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엄마 + 강북아빠

(에필로그) 비교를 멈추고, 기억을 남기기로 했다

by 애셋요한

■ 이 연재는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서울에서 자랐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감각을 가진 아내와 내가

“우리는 뭐가 같고, 뭐가 달랐을까?”

라는 질문이 첫 글의 시작이었다.


강남에서 자란 아내의 이야기와
강북에서 자란 나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어떤 장면에서는 옛 생각에 웃음이 났고,
어떤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으며, 또 어떤 순간에는

“아,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다른 경험을 했구나”

하고 조용히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서울 안에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통과한 우리의 기억

얼마나 다층적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남과 강북을 꺼냈고,

패션을 이야기했고, 빵집을 이야기했고,

아파트와 학군, 소비와 여가까지

자연스럽게 화제가 넓어졌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이게 맞는가?'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고,

연재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다.

'이 글이 혹시 강남을 너무 계산적이고 차가운 공간으로,

강북을 너무 감성적이고 투박한 공간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과 돈, 아파트와 소비 성향을 다루다 보면

자칫 강남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강북은 촌스럽고 뒤처진 이미지

읽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개인적으로의 합리화 했던 것은

이 글들이 어디까지나 비유였다는 것이다.

한가지 사례로 현실을 전부 반영할 수도 없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

강남도 하나의 강남이 아니고,
강북도 하나의 강북이 아니다.
사람마다, 집안마다, 골목마다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딘가에 있었던, 그리고 있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 하나로 추억 하나를 회상하고 싶었다.



이 연재는

정답을 말하려는 글도 아니었고,

누가 옳고 그르다고 가르치려는 글도 아니었다.

그저 다양한 출발선과 공간이 있었고,

그 차이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이 연재의 가장 큰 동력은
‘비교’가 아니라 ‘향수’였는지도 모른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살았던 아이들의 서울,
아파트 놀이터, 학원가의 밤,
동네 빵집의 냄새, 복고 바지와 힙합 바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족구장과 골프연습장,
경비 아저씨와 쌀집 아저씨.
그 모든 장면은
이미 사라졌거나, 이제는 희미해졌거나,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풍경이 되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다
글로 한번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의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아내와 함께 세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아빠다.
아이들의 하루는
우리가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촘촘하며, 훨씬 많은 선택지 속에 놓여 있다.

아이들은 내가 사는 곳이
강남인지 강북인지보다
집에서 놀이터가 가까운지,
학원에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는지,
학교기는 길이 즐거운지를 먼저 느낀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계산적이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람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어른이 될까?”


비교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의 생생함이다.
강남과 강북을 비교하는 글 30편을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더 이상 비교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을것 같다.
중요한 건
어디서 살았느냐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누구와 시간을 보냈으며,
어떤 감정으로 자랐느냐다.


강남에서 자라든,
강북에서 자라든,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자라든
아이에게 남는 것은
아파트 브랜드도, 학군 이름도 아니라
그 시절의 공기와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
함께 웃던 친구들의 얼굴이다.


철학을 전공한 아빠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나는 이론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금의 현실 세상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책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과 고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이에게

'어떤 기억을 남겨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도

훨씬 본질적인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선택을 해주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아이가
자기가 자란 시간을 억하지 싫어하지 않고,
따뜻하게 돌아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연재를 여기서 멈추는 이유는,

강남엄마vs강북아빠』는

소재도 어느덧 고갈되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더 이상 나눠 비교하는 방식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조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강남과 강북을 나누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충분하다.

이 연재는
완벽하지도 않았고,
때로는 억지스러웠으며,
타임라인이 어긋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뒤를 돌아보고, 웃고,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시대를 사는 부모들에게
이 글을 읽는 다른 부모들에게
이 연재가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부모가 처음인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아이에게 무엇을 더 해줘야 하는지
늘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건
육아와 교육에 완벽한 전략을 짜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는 첫번째 방법은

부모 각자의 삶이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릴적 행복했다면 그렇게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어릴적 불행했다면 내 삶을 먼저 행복하게 바꿔야 한다.

내가 불행했다고 아이도 불행하게 하는 것은 범죄고,

부모가 불행한데 아이보고 행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조금은 너그럽게 돌아볼 수 있다면,
아이들도 언젠가
자기 시간을 그렇게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