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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Nov 29. 2023

『위대한 유산』: 진정한 신사의 의미 (3)

“비디,” 이건 비밀인데  “난 신사가 되고 싶어.” (154)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의 의미를 이해하는 키는 “신사”입니다. 신사 즉 젠틀맨의 정확한 이해없이 디킨스의 명작을 읽는다는 건 양반의 의미를 모르고『홍길동전』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젠틀맨은 지금은 1)남성의 존칭 2) 매너가 좋고 공손하며 (특히 여성들에게) 친절한 남자나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의미하지만 원래 처음 사용된 1200 년경에는 귀족 출신 혹은 우월한 남자를 의미 했습니다. 젠틀맨의 gentle은 유전자를 뜻하는 gene을 의미하며 이들은 고귀한(noble)혈통을 물려받은 귀족 즉 백작, 자작, 기사 등 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 의미의 젠틀맨은 사실상 귀족들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귀족들은 왕이나 영주로부터 하사 받은 땅을 가진 전쟁만 없으면 “에브리데이 이즈 할러데이” 콘셉의 유한계급(leisure class)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류층, 부유층으로 기품있는 복장, 정중한 매너, 고품격 언어, 그리고 관대함의 아이콘 같은 존재들입니다. 또한 귀족들은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하는 지도층으로서 항상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전쟁 시에는 용감하게 싸우며 평화 시에는 왕국의 질서를 수호하며 사회의 약자 특히 여성을 우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우리는 기사도 정신이라고 배웠죠. 오늘날 젠틀맨하면 생각나는 점잖은 매너와 예절 그리고 여성에 대한 친절은 중세 기사도 정신의 유산입니다.   

   


   그러나 젠틀맨은 과거 신분 뉘앙스의 gentle이 강조된 gentleman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존경을 받을 만한 자질을 가진 man의 의미가 더 강조되는 gentleman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18세기부터 서서히 일어난 일이지만 계급으로서의 의미가 눈에 띄게 약해진 때는 19세기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1760-1840)과 18세기 말부터 일어난 3차에 걸친 프랑스 혁명(1789, 1830, 1848)으로 유럽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혁이 야기됩니다. 프랑스는 1848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공화국이 시작되면서 신분제도가 와해됩니다. 영국은 80 년간에 걸쳐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농업경제에서 상업, 공업, 무역 등 자본 경제로 변화합니다. 19세기 중반 무렵 영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신분개념이 더욱 약화되고 토지에 의존하여 살던 전통 귀족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합니다. 반면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산층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들은 사업으로 벌어들인 부를 무기로 가난해진 귀족들과의 혼사 혹은 과거 귀족들만 누렸던 좋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어 했습니다. 젠틀맨이 되어 특권을 누리면서 사회의 존경과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겁니다.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를  1864년 제임스 프리스웰은 그의 저서 『신사의 생활』(The Gentle Life) 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경쟁과 배금 그리고 거짓 평등의 이 시대 . . . 우리는 모두 신사, 숙녀가 되고자

     애쓴다. 이들의 도전은 칭찬받을만하고 목표는 고귀하다. 더군다나 이 경쟁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승리자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고 마침내 왕관을 머리에 쓸 수도 있다. 젠틀맨의 의미가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드디어 역사상 처음으로 누구나 젠틀맨이 될 수 있는 젠틀맨 민주화의 시대가 온 겁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 편찬된 사전에서도 감지됩니다. 1800년 대 초반 해도 젠틀맨의 정의는 신분 개념의 귀족 남자였지만 50 여년이 지나자 그 의미는 매너 좋고 친절한 남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돈만 있으면 개나 소나 다 젠틀맨이 되고자 하는 시대가 왔지만 정작 누가 진정한 젠틀맨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프리스웰 말대로 그 의미가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신사의 모습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68년 영국에서 발행된 한 잡지의 카툰을 한 번 보겠습니다.             

Severe Old Party (to lanky Swell): “Going to a Bal masqué, eh? Well, Chalk your head     and go as a billiard cue!”

Irritated Swell: “You might go disguised as a gentlemen; — no one would know you!”


