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똥 묻은 개는 아닐까?
회사에서는 강조한다.
"회의 중에는 서로 말 끊지 말고 발표 후에 의견 내 주세요"
"언어폭력, 절대 안 됩니다!"
"경청은 기본입니다!"
그래, 다 맞는 말이다.
슬로건처럼 사무실 벽에 붙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옳고 바른 말들.
그런데 이게…
사람이랑 친해지면 이상하게 자꾸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건 아니잖아~ 내가 해봤는데 그건 안 돼.”
“아 또 너 또 그 얘기야?”
“아 좀, 내가 말하는데 왜 끼어들어?”
말은 안 끊는다고 해놓고, 내가 말하고 싶을 땐 먼저 치고 들어간다.
공식 회의에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이 회식 자리나 팀 채팅방에서는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
무례함은 친밀함 뒤에 숨어서 슬쩍 고개를 든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더 쉽게 선을 넘는다.
‘친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사실 제일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건 집에서도 똑같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는 매일같이 말한다.
“서로 이야기할 땐 끼어들지 말고!”
“때리지 말고, 말로 해!”
“형 말 끝나면 네가 말해. 그리고 아빠가 순서를 정해줄게.”
그런데 내가 훈육할 땐?
“하지 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 말은 아직 안 끝났는데,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단호하게 말을 잘라버린다.
심지어 감정이 섞이면 더하다.
“아빠가 몇 번을 말했니? 지금 장난할 때야?”
그 순간 아이 얼굴은 ‘이건 뭐 말해봤자 안 듣겠구나’라는 표정이 된다.
이럴 때 깨닫는다.
내가 바로 똥 묻은 개인데, 아이들한테 겨 묻었다고 뭐라 하고 있었구나.
아이들은 똑같이 따라 한다.
형제끼리 말 끊고, 지기 싫어서 고집 부리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싸운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하며 답답해했지만,
사실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말할 기회를 못 얻었던 건 나 때문일 수도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가의 실수를 보고 마음속으로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한 순간,
사실은 나도 비슷한 실수를 했던 과거가 있다는 걸 종종 잊는다.
상대가 말 끊을 때 짜증 나는데, 나는 회의에서 몇 번이나 치고 들어갔던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은
정작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이 사소한 실수를 지적할 때 쓰는 말이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이 이 둘을 왔다 갔다 한다.
어느 날은 똥 묻은 개고, 또 어느 날은 겨 묻은 개다.
중요한 건, 이걸 자각하느냐 아니냐다.
완벽할 순 없어도, 내가 먼저 ‘아, 나도 조심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
말하는 태도도, 듣는 자세도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가 말할 때 꾹 참고 끝까지 듣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 진짜? 그랬구나.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하고 싶어?”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 얼굴이 환해진다.
“아빠가 내 말 진짜 듣는구나”라는 얼굴.
그 표정을 보면 ‘아, 이게 진짜 경청이구나’ 싶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말에 코멘트를 달기 전에 한 박자 쉬어가는 연습.
친하다고 해서 무례해지지 않는 거리두기.
그게 ‘진짜 친함’을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조심한다.
말 끊지 않기.
지적하기 전에 휴대전화에 얼굴 한 번 비춰 보기.
그리고 생각하기.
“혹시 오늘은 내가 똥 묻은 개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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