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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pr 28. 2024

어떤 글 한 편


지난해 열심히 썼던 필사 노트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쥐어 잡스러운 생각과 아무 감정을 휘갈겼다. 최근 들어 생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멀리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다. 조금 핑계를 댄다면 요즘은 학술 자료와 논문을 읽고 새로운 보고서를 는 데 치중했다. 각종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만들면서 글쓰기를 즐길 때처럼 글 생산성은 유지했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기운은 매우 달랐다.


일을 통해서 다가오는 기운 그러니까 영향력이나 에너지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오기까지 어 주었다. 명확하게 한계를 느낀 건 아니지만 일을 통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물론 단기적으로 눈에 드러나는 성과나 결과를 목도하면서 자만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근근이 예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간다고 느낀다. 변화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머물고 고이면서 쇠퇴하거나 타락했던 수많은 시간이 내 삶에도 고스란히 새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나름 오랜 시간 몸에 스며들게 했던 독서와 글쓰기가 방향성과 연속성을 읽고 스타일마저 바뀌려는 움직임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속한 조직에 항복하고 잘 스며든다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천천히 익히며 자리를 잡았던(착각일 수 있다) 글쓰기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면서도 일을 통해서 나아가는 글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니고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기대심도 가진다. 두 세상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사적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커졌다. 덕분에 오랫동안 쉬었던 공책에 검은색 흑연 가루가 빡빡하게 새겨졌다.


자유롭고 편안한 사적 글쓰기와 사는 이유를 찾는 공적 글쓰기 사이에서 발생한 혼선이 잠들었던 공책과 연필을 깨웠다. 맥락이 맞지 않거나 비문 투성이라도 상관없다. 잠시 놓았던 연필을 다시 쥐고 표현하고 싶은 단어를 찾아서 한 자씩 새기다 보면 문장이 만들어지고, 문장은 쓰레기 더미처럼 공책에 가득 쌓인다. 어찌 되었든 보잘것없고 초라한 내 생각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기록된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한 시간 더 자거나 누워서 스포츠 뉴스를 본다고 해서 손흥민이 한 골을 더 넣거나 이정후가 홈런을 더 치는 것도 아니다. 더 넣거나 친다고 한들 감동을 더 주거나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고작 글 한 편 써 놓고 고귀한 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 돌아보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정리했다는 것과 사라지는 시간을 쪼개어 여러 번 쓴 글을 읽고 고쳐 쓰며 가끔 마음에 드는 문장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럽다.


아무런 의미 없는 활자를 조합하기도 하고 잘 엮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쓰레기처럼 써놓고 여러 번 다듬다 보면 제법 읽을만한 글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혼란하고 한쪽으로 치우쳤던 뇌는 다시 꿈틀거리며 중심을 잡고 조금 더 나은 단어와 문장을 찾아낸다. 어쩌면 뇌를 거치지 않고 손 끝이나 가슴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난 십 수년 동안 상당히 많은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결론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쓰기 힘들었던 '어떤 글' 한 편이 뚝딱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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