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시 중 가장 위대한 시(Greatest of all time)는 아니더라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Most frequently quoted of all time)가 있습니다. 바로 알프레드 테니슨 경의 「율리시즈」입니다. 오늘은 영미권 사회 교육 문화 체육계 등 각계의 리더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사랑하여 자주 찾는「율리시즈」를 읽어봅니다. 이 시는 테니슨의 캠브리지 절친이자 자신의 여동생 약혼녀인 아서 헨리 할럼이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며 1833년에 쓰고 1842년에 발표한 총 70 라인의 짧은 시입니다.
테니슨의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라틴어)는 단테의「신곡」칸토 26에 등장하는 율리시즈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쓴 운률 없는 무운시입니다. 호머의 원작은 율리시즈가 고향(이타카) 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내와 왕위를 탐하던 반역자들을 모두 처단한 후 왕국의 질서를 회복한 후 끝납니다. 그러나 단테는 평화 이후 늙어버린 율리시즈가 왕국에 정착을 못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항해를 떠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장님 타이리시어스의 예언—"율리시즈는 고향으로 복귀 후 마지막 항해를 떠날 것이다"—을 근거로 단테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작품입니다. 단테에 의하면 율리시즈는 항해 중 부하들을 설득해서 인간에게 금지된 지중해 저편으로 배를 몰아 결국 폭풍을 만나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가 간 지옥은 “사기꾼”들이 가는 8 등급 지옥. 최악의 지옥이 9 등급 임을 감안하면 단테가 율리시즈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테에게 율리시즈는 트로이 목마로 “사기”를 쳐서 로마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트로이를 멸망시킨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항해에서 인간 지식의 한계에 도전한 죄 즉 하나님에게만 허락된 지식의 영역을 탐한 죄를 저지른 오만무도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까지 모두를 죽음으로 내 몬 최악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8 등급지옥에서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 율리시즈를 만난 버질과 단테
테니슨의 「율리시즈」도 단테가 그린 율리시즈처럼 이타카 왕이 노년에 떠나는 마지막 항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테니슨은 마지막 항해를 떠나기 직전 상황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그가 마지막 항해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살아 돌아왔는지는 시인의 관심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시의 형식은 드라마틱 모노로그 (dramatic monologue)로 극적인 독백시입니다. 즉 주인공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이며 첫 번째 율리시즈의 대화상대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럼 시작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불모의 바위산 고요한 화롯불가에서
늙은 아내와 어울려 빈둥거리는 왕으로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먹고
자기만 하는 탐욕스러운 야만인들에게
공평치 못한 법을 집행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It little profits that an idle king,
By this still hearth, among these barren crags,
Match'd with an aged wife, I mete and dole
Unequal laws unto a savage race,
That hoard, and sleep, and feed, and know not me.
“늙은 아내와 어울려” (“Match'd with an aged wife”) 사는 율리시즈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가 30 대에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10년, 집으로 돌아오는데 10년, 엉망이 된 왕국을 안정화 시키는데 몇 년, 그리고 그 후 평화로운 상태에서 3년을 더 보냈으니 50대 중 후반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19세기 영국인 평균 수명이 남 40, 여 42 였으니 고대 그리스인의 눈에는 이례적으로 늙은 나이 대입니다. 왕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고 왕위를 이을 아들도 있으니 걱정없이 여왕 페넬로페와 함께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율리시즈는 그런 처지의 자신을 오히려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따뜻한 화로가에서 늙은 아내와 짝짜꿍하며 명예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법을 집행하며 사는 일을 손해(“It little profits. . .”)라고 생각합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며 좀이 쑤셨던 왕은 항상 모험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모험을 멈출 수 없으니; 나는 나의 인생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즐기리니: 난 항상 최대한 즐겼노라
고통도 최대한 당했지만
나를 사랑한 부하들과 함께 그리고 홀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해변가에서 지옥의 비가 어둑어둑한 바다를
성나게 만들었을 때 : 내 이름은 전설이 되었으니
I cannot rest from travel: I will drink
Life to the lees: All times I have enjoy'd
Greatly, have suffer'd greatly, both with those
That loved me, and alone, on shore, and when
Thro' scudding drifts the rainy Hyades
Vext the dim sea: I am become a name;
“나는 나의 인생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즐기리니.” 이 시에서 나온 명문이며 소셜 미디어 상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입니다.“I will drink life to the lees.” 에서 “lees”는 포도주 병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 혹은 찌꺼기를 의미합니다. 인생을 포도주에 비유하여 인생의 마지막 남은 그 한 방울까지 마시겠다는 뜻으로 인생을 최대한 즐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이렇게 독백을 이어갑니다.
