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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똥을 싸고, 나는 그 똥을 치운다

나도 똥을 쌀 때가 있다

by 애셋요한

■ 진짜로, 문자 그대로..


나는 세 아이의 똥을 수없이 치우며 살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응가 신호에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나의 발걸음은, 거의 자동화 수준이었다.

기저귀 하나 들고, 물티슈 한 다발 챙겨서 응급 상황에 뛰어드는 모습은 어쩌면 소방관에 가까웠다.

심지어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아이가 “나도 응가~” 하면?

이건 거의 멀티태스킹 챌린지다.


이럴 땐 진심으로 ‘일회용 기저귀를 발명한 사람과 물티슈를 만든 위인’에게 경배를 드리고 싶어진다.

(일회용 기저귀 없던 시절엔 진짜 어떻게 살았던 걸까? 상상도 안 된다.)

아이들이 똥을 싸면 그냥 치우는 게 아니다.

“오늘은 좀 딱딱하네?” “색이 이상한데?” “냄새가 심한데?”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의 똥을 보며 건강 상태를 예측하는, 일종의 육아형 미생물 분석가가 된다.

애정과 정성으로 엉덩이(들)를 닦으며 드는 생각.

‘아, 이건 사랑 아니면 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이건 단지 육아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우리는 종종 ‘남이 싼 똥’을 치우며 살아간다.

물론 진짜 똥은 아니지만,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

회사에서 후배가 중요한 보고서를 엉망으로 만들어냈을 때,

타부서에서 실수한 걸 내가 대신 사과할 때,

프로젝트 마감 3일 전인데 선배가 “이건 네가 마무리 좀 해줘” 하고 도망갈 때,

그때 드는 생각은 하나.

“이 양반이 똥 싸놓고 도망갔네.”


특히 기억나는 한 번은,

상급부서 프리젠테이션을 담당한 팀원이 자료를 다 날려버린 채 당일에 펑크를 냈을 때다.

그날 나는 회의실 앞에서 거의 땀과 눈물, 침까지 쏟아가며 발표를 때웠다.

그게 바로 사회판 설사였다.

치울 게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몰랐던,

그야말로 대형사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남의 똥을 치우다 보면 일의 흐름을 배우고, 위기 대처 능력도 생기고,

어쩌다 보니 “그래도 쟨 믿고 맡길 수 있어” 같은 말도 듣게 된다.

(물론 속으로는 울고 있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똥은 참 사람을 성장시킨다.

아이의 똥도, 동료의 똥도, 심지어 내 실수로 생긴 똥조차도

한 번 잘 치우고 나면, 그 다음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때도 지금도 나는 똥을 닦는다.

아침엔 아이 엉덩이, 낮엔 엉킨 업무, 밤엔 쌓인 감정.

닦고, 버리고,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남이 싼 똥이지만,

그걸 치우는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똥은, 누군가는 싸야 하고, 또 누군가는 치워야 하니까.

그리고 그걸 부끄럽지 않게, 묵묵히 하는 사람되어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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