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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Sep 16. 2023

꿈꾸던 21세기 만화방

공간 읽기: 그래픽 서점

좋아하는 일을 좀 더 기분 좋고 멋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만 하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누구는 그 일을 해냈다.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궁금했다. 그는 만화를 좋아해서 그래픽 서점을 만들었다.


사진: 그래픽 서점 로고


그래픽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공간인만큼, 만화 보기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방문객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은 의식이 있었다. 물티슈로 손을 세정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만화책을 만지려면, 기본적으로 손이 청결한 상태여야 했다. 이용자 본인과 타인 모두를 위한 기본 매너였다. 그래픽을 만든 이의 마음이 엿보였다.

이곳의 매력은 여러 가지였는데, 공간감, 밝음, 고급스러움, 다양함, 무제한성, 편안함 등을 들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건물의 중심부가 부채꼴 중정처럼 3층까지 열려있었다. 개방된 공간이 주는 시원함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밝아서 공간이 더욱 넓게 느껴졌다. 중앙 홀에 놓인 책장과 둥근 벽을 따라 설치된 책장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서점이라기보다는 커다랗고 조용한 도서관에 들어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진: 그래픽 내부 인테리어


책장이 없는 벽과 계단에는 회화 소품이 공간의 멋을 더해주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다양한 구체 작품은 그래픽의 실내 공간을 입체적인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  

진열된 만화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1층에는 미국 만화를 위한 전시 공간이 있었다. DC 코믹스와 마블(Marvel) 코믹스에서 발간한 책, 잡지 등이었다. 각종 히어로의 이미지가 표지를 장식한 대형 서적과 칼라로 인쇄한 잡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은 일본 만화가 중심이었다. 195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인기를 끈 주요 작품은 거의 다 있었다. 일본 만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시대별 대표작이 즐비했다.


사진: 그래픽 책 진열장


전시하는 책은 모두 볼 수 있었고, 책의 상태도 매우 좋았다. 새책에 가까운 상태를 보여, 어떤 책이나 서점에 진열된 새책을 꺼내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픽에서 도서 관리를 잘하기도 했지만, 방문객도 애호가인만큼 책을 깨끗하게 본다는 반증이었다. 19세 이상 성인만 입장할 수 있는 조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3층에는 술과 음료를 제공하는 미니 바가 있었다. 술은 추가 비용이 들고 주문하면 소량의 견과류나 젤리를 제공했다. 물과 음료수는 입장료에 포함되며 무제한이었다. 만화책을 보는 작은 카페처럼 꾸며놓았다.


사진: 그래픽 3층 카페 & 바


그래픽의 여러 매력 중에서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단연코 편안함이었다. 1층과 2층은 발 펴고 벽에 기대 책을 볼 수 있는 좌석이 많았다. 거의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었다. 발받침은 휴대품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 기능이 있었다. 작은 테이블은 음료를 얹어놓을 수 있게 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만화를 보면서 음료까지 마실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낮에는 이용객이 많은 편이라 대기시간이 매우 길지만, 저녁 시간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7시 이후에 입장료는 조금 할인되었다. 저녁은 이용시간이 짧다 보니, 만화책을 마음껏 오래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가격 정책이었다. 그래도 저녁 7시에서 11시까지 네 시간 이용하는 저녁 타임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했다.


사진: 칵테일과 견과류


그리고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 술 한잔을 하며 만화를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어른이 되어도 즐기는 키덜트 문화였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만화도 성인스럽게 보며 즐기자는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같은 소설을 십 대, 이십 대에 이어 삼십 대에 읽으면, 매번 다른 생각과 경험을 한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 먹으며 보던 만화를, 나이 들어 술 마시며 볼 때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을 보면서 떠올리는 생각이 다르고, 작가의 의도를 좀 더 잘 이해하거나, 나이에 맞게 해석했던 것이다.


그래픽에는 만화를 보는 20대 연인이 많았다. 편하게 앉아 각자 좋아하는 작품을 보거나, 같은 작품을 순차적으로 보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1세기형 만화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어떤 추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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