버스는 출발했다. 흔들리는 버스와 함께 더 멀어졌던 그녀가 휘청거리며 기둥 근처까지 바싹 다가왔다. 조금은 의식해서 다가온 게 느껴졌다. 원심력과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무시하려는 내 우측팔 전완근은 터질 듯했고 기둥을 잡던 손가락 끝은 하얗게 변했다.



크림색 원피스 좌측 어깨 봉재선 십 센티 하단부 실오라기가 지난달 초 스타필드 고양점 유니클로에서 이만구천구백 원에 원뿔원으로 구입하여 처음 착장하고 나온 카키색 니트 오른쪽 팔꿈치 부근에 살짝 닿았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바닥을 보는 척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때였다. 내 스니커즈 오른발 새끼발가락 바로 옆에 갈색 부츠가 다가왔다. 대략 영점 오 센티 정도. 그러더니 기둥을 중심으로 디엠지를 통과해 엠디엘을 슬금슬금 넘었다. 결국 갈색부츠는 맞닿았고 어느새 내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다시 호흡이 가빠졌다.



버스 흔들림비슷하게 하늘거리는 크림색 원피스는 하얀 스니커즈와 갈색 부츠를 번갈아가며 시선을 가렸다. 원피스 안쪽으로 살짝살짝 비치는 갈색 부츠의 은은한 색깔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침내 승객이 많이 내리는 세 번째 버스정거장에 도착했고 하나둘씩 내렸다. 기둥을 중심으로 우리 앞에 앉아있던 그러니까 그녀와 내 사이 정확히 가운데 앉아있던 오지랖 넓은 듯 한 아주머니가 우리 둘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저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요. 그러니까 그만 싸우고 아무나 앉으세요. 젊은 사람들이 쯧쯧"



#라라크루 #갑분글감 #버스(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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