항상 호기심에 목말라 세상을 떠돌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노라; 여러 도시 사람들
그리고 풍습, 기후, 여러 부족회의, 다양한 지배체제
그들 모두에게 내 자신 융숭한 대접을 받았도다
저 멀리 바람소리 윙윙대는 트로이 평원에서
나의 동료들과 함께 전투를 즐겼으니
For always roaming with a hungry heart
Much have I seen and known; cities of men
And manners, climates, councils, governments,
Myself not least, but honour'd of them all;
And drunk delight of battle with my peers,
Far on the ringing plains of windy Troy.
율리시즈에게 인생의 낙은 끝없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모험 그리고 탐험을 통한 배움의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그의 마음은 벌써 자신의 왕국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합니다.
내가 접한 그 모든 것은 이제 나의 일부이니.
그러나 모든 경험은 하나의 무지개 문
그 문 너머 못가본 세계가 반짝거리니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이니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네.
I am a part of all that I have met;
Yet all experience is an arch wherethro'
Gleams that untravell'd world whose margin fades
For ever and forever when I move.
“내가 접한 모든 것은 나의 일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또 하나의 금쪽같은 말입니다. 늘 최선을 다하며 가보지 못한 곳을 동경하여 끊임없이 움직여 기어이 그 경계선을 넘고야 마는 율리시즈. 그에게 자산은 그가 창고에 쌓아둔 재물이 아니고 그가 방문했던 장소,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의 경험으로 축적한 지식입니다. 그러니 자산이 많을수록 내 자신도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움직여서 진하기만 했던 그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그에게 왕으로서 편안 받치며 한군데에 정주한다는 건 남는 일이 아닙니다. 늙었다고 이대로 끝을 낸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멈추는 건, 끝을 낸다는 건
닦지 않아 녹슨다는 건, 휘두르는데 빛이 나지 않는다면
마치 숨만 쉬는 게 인생인양! 생에 생을 더해도
너무 부족하건만; 내게 한 번 주어진 삶
남은 시간도 별로 없으니: 죽기 전 매시간 아껴서
더 많이, 새로운 것들을 가져오리라
How dull it is to pause, to make an end,
To rust unburnish'd, not to shine in use!
As tho' to breathe were life! Life piled on life
Were all too little, and of one to me
Little remains: but every hour is saved
From that eternal silence, something more,
A bringer of new things;
내 자신 삼년간이나 쟁이고 모으기만 했으니
수치스럽다, 나의 노년의 영혼은
마치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별처럼
인간 사고 한계 너머의
지식을 갈망하고 추구한다
and vile it were
For some three suns to store and hoard myself,
And this gray spirit yearning in desire
To follow knowledge like a sinking star,
Beyond the utmost bound of human thought.
“마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별처럼/ 인간사고 한계 너머의/ 지식을 갈망하고 추구한다” 율리시즈가 왕궁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이 시의 주인공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입니다. 바다 끝은 절벽으로 되어 있어 그 끝까지 가면 바닷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때입니다. 떨어지는 별처럼(“like a sinking star”)은 바로 저녁에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별을 가리키며 주인공은 바로 그 너머까지 가겠다는 말입니다. 즉 자연의 한계, 인간 사고의 한계에 도전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마침내 그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과 신하들에게 이렇게 공표합니다.
자 여기에 나의 아들 나의 피붙이 텔레마쿠스가 있다
그에게 나의 왕권을 넘겨 이 섬을 맡기니
내가 사랑하는 아이, 신중하게 이 임무를 수행하리라
사려깊게 거친 백성들을 온순하게 만들고
그들을 유하게 다스려 유용하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조금도 비난할 수 없는 내 아들은 임무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것이며
너그러워 자비를 베푸는 일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내 집안의 신들에게 합당한 제사를 올릴 것이다.
내가 떠나면 그는 그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This is my son, mine own Telemachus,
To whom I leave the sceptre and the isle,—
Well-loved of me, discerning to fulfil
This labour, by slow prudence to make mild
A rugged people, and thro' soft degrees
Subdue them to the useful and the good.
Most blameless is he, centred in the sphere
Of common duties, decent not to fail
In offices of tenderness, and pay
Meet adoration to my household gods,
When I am gone. He works his work, I mine.
