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세대가 다시 만나는 곳이었다
■ 시간대별로 연령별로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들
아내가 내게 “00역 근처 학원가 요즘도 난리야”라고 말할 때면, 나는 그게 단순한 ‘학원가 소식’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말에는 이미 우리 세대가 지나간 동네가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가 이제는 배우러가 아니라 태우러 가야한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다. 아내는 강남 학군에서 자랐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원이 보이는” 동네였다. 학원이 밀집한 거리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을 태운 차들도 있었다. 지금도 삼호가든 삼거리 일대에서는, 아내가 어릴 때 같이 자랐던 친구들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라이드’를 하다가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고 한다. 학군이 공부의 영역을 넘어 생활권이 된 것이다. 학원가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오랜만이야!”가 나오는 동네. 그게 강남 학군의 어떤 현실이다.
강남의 또 다른 기이한 현상은, 그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지점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원가에서 만나고, 중학교로 갈때쯤이면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영재원 준비반 같은 데서 다시 만난다.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전문직으로 살게 되면, “그 동네”가 결국 나름대로 열심히 산 세대를 모아주는 구조가 된다. 이게 흔히 말하는 ‘8학군’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내가 학군과 학원가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경험한 곳은 강북 노원이었다. 집에서 거리가 있었지만 “학원셔틀이 학교 앞까지 오고”, 어떤 곳은 대중교통비를 지원해주기도 해서, 노원의 학원가를 찾아가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학원가에 들어가며 '일타 강사'가 무엇진지를 처음 느꼈다. 나는 솔직히 말해 학원과 과외가 적성에 맞는 타입은 아니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빠르게 넘어가고 잘 모르는 것에 집중 할수도 없고,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무작정 길게 끊어서 다니기보다 필요한 과목만 단기간에 들었다. 그런데도 학원은 분명히 역할이 있었다. 면학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누군가 ‘쉽게’ 설명해주었고, 무엇보다 공부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감각을 알게 해주었다.
그때는 학군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인프라가 과열되는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대치동 같은 곳은 고등학교 방학 때, 강남에서 온 친구들의 소개로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어보려고 한두 번 가본 경험이 전부였고, 그때는 ‘강남 학원가’가 하나의 관광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멀고, 크고, 빽빽하고, 묘하게 압도하는 곳'이 당시 어린마음이 대치동 학원의 이미지였다.
세월은 잔인하다. 내가 ‘학원을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 끝나고, 지금은 내가 세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로 산다. 그러고 나니 학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보내야 하는가,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보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직접 달라붙어서 가르쳐 주는 데는 시간과 역량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부부가 주담대, 생활안정자금 대출이자와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들을 뒷수숩하고 있는데 각각의 특생을 가진 세면의 아이들은 매일 각자가 새로운 질문을 한다. 어떤 날은 수학이고, 어떤 날은 영어고, 어떤 날은 과학이고, 어떤 날은 그림이다. 아이가 흥미를 보이고 소질을 보이는 부분을 살려주려면, 부모가 모든 것을 커버하기 어렵다. 특히 “지속적으로” 해주기가 힘들다.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은 이 점에서 너무나 잘 되어 있다. 그들이 시너지를 위해 학원가를 조성하고, 상권이 형성되고,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며 유지되는 구조다. 그래서 이제는 막연하게 학군과 사교육을 비판만 하는 태도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통계는 더 적나라하다. 2024년 기준으로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약 29.2조 원, 사교육 참여율 80.0%로 발표됐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7만 4천 원(참여학생 기준 59만 2천 원) 수준이다. [@KOSIS])
학군과 사교육을 비판할 때 중요한 건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분별력이다. 남들이 하니까, 내가 불안하니까, 내가 못한 걸 아이가 대신 해내길 바라니까— 이런 접근은 결국 아이를 태우고 부모를 태운다. 학군이 부모의 불안 해소용 도구가 되는 순간, 아이는 공부를 ‘자기 성장’이 아니라 ‘부모의 기분치료’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면, 그걸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써야 한다. 아이의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 키우고, 무엇보다 아이가 원하도록 동기부여하며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이 생기고, 결국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 아이가 전문성을 갖게 된다. 특히 이런 관점의 변화는 AI시대 상상도 못할 변화의 시기에 적응력을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봐야 할 사항이다.
웃긴 건, 나는 학원시절을 떠올리면 공부했던 기억보다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 시기가 그렇게 끔찍하지도 않았다. 학원 친구들과 가끔 땡땡를 치고 PC방과 노래방을 가고, 학원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던 시간.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내일은 진짜 열심히 하자”라고 스스로 말하던 그 시절. 학군은 세대를 거쳐 유지되지만 나에게는 결국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 어린 시절의 열정과 희망이 묻어 있는 장소.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학군은 단지 ‘경쟁 시스템’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학교생활의 일부, 재수생활의 고통, 그리고 다시 내의 아이들 때문에 돌아오는 삶의 현장이다.
■ TMI: 서울 3대 학군지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A) 80년대까지 계속된 과도한 중고등학교 입시경쟁을 없에려고 만들었다.
당시 사립학교와 일부 학부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군제 실시는 중학 평준화 정책과 함께 문교부(당시 교육부)의 강한 추진력으로 시행되었다. 중학입시에 대한 경쟁을 해소하고 도심부 인구 분산을 위해 도입된 학군제는 하지만 새로운 경쟁을 발생시켰고 그것이 바로 학군이다.
학군제는 거주지 중심의 근거리 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각 학군 내 학생 수 불균형과 추첨에 의해 무작위로 결정되어 예상치 못한 장거리 등교자 발생 등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통학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통학거리의 최소화와 더불어 명문 학교에 대한 배정에 있어 특정 지역으로의 이동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이 등장한 것과 더불어 ‘77년 ‘수도권인구재배치계획’이 기폭제가 되었다.
고교평준화 이후 생긴 강남지역 8학군의 신흥명문고 출현은 좋은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이동해온 인구(특히 중산층)의 집중으로 부동산 투기와 주택 가격의 상승을 발생시켰고, 학군은 부동산 판매 전략의 핵심적인 요인 → 아파트 판매 전략이자 가격 상승의 기제로서 학군은 교육 환경으로서의 정의를 뛰어넘는 좋은 주거지의 조건,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화했다. 정부는 학군제를 개편하는 대신 1989년 부터 목동, 상계 지역 등 서울시내 주택 공급 및 1기 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학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의도적으로 다른 학군지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2010년까지 고교 선택제 등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입시전문 학원의 대형화, 인기 학원 강사의 등장과 같은 사교육의 시장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논문) 학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백일순(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사회센터), 김주락(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AI 시대의 육아 성찰
AI 시대에 학원에 다니는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할 때, 더이상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서”가 답은 아니다. 학원을 통해 아이가 배워야 하는 건 결국 동기부여다. 학원은 지금 아이의 수준을 “줄 세우는 곳”이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 쓰면 아이가 자기 페이스와 원하는 것을 찾는 훈련장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부모가 해야 할 일은 학군과 학원을 숭배하거나 혐오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며 아이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통역’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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