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면서도 '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녀야 할 정도로 추워진 어느 날
아이들과 책을 사러 나와 강남 대로를 걷다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길을 건너가는 할머니를 봤다. 바람을 막으려고 입으신듯한 노란 조끼 하나를 걸치고, 할머니는 차가운 리어카 손잡이를 장갑도 없이 잡고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신호를 건너 시야에서 사라졌다 손을 잡고 길을 가던 아이들이 말했다.
“할머니 힘들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가 사라진 골목 끝을 한참 바라봤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강남 한복판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끄는 모습이라니, 낯설고, 신기하고, 동시에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힘든 삶, 가난한 삶에 대해 생각하다 '거지'라는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어릴적 동네 뒷산 넘어 재개발 지역에 놀러가 BB탄 총싸움을 할때면 나타나 고함 치시던 '거지 아저씨'가 떠올랐다.
내가 어릴적 골목이 굽이굽이 있던 강북 어느 동네에서는 ‘거지’가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을 뜻했다. 지금처럼 비유나 풍자의 언어가 아니라, 정말 자의던 타의던 삶이 무너져 내려 매 끼니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술에 의지한 실직자, 누군가 병에 짓눌린 가정, 이런 저런 사연으로 불법 증축된 반지하에서 아둥바둥 버텨내는 남매. 그들이 바로 ‘거지’였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쟤네 집은 좀 어려워”라는 말은 도움없이 살기 어려운 가슴 아픈 사회 뒷모습이었다.
1970~80년대 까지만 해도 강북에 강남보다 부자가 많았다. 창신동, 돈의동, 성북동, 평창동에는 정치인과 기업인, 예술가들이 살았고, 강남은 이제 막 개발되고 발전이 시작되던 신흥지대였다. 그래서 그 시절 강북의 양극화는 절대적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정말 굶었고, 부자는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가 집에 같이 살던 시대.그 간극은 강남에 건설되는 도로 폭처럼 넓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나도 언젠가는 올라가리라”는 가난을 이겨내려는 꿈과 목표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서울 강남에 자가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문제는 세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부자’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 가난은 더 이상 절대적인 결핍이 아니라,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바로 ‘강남 거지’다. ‘강남 거지’는 실제로 경제적 빈곤층이 아니다. 고가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출에 허덕이고, 재산세에 쫓기고, 소득은 제자리인데 자산은 종이 위에서만 ‘부자’로 평가되는 사람들이다.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은 서울 외곽의 아파트 다섯 채 값에 달하지만, 그 안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서울의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27배. 그중 상당 부분이 ‘강남 자산’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에 사는 사람들조차 “나도 이제 거지 같다”고 말한다.
강북의 거지가 운명적이고 절대적인 가난의 결과였다면, 강남의 거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허위에서 태어난 개념이다. 사람들은 더 넓은 평수, 더 비싼 단지, 더 높은 학군으로 향한다. 그 경쟁의 끝에는 언제나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피로가 남는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는 이미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단지 이름 하나로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고, 밖으론 여론과 뉴스에서 나오는 아프트 이름과, 안으로 현관과 엘리베이터에서 보이는 학원 전단지 이름이 자존감을 결정한다.
이곳의 양극화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의 구조다. ‘강남거지’라는 풍자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사다리의 함정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불안해지고, 이웃의 집값이 내 삶의 기준이 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더 큰 평수를 향한 대출, 더 좋은 유치원을 향한 지출, 그리고 ‘내 아이는 남의 아이보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이제 ‘거지’라는 개념은 절대적 빈곤의 상징만이 아니라, 허례와 비교의 상징이 되었다.
강남의 거지, 강북의 거지 둘 다 결국 ‘결핍’을 품고 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의 결핍이냐가 다를 뿐이다. 예전 강북 거지는 먹을 것이 부족했고, 현재 강남 거지는 만족이 부족하다. 당시 강북 거지는 생존이 문제였고, 지금 강남 거지는 자존심이 문제다. 강북 거지는 운명적 현실이 버거웠고, 강남 거지는 자발적 현재가 버겁다.
'강북 거지'가 내일 아침 내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강남 거지'의 개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때부터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세월이 흘러 ‘가난’의 본질이 물질에서 마음으로 이동하는 것이 서울안에서 지역화가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부자 동네에서조차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 그건 사회가 병든 것일까, 인간의 욕망이 정체성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일까.
■ TMI - 기본소득(UBI)와 보장소득(GBI)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 무조건적 지급 사례: 핀란드(2017, 월 78만원), 프랑스(85만원), 캐나다 온타리오(2017, 130만원), 미국 일리노이주(2025, 70만원)
- 장점: 소득 안정성과 심리적 안정감, 지급대상 선별에 필요한 행정비용 감소/누락대상 감소
- 단점: 막대한 재정, 물가 상승, 근로 의욕 저하, 장기적 기간 제한, 효과 불확실
☞ 개선: 소득+자산+사회안전망 고려 복합적, 장기적 설계가 필요(*출처: 2023, Universal basic income: pros, cons and evidence)
■ AI시대의 육아 한 줄 성찰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건 부의 좌표가 아니라 만족의 온도다. AI는 자산 가치를 계산할 수 있어도, 행복의 체감 온도는 읽지 못한다. 오늘 날 보여지는 문화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현실 인지, 그 사이에서 진짜 풍요는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인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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