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쓰고 2024년에야 발행하는 그 때의 내 기분, 지금과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용기내어 발행 버튼을 눌러봅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몇 번, 많게는 수십 번 혼자 이렇게 되뇐 적이 있을 것이다.
저거 내가 했던 생각인데.
과거 언제쯤 내가 한참 빠져 지냈던 상상의 이야기가 TV에서 나오는 것을 처음 겪었을 땐 뭔가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네가 그때 말한 그거 요즘 드라마에 나오더라.
한 여자가 결혼 후에 자존감이 바닥 치는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된 기적.
정신은 그대론데 몸뚱이만 과거로 돌아가 현 남편을 거절하려는 고군분투.
하지만 아이는 어떡하지? 하며 끝났던 나의 시답잖은 이야기와 정말 흡사했던 드라마.
절대 표절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것은 그럴 깜냥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미니시리즈로서의 구성이 아닌 그저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무슨 작은 이야기 조각에 불과했으니까.
어쨌든,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들여다보며 생각회로가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도 내가 생각해뒀던 이야기랑 소재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열애 끝에 결혼을 한다. 신혼여행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죽게 되는데, 세상에 남은 아내가 나쁜 사람과 엮이지 않도록 돕고, 결국 좋은 사람과 연결시켜주고 나서야 하늘로 가는 이야기.
결국 작은 이야기뿐이었던, 누군가에게 주절주절 어떠냐고 떠들었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겪어 오면서 생각을 탄탄하게 엮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그 작가를 (나보다 어리든, 아니든) 존경하게 되었다.
도둑맞은 기분은 맞지만, 누구도 훔친 적이 없는 내 생각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그저 나의 끝없는 열등감.
이제 그 기분들과 이별하고자 한다.
내가 상상한 스토리들을 들은 적 있는 이들은 내게 말한다.
사람 생각 거기서 거기라고.
해 아래 새것은 없나 보다고.
시간 다툼이라고.
아깝지 않으냐고.
그러니 빨리 써보라고.
하지만 나는 자꾸만 미루고 미루었다. 딱히 내가 되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지금은 나의 상황이 글 쓸 여력이 안 되니 언젠가는 꼭 쓰겠다'는 다짐으로만 고이 묵혀둔 이야기가 어떤 이에 의해 완성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고 해서 내가 서운해하고 아까워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안 했으니까. 그럴 자격조차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도 사실 오래되진 않았다. 내가 진 것 같은 그 기분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본 그의 친구가 '내가 옛날부터 모나리자를 그리려고 생각했었는데'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모나리자를 그리려고 팔레트에 물감조차 짠 적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못된 심보이다. 내가 딱 그랬다. 괜히 아까워하고 아쉬워했다. 뭣도 없으면서...
인정하고 나니 선명하게 보인다,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게으름이.
완성작에는 그저 생각에 그친 나의 날것의 조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내가 아주 거의 흡사하게 글을 써서 완성해두었더라면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었을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길게 쓰는 것도 사실, 결국은 나의 변명이다.
결혼해서, 임신, 출산, 육아, 다시 임신, 출산, 연년생 육아로 왠지 정당한 이유인듯한 핑계 아이템들이 이제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내가 그만둘 때의 연차보다 더 쌓아 올린 후배들을 보고 내가 이렇게 경력단절로 사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 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미뤄둔 나의 창작욕구에 쌓인 먼지를 슬며시 털어보기로 했다.
얼마 전, 매번 생각으로만 그쳤던 문학공모전에 처음으로 도전을 했다.
이전에 글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완성해보고 싶다, 나이 마흔에, 이제야.
그때의 기분들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되도록 그때의 감성까지 끄집어내어 보려고 한다.
공모전에 자주 도전해 보고 싶다.
떳떳한 이름 석자 수상하기 전까진 미 수상작과 미출품 작품들을 쌓여갈 것이다.
그것들은 나만의 곳에 차곡차곡 모아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쓴 글을, 나는 사랑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모아놓던 포스팅이 아닌, 내가 외면했던 하지만 내가 가장 열망하던 글쓰기를 차곡차곡 모아보기로 했다.
-2021.10.10, 미용실에서
*조심스레 나의 한심한 이야기를 시작부터 내놓은 이유는
혹시 내가 나중에 창피해서 지워버릴지도 모르는 흑역사를 고이 간직하기 위해서다. 부디 이 시작의 글이 올챙이 적 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