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비리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수 Aug 28. 2023

원더우먼, 007이 되다.

영화 읽기: 하트 오브 스톤

20세기의 원더우먼을 21세기의 슈퍼영웅으로 소환시키며 주목받았던 배우 갤 가돗이 이번에는 007처럼 특수요원으로 변신했다. 영화 ‘하트 오브 스톤’은 첩보 액션 스릴러이다. 남성 주인공의 전유물처럼 제작되었던 장르였다. 물론 몇몇 여배우들이 액션 장르에 도전하여 두각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일례로 스파이 영화 ‘솔트’에서 앤젤리나 졸리가 보여준 액션은 첩보 액션 스릴러의 마니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물론, 갤 가돗의 도전은 여성의 최초 첩보 액션 스릴러 도전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007 시리즈의 대항마와 같은 인물의 등장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도전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에 의한 여성의 007 영화로 이 영화를 정의하고 싶다.


이 영화를 007 시리즈의 대항마로 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정보조직이 같다는 점을 들 수 있다. 007의 제임스 본드가 영국의 해외 정보 전담 정보조직인 MI6(Milltary Intelligence 6)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스톤(갤 가돗 분)도 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요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현장이 아닌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점만 달랐다.  

다음 이유는 유사한 룰(rule)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007 시리즈에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몇 가지 룰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적용된 공통점을 살펴보자. 첫째는 암호명이다. 암호 사용 체계가 유사했다. 주인공 스톤은 나인 하트였다. MI6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009에 해당한다. 나인 하트는 스톤의 원 소속인 하트에서 사용하는 암호명이었다.

둘째는 액션씬이다. 액션 영화를 대표하는 007 액션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추격신, 격투신, 총격신이다. 이 영화도 세 가지 액션신을 모두 보여주었다. 특히 좁은 리스본의 골목을 트럭으로 질주하는 카 체이스는 갤 가돗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윙슈트를 착용한 스카이 다이빙도 압권이었다. 그녀의 도전은 한계가 없는 듯 보였다.

셋째는 막강한 빌런이다. 007의 활약이 돋보이려면, 빌런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트렌디한 빌런이어야 했다. 007의 빌런이 늘 새로운 유형이었듯, 이 영화의 빌런도 그러했다. 오늘날 권력은 IT로 집중되고 있다. 전망 좋고 주목받는 IT 업계의 천재적인 인물들이 부와 권력을 쥐고 있다. IT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존재를 빌런으로 내세운 것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처음에는 톰 하퍼 감독이 007의 성공공식을 따라 스톤이란 인물을 창조해 낸 것처럼 보였다. 사용한 영화적 요소들에서 유사점이 많을 뿐 아니라, 주요 공식들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라는 남성 대신에 스톤이란 여성이 그 역할을 대신한 영화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감독은 기존 007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단지 남성을 여성으로 대체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007과 명확한 차이점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준 차이점은 새로움, 즉 관점의 변화였다. 우선 기득권에 대한 파괴적 접근을 들 수 있다. 국가 간의 관계, 국가와 개인의 관계, 남녀 간의 관계에는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권력적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질서체계를 지배하는 기득권 집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의 설정은 그 모든 것에 대한 거부이자 파괴였다.

하트는 첩보조직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들, 영국, 미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에 속한 조직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국가 간의 대항을 통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의존하지 않았다. 또한 하트라는 조직이 국가의 굴레를 벗어났듯, 특수요원의 위상도 달랐다. 국가 권력에 종속된 정보조직에서 일하는 특수 요원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요원이 되기 위해 소모품으로 살 것을 서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특수 요원은 달랐다. 대의명분을 위한 자발적 선택과 협약의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요원의 탄생이란 관점에서 이 영화가 추구한 작품 세계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여성 특수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감독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고도의 액션은 액션 덕후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와 소설의 입체적 경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