한 클럽에 모인 세 신사가 대화를 하는데 앉아 있는 친구가 서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농담을 던집니다. “가면무도회에 가신다고? 머리에 쵸크를 칠하시고 당구 큐대처럼 하고 가시지.” 서 있는 친구의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격을 비꼬는 말투입니다. 그러자 비쩍 마른 친구는 이렇게 응수 합니다. “당신은 신사로 변장하고 가시는 게 어때.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야.”  가면무도회를 주제로 클럽에서 대화를 즐기는 이 셋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신사들입니다. 신사보고 신사처럼 위장하고 가라는 응답은 자신을 당구 큐대로 놀린 상대에 대한 가시 돋친 반격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이 카툰의 포인트는 이들이 생각하는 신사의 이미지입니다. 일단 외형적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련된 모자, 정장, 구두로 꾸미면 신사로 위장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은 변했지만  그들의 마음속 신사의 모습은 여전히 과거 농업 중심의 사회시절 돈 많은 귀족들의 모습에 머물러있었던 겁니다. 귀족이 마련한 사교의 무대에서 공작새처럼 차려입고 우아한 매너를 자랑하던 젠틀맨의 이미지 말입니다.    

   

   그러나 빅토리아 지식인들은 이런 겉모습 중심의 젠틀맨 의미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공식적인 신분제는 사라졌고 경제는 농업에서 상업 공업 금융 중심으로 변해가고 직업도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자신의 일과 사업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19세기. 과거의 공작새같은 이미지의 젠틀맨은 이제 더 이상 어필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이 때 윌리엄 새커리, 엘리자베스 가스켈, 존 러스킨, 키플링 등을 비롯한 19세기 지식인들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젠틀맨의 개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여류 소설가 엘리자베스 가스켈이 쓴 소설 『남과 북』(1855)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난 젠틀맨은 오로지 사람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용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남자라고 부를 때는 그를 단순히 그의 동료와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와 그 자신과의 관계 그의 인생, 시간, 영원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겁니다. . . . 난 제가 보기에 종종 부적절하게 쓰이며 또한 지나치게 과장되고

     잘못 쓰이는 신사답다는 단어(“ gentlemanly”)가 다소 싫증이 났습니다. 반면에         단순한 남자라는 명사(man)와 남자다운이라는 형용사(manly)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160)



이제 젠틀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겉모습, 정중한 매너와 예절 (appearance)보다도 인간의 내면세계(reality)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젠틀맨의 탈 계급시대를 맞이한 빅토리아 시대의 질문에 대한 찰스 디킨스의 응답입니다. 찰스 디킨스는 빅토리아시대에 맞는 젠틀맨의 모습을 찾기 위해 핍의 꿈을 신사로 설정합니다. 그가 신사가 되려는 이유 (전에도 언급했지만) 순전히 에스텔라 때문입니다. 거지 알라딘이 어느날 우연히 시장에서 공주 쟈스민을 본 후 왕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격입니다. 그런데 핍에게 기적 같은 일이 생깁니다. 매형의 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인턴 4 년차에 접어든 핍에게 신사가 될 기회가 온 겁니다. 핍에게 신데렐라의 요정 할머니, 알라딘의 지니같은 후원자가 나타난 겁니다. 어느날 핍에게 재거스란 이름의 변호사가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1) 당신은 엄청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받게 된다. 2) 누가 후원하는지는 밝힐 수 없고 후원자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3) 핍이란 이름을 절대로 바꾸지 말라 4) 제공되는 돈으로 공부하고 젠틀맨이 되라. 신사가 되고 싶은 핍에게 신사가 되는 조건으로 돈을 준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입니다.  변호사 재거스씨는 핍을 위해 런던에 숙소와 젠틀맨 교육학원, 강사 등을 주선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넌 달라진 위치에 걸 맞는 훌륭한 교육을 받아야 할 거야. 그래야 즉시 그 이점을          얻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166)



나이 든 세대인 재거스에게 젠틀맨은 아직도 계급이요 특권층입니다. 핍은 자신의 후원자를 미스 해비샴으로 오해해서 미스 해비샴 저택에가서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조, 비디에게 안녕을 고하고 젠틀맨들의 성지 런던으로 향합니다.『위대한 유산』1 부의 마지막이며 그 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차를 갈아타고 또 갈아탔습니다. 이젠 다시 돌아가기는 너무 늦었고

     또 너무 멀리 왔습니다. 나는 계속 갔습니다. 그리고 안개가 엄숙하게 피어올랐고

     세계는 내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186)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핍의 젠틀맨 프로젝트. 이는 우리의 다음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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