율리시즈는 아들에게 왕국을 넘겨준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렇게 마무리(“그는 그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합니다. 시인이 “그의 일” 즉 아들의 일을 묘사할 때 쓴 단어를 살펴보면--“유순하게, 부드럽게, 유용하게, 착하게, 일반적인 의무, 부드럽게, 집안의 신들을 모시는데”--모두 여성성과 관계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율리시즈가 말하는 “나의 일”은 남성성—도전, 폭풍, 명예, 고통, 항해, 영웅—을 상징합니다. 그 “나의 일”을 위해 율리시즈는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바다의 전사들에게 동참을 요구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저기에 항구가 있다; 배가 돛을 펼치는 구나
저기 어둡고 넓은 바다가 검은 존재를 드러낸다. 나의 뱃군들이여
나와 함께 고생하고 일하며 고민한 자들이여
폭풍이 몰아치는 날과 햇빛이 가득한 날을
자발적으로 싸우며, 유쾌하게 맞이했지,
-- 그대들도 나도 늙었다
그러나 노년은 명에도 있고 고통도 있다
There lies the port; the vessel puffs her sail:
There gloom the dark, broad seas. My mariners,
Souls that have toil'd, and wrought, and thought with me—
That ever with a frolic welcome took
The thunder and the sunshine, and opposed
Free hearts, free foreheads—you and I are old;
Old age hath yet his honour and his toil;
죽음은 모든 걸 지우니: 그러나 끝 이전에 무언가 있으니
신과 함께 싸웠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고귀한 일이 있다
밤하늘의 별들에서 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긴 하루가 저물고 달이 천천히 떠오른다
깊은 바다에서 여러 목소리와 함께 깊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Death closes all: but something ere the end,
Some work of noble note, may yet be done,
Not unbecoming men that strove with Gods.
The lights begin to twinkle from the rocks:
The long day wanes: the slow moon climbs: the deep
Moans round with many voices.
과거 트로이 전쟁터에서 “신과 함께 싸웠던” (트로이 전쟁은 고대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임과 동시에 그리스 편에 선 신과 트로이 편에 선 신들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나이든 전우들을 향한 율리시즈의 외침입니다. 마지막 부분의 “the deep”은 바다의 은유적 표현이며 그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율리시즈와 선원들을 유혹합니다.
오라 나의 친구들이여
새로운 세계를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밀어내자 순서대로 앉아 소리를 지르는 파도를 때리자
내 목적은 죽기 전까지 저 지는 태양 너머로
그리고 별이 떨어지는 바다 끝까지 항해하는 것이니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도 모르고
행복의 섬에 닿아 우리가 알고있는
아킬레우스를 볼지도 모른다
Come, my friends,
'T is not too late to seek a newer world.
Push off, and sitting well in order smite
The sounding furrows; for my purpose holds
To sail beyond the sunset, and the baths
Of all the western stars, until I die.
It may be that the gulfs will wash us down:
It may be we shall touch the Happy Isles,
And see the great Achilles, whom we knew.
쓴 것도 많지만 남은 것도 아직 많다
우리는 과거 대륙과 하늘을 주름잡던 과거처럼
더 이상 팔팔하지 않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이고 우리이다
우린 다 같이 영웅적인 마음을 지닌 하나
세월에 운명에 의해 약해졌지만 강한 의지로
노력하고 추구하고 찾고 그리고 포기하지 말자
Tho' much is taken, much abides; and tho'
We are not now that strength which in old days
Moved earth and heaven, that which we are, we are;
One equal temper of heroic hearts,
Made weak by time and fate, but strong in will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율리시즈의 이 마지막 외침은 이 시 중 가장 많이 인용되고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영화대사(『죽은 시인의 사회』, 『스카이 폴 007』 등)로,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식 축사의 단골멘트로, 또한 정치가들의 연설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멘트로 많이 인용되었으며 특히 마지막 라인
“노력하고 추구하고 찾고 그리고 포기하지 말자”
는 셀 수 없이 수많은 학교나 단체, 협회, 기관 등의 창, 벽, 기념탑 등 중요한 장소에 비명, 경구, 교훈, 사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 읽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나는 경구입니다.
2012 런던 올림픽 선수촌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그러나 율리시즈는 뛰어난 스피치 능력으로 국민들과 부하들을 설득하여 마지막 항해에 동참하게 하지만 그 결과는 (단테의 생각처럼) 모두의 죽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보수당 국회의원 마크 프랑수와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해야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며 테니슨의 율리시즈 전체 시를 한 줄 한 줄 전부 인용합니다.
신과 함께 싸웠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고귀한 일이 있다
영국 보수당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영국을 유럽연합에서 독립시키는 “고귀한 일”을 해 냅니다. 브랙시트(Brexit)가 이루어진지 8년. 모든 경제적인 지표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가 영국 국민들에게 재앙이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결국 단테가 그린 율리시즈처럼 리더를 믿고 지지해준 영국인들을 살아있는 지옥으로 내몬 꼴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