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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Nov 19. 2024

영화 『그린마일』: 죄, 회개, 구원의 크리스천 드라마

 범죄/판타지 드라마 장르에 속하는 톰 행크스 주연의 『그린마일』 (The Green Mile) (1999)은 사실 크리스천 영화입니다. 1996 년에 발표된 스티븐 킹의 동명 6 부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1930 년대 미국의 남부의 한 교도소에 갇힌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죄, 회개, 그리고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지난번  『슈퍼맨』(1978)에 이어 또 다른 모습의 크리스천 영화 『그린마일』을 만나봅니다.              

    

   이 영화의 무대는 1935년 미국 남부 소재의 콜드 마운틴 교도소입니다.  이 영화에서 교도소 즉 감옥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콜드 마운틴”처럼  춥고 거친 환경이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법을 어겨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범죄자들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기독교적 시각에서 우린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사탄의 유혹에 빠져 거역한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삯으로 우린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룹니다. 해서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사형수로서 이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사형집행일은 모두 다르지만 말입니다. 이 원작의 제목을 “그린마일”로 정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린 마일은 사형수가 사형집행 장소까지 갈 때 밝고 가야 하는 초록색 길을 가리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폴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사는 시점에서 우리의 그린 마일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도 죄를 지은 사형수란 말입니다.      

   

 


  이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 9 살 먹은 쌍둥이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언도를 받은 흑인 존 커피(마이클 던컨)가 이송되어 옵니다.  이 감옥의  교도관으로서 근무 중인 폴(톰행크스)은 착하고 순하게 보이는 그러나 엄청나게 거대한 몸집의 소유자인  존 커피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됩니다. 흑인 존 커피는 예수님의 캐릭터입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이 유사합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30년대 미국남부에서  흑인으로서의 존 커피의 처지나  로마인이 지배하던 시대에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님의 처지나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미래의 구세주 즉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살았던 흑인(존 커피)이 받은 수모라 해도 무방했을 겁니다. 그렇게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았던 존 커피는 교도소에 이송되어 오자마자 또 다시 모욕을 당합니다. 교도관들은 그를 “걸어다니는 시체가 여기오네! ” “걸어 다니는 시체가” 라고 놀려댑니다. 또한 그를 “정신 지체자 아니야?” “천치를 사형시키라고 보낸 것 같군!” “천치건 아니건 그는 그의 죄로 죽어 마땅해.” 라며 존 커피를 조롱합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님이 로마병사에게 당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폴은 교도관들의 조롱을 말리며 존 커피를 그의 독방에 수감하기 전에 질문이 있나고 물어보자 존 커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취침 후에 불을 켜놓습니까? 이상한 장소에서는 때때로 어둠이 무섭거든요.          



어둠이 두렵다는 그의 고백에 그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무지한 인간들이 그의 순수함을 바보 천치로 오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어둠을 멀리하려는 존 커피의 대사가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어둠은 성경에서 항상 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John Coffey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리스도 형상으로서의 존 커피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집니다. 존 커피가 교도소 안에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교도관 폴은 소변장애로 고생하는 데 어떤 의사도 그의 병을 치유하는데 실패를 했죠. 그러나 존 커피는 그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의 힘으로 그의 병을 치유해 줍니다. 처음에는 존이 폴에게 손을 대자 다른 사람들이 폴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말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기적의 손 생명의 손이었습니다. 폴은  훗날 그의 치유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게는 ...  존은 그 자신의 일부를 내게 주었어... 선물이지... 존이 그렇게 했을 

      때 그가 내 팔을 잡았을 때... 그를 통해서 작용을 한 힘의 일부가 내게로 쏟아졌지. 

      그는 우리를 감화시켰지. 생명으로.            



신비한 병 고침의 체험을 한 폴은 교도소 소장 부인이 뇌종양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존 커피에게 부탁을 합니다. 존 커피는 부인의 병도 손을 얹고 기도의 힘으로 완치를 시켜줍니다. 영락없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들 낫게 함이러라. 누가복음 16 장 9 절). 치료 후에 고마워하는 부인에게 존은 이렇게 말합니다.              

 


        꿈에 부인을 보았어요.  부인은 어둠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지요.  저도 그랬고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발견했지요. 어둠속에서 서로 발견을 한 겁니다.       



어둠속에서 헤매는 인간의 모습. 이보다 더 명료하게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 할 수 있을까요? 부인은 병 치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흑인 사형수의 이름인 존 커피 (John Coffey)의 첫 자를 따서 목걸이에 JC 라는 글자를 새겨 존에게 선물합니다. JC 는 바로 Jesus Christ의 약자이기도 합니다.      


   이제 폴은 존 커피가 억울한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음을 확신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말도 안 되는 죄--신성모독죄와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듯이 말이죠. 드디어 사행집행일이 왔고 폴은 존 커피의 억울함을 알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존 커피는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드립니다. 사형집행 직전에 마지막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의 존재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발 주인님, 그거 제 머리위에 

        씌우지 말아요.  어둠속에 저를 넣지 말아 주세요.  어둠이 두려워요.  

       하늘나라, 나는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늘나라, 하늘나라,. . . 


 

어둠이 싫었던 존 커피. 그래서 어둠속에서 헤매던 인간을 구원하려 했던 존은 마침내 세상을 떠납니다. 존이 죽는 날 하늘에서 영광의 빛이 내려와 존을 감싸고 있음을 모두가 목격하게 됩니다. 폴은 압니다. 우리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다음은 폴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나의 저주는 ...나의 죄는 존 커피가 전기의자에 앉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신의 기적을 죽이기 위해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신을...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신을.          



그러나 죄인에게도 구원의 희망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영화에서 이 구원은 징글씨(Mr Jingle)라고 이름지어진 작은 쥐를 통해 상징적으로 구현됩니다.  영화에서는 존 커피와 함께 처형당할 두 명의 사형수가 등장합니다. 그 중 한 명인 에드워드 델라크로이는 감옥에서 우연히 작은 쥐를 만나 키우게 됩니다. 이 사형수는 쥐와 정서적 영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잔인하고 포악했던 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즉 죄의 회개를 표현한 거죠. 그는 말하자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처형을 당하기 직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착한 도둑 캐릭터입니다. 사형수의 이름(델라크로이)에 불어로 십자가를 뜻하는 단어인 크로이(영어는 크로스)가 붙어 있는 이유입니다. 그 쥐는 교도소의 악당이자 냉혈 교도관인 퍼시에 의해 생명을 잃게 되고 그 주인인 에드워드도 전기의자에 앉아 생을 마감합니다. 회개한 델라 크로이도 죽기직전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한 착한 도둑처럼 천국에 갔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존 커피 즉 예수님의 사형집행이후 죽었던 쥐가 기적적으로 소생합니다. 작은 쥐의 소생은 이 세상 사람들 즉 죄인들을 위한 회개 그리고 구원의 희망이 아직 살아 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감옥에 갇힌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기적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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