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려니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며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지루하고 심심해서 그동안 미뤘던 글을 몇 편 썼다. 하지만, 딱딱한 침대에서 벗어나 푹신한 침대로 옮기니까 책상에 앉으러 가는 길이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는 것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생장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40여 일 동안 걷는 순례자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다. 누워서 릴스나 쇼츠를 보다가 단번에 끊고 책상까지 가는 2m 여정을 엄청난 용기와 결심 끝에 해낸 자를 칭찬하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너부러진 육신을 의자에 앉게 만드는 일은 어지간한 선정, 선동으로 이룰 수 없다. 그런데도 육중한 육신을 움직이게 만들 글이 있다. 마르크스와 앵갤스 공산당 선언도 못 한 일을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가 해냈다. 글 한 편을 뚝딱 지어서 건넨 글벗(일방적으로) 덕분에 오밤중에 즐겨 마시는 맥주 한 캔을 따고 글 세상에 발을 들인다.
요즘 글을 쓰려고 앉아도 단락이나 문단이 이어지질 않는다. 한두 단락은 나오는데 뒤따라 나오는 글이 전에 썼거나 지루할 것 같은 생각에 두세 단락을 넘기지 못하고 멈춘다. 운 좋게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문맥이 맞지 않고 의미도 없어서 맥락 없이 주절거린 활자는 백스페이스 바나 드래그 후 딜리트 버튼을 통해서 세상에서 사라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장할 때도 있지만, 유통기한은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기획 없이 감정과 생각을 흩어서 뿌리고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초고에서 벗어나 퇴고하는 순간 모두 지워진다. 형편없는 활자 조합을 마주하면 부끄러움과 안타까움까지 몰려들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레고로 정육면체를 만들듯 볼품없는 글에 마침표를 찍으면 읽지 않는 글임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이려는 글이 아니라는 모순된 합리화로 근근이 버티지만, 보이려는 글이 아니면 글쓰기 플랫폼에 올릴 이유가 없다.
한창 좋아요나 댓글에 치중했을 때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응원과 격려도 많이 받았는데, 동력으로 치환되기보다는 보답과 의무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아마도 쌓인 글이나 흐른 시간 때문에 무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줄어든 숫자가 아쉬움으로 남는 건 보이려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지인들에게 쓸쓸함을 달래 줄 천 원짜리 응원을 구걸할까 고민하다가도 결국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그냥 쓰고 수백수천 겹 더 쌓다 보면 스스로 만족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로 한숨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