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자백
영화 '자백'은 치밀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에 집중한다.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범인을 밝혀내는 합리적 추리로 긴장과 재미를 느낀다.
이 영화는 그러질 않았다. 추리와 사건 해결의 과정은 있었지만, 변호사와 의뢰인의 심리전이 묘미였다. 여느 살인 사건 영화들과 기본 구도와 접근법이 달랐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 ‘자백’은 범인을 찾는데 포커싱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의뢰인(소지섭 분)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더 주요했다. 그가 주장하는 진술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극적 긴장감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유명 탐정이 등장하지 않아도,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탐정의 기능이 내재되어 있었다. 의뢰인의 변호사(김윤진 분)가 탐정처럼 사건의 알리바이와 인과관계를 추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의뢰인을 변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에 대해 의뢰인의 답변을 요구했다. 의뢰인의 답변에 따라서 재판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현재 의뢰인의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한 점을 지적했다. 추가적인 정보와 함께 진술의 신빙성을 더해가는 과정은 탐정의 추리를 역설적으로 활용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게 된 설정이 하나 있었다. 검찰 측에서 새로운 증인을 확보했다는 정보였다. 변호인과 의뢰인은 증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증인이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했다. 재판의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했을 정도였다. 가치판단할 수 없는 정보가 특정 상황과 특정인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윤종석 감독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검사 측의 정보소유는 용의자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자백'에서 시나리오의 치밀함이 돋보인 대표적인 시퀀스를 뽑는다면, 밀실 사건에 대한 변호사의 추리과정을 들 수 있다. 여성 살해 사건에 집중할수록, 사건은 밀실 살인 사건의 함정으로 빠져들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규명하기 곤란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무관해 보이는 두 개 사건을 연결하자 사건은 달라졌다. 더 이상 밀실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드디어 보이지 않던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감독은 이 시퀀스를 변호사의 실력을 입증하고, 의뢰인이 변호인을 신뢰하는 계기로 삼았다. 관객에게는 추리소설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도 제공했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변호인과 의뢰인의 신뢰 형성을 위한 시퀀스로 사용할 만큼,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폭과 깊이가 대단했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치며 전개되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관객은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와 추리를 통해서 '의뢰인이 범인이다', '아니다'를 반복하게 되고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진실의 확인으로 끝나지 않았다. 숨겨진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다른 시각으로 전환되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닌 두 편을 보는 인상까지 받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을 붙잡으면 사건은 해결된다. 마치 모든 일이 종료된 듯 하지만,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건은 종료되지 않았다. 영화의 관점이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감독이 추리소설적 재미만 추구하지 않고, 사건을 입체적으로 다루어 피해자와 가족의 아픔까지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첩된 추리의 과정과 재미가 가능했던 것은 배우들의 역량이었다. 소지섭의 대중적 이미지와 영화 캐릭터의 이미지 갭(gap)이 커서, 극적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김윤진의 변신과 감정연기는 영화를 전혀 다른 장르처럼 만드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