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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Jul 20. 2023

구보씨 프리퀄 오마주

소설 읽기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

소설가 황영미가 쓴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은 8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며, 수록된 단편 소설 중 한 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구보씨라는 인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녀가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은 것이 박태원 소설의 모더니즘적 특성이었다.

따라서,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이란 작품에 대해 논의할 때, 박태원이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황영미의 소설은 박태원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할 수 있다. 박태원의 구보씨가 품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황영미의 구보씨가 대신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박태원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일본강점기였고, 지식인들은 국가의 운명과 자신의 역량에 대해 깊은 고뇌를 했다. 창작을 하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는 더욱 잔인한 시기였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일본을 찬양하는 활동을 강요받았고, 거부 시 재정적 궁핍에 빠져 살아야 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당시 지식인이었던 구보씨의 하루를 잘라내어 한 편의 소설로 구성한 작품이었다. 구보씨가 경성의 거리를 하루 동안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창작에 대한 열망과 부담이란 상반된 감정에서 겪은 혼란을 담았다.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의 배경도 동시대였다. 다만, 몇 개월 정도 앞선 시간대를 상정했고, 선행적 성격의 사건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런 점에서 프리퀄(prequel)의 성격을 갖는 작품이었다.

황영미의 작가적 상상력은 작가 박태원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했다. 그가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했고, 율리시스란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하루 동안 일어난 경험과 의식을 다루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었다.

그의 작품을 오마주한다는 측면에서 황영미는 소설의 구조와 이야기 전개를 의도적으로 유사한 패턴을 갖게 만들었다. 박태원의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율리시스의 주요 배경지를 따라 구보씨가 친구와 다니는 하루의 일정을 풀어냈던 것이다.

마치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는 구보씨가 더블린에서 율리시스의 주요 배경지를 방문하면서, 내면으로 겪는 심정과 생각을 중첩적으로 감싸는 것 같았다. 그 결과 저자는 한 편의 단편 소설로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과 박태원의 작품 간 연결고리를 완성시켰다. 그 과정을 통해 박태원의 작품은 확장된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결국, 황영미는 구보씨의 이야기를 재생산하면서, 구보씨를 우리 시대의 인물로 되살려 내었다.  

황영미는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녀가 쓴 영화 평론집 중에는, ‘봉준호를 읽다’가 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작가 박태원의 외손주이다. 박태원 작가가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열었듯이, 봉준호 감독은 국내 영화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평론가로서 황영미가 봉준호의 영화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분석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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