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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Aug 14. 2023

누구나가 겪어도 당연한 고통은 없어...

23살의 해방일지

“치과 다음 주에도 오래.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아서 한 번에 할 수가 없다고 오전, 오후 두 번 오라고 했어.”

“이번에도 일요일에 올 거니?”

“아니, 토요일 저녁에 오려고.”     


지난주 월요일 치과에 다녀온 딸이 하는 말이었다. 교정을 시작한 지 2년 6개월째. 딸아이는 정기적으로 매달 한 번씩 치과에 다니고 있다. 교정이 끝나가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치과에 가야 했다. 다음 주면 이제 일주일마다 치과에 가는 것은 끝날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드디어 교정기를 떼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유지 장치를 장착해야 한다고 했다. 2년이 넘는 동안 매달 치과에 다녔고, 최근에는 2주마다 다니고 있다. 교정이 끝나가며 치아 상태를 점검하느라 자주 가는 모양이었다.      


딸아이의 독립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치과를 가야 했기에 두 달 동안 매주 집에 오고 있다. 주말과 격일로 광복절이 있어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기차표가 매진됐다. 남편은 기차표를 예매하는 앱에 수시로 들어가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가끔 누군가가 취소하는 반환되는 표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기차표 예매하지 말고 데려다주고 오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내일 데려다주고 화요일은 광복절이라 쉴 수 있으니까.     


내일 치과에서 유지 장치를 하고 나면 당분간은 치과에 올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마음이 부산했다. 이불도 갈아줘야 하고 반찬도 해서 냉동시켜서 보내야 하고. 이것저것 챙길 것이 계속 생각이 났다.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살 것이 많아졌다. 반찬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보내려니 마음이 바빠졌다. 집에 돌아와 음식을 시작해서 완성하고 한번 먹을 만큼만 조금씩 나눠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오이냉국은 냉장실에 넣어두고 가져갈 물품은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딸아이는 전기 레인지에 밥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하나씩 꺼내 먹는다고 했다. 반찬은 지난번에 가져다준 장아찌와 장조림, 냉동실에 넣어둔 쪽갈비찜과 닭다리 구이를 먹었다. 가끔은 카레를 해먹기도 하고 누룽지를 끓여 먹기도 했다. 누룽지는 직접 냄비에 밥을 하고 눌려놓은 것. 제법 솜씨가 늘어가고 있다. 피곤하면 배달시켜 먹으라고 하니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번거롭다며 시키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식탁에 고스란히 놓고 들어가 버렸던 때와는 사뭇 차이가 많이 났다.     


재수하느라 학원에서 밤 10시에 돌아와 전기 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 밥을 하고 냉동실에 넣고 누룽지까지 눌려놓으려면 꽤나 분주할 것이다. 밤 12시에 ‘집안일 다 했다’며 톡을 보내올 때가 그럴 때였다. 이제 조금씩 살림꾼다운 면모가 보일 때가 많아졌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고 마는 성격이라 힘들어도 말을 안 하고 참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스스로 독립을 하고 싶어 했고, 문과에서 이과로 과목을 바꿔서 하는 거라 해야 할 공부량이 상당할 텐데 싶다. 어제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잠시 쉬더니 책상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오랜만에 간식 준비를 했다. 조용히 간식을 책상에 올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오랜만이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친구들 마주치는 것도 힘이 든다며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말을 했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내 마음과 다른 말로 대답을 하는 것이 너무 가식적이라며. 웃기 싫은 데 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학교에서 아예 밥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얼마를 다녔을까. 학교가 그렇게 힘든 공간이었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냥 대한민국 수험생이면 누구나가 겪는 고통이라고. 당연한 고통은 없는 것인데...


메타쉐쿼이어 가로수
여름 들녘 익어가는 벼이삭



#가족 #독립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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