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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02. 2024

예이츠의「방울 모자」: 실연자의 꿈

   연민, 슬픔, 방황, 죽음, 상실, 울음, 침묵, 열정, 고통, 변덕, 두려움, 탄식.  1891년 구혼 실패를 맛본 후 예이츠가 출판한 시집(『장미』(1893), 『갈대밭의 바람』(1899))의 목차에 있는 단어들입니다. 실연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감정들을 동원하여 모드 곤을 향해 외치고 있는 듯합니다. 실연의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구해 달라고 말이죠.  그 아픔을 토로한 시 사이사이에 연인과 하나가 되는 소망을 노래한 시들이 하나씩 끼어 있습니다. 시인에게 모드 곤의 “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었고 그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 중 오늘은 실연자 예이츠가 연인과 하나가 되는 간절한 꿈을 다룬「방울 모자」를 읽어 봅니다. 시인이 첫사랑에게 보내는 거의 공개 구혼장 같은 시가 런던에서 출판되어 나온 1894년.  같은 시기 그 시대 감히 상상조차 힘든 일이 바다 건너 파리에서 일어납니다. 시인의 뮤즈이자 꿈의 연인 모드 곤이 그녀의 애인인 16살 연상의 기혼남 루시엔 밀레보예와의 사이에 두 번째 아이인 이졸데 곤을 출산한 겁니다.  이 사실을 알리 없는 시인. 그는 막 인쇄되어 나온「방울 모자」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나의 진심을  

바다 건너 프랑스에 사는 모드 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방울 모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신을 연상시키는 정중한 구애 형식의 발라드입니다.  (이 시의 토대는 카발라의 생명나무 사상이며 이는 1890년대 예이츠가 황금여명회에 가입하여 학습했던 내용 중 하나입니다. 이 시를 즐기는데 카발라의 생명나무 사상을 알 필요는 없지만 이에 대한 이해는 시를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사상과 풍수지리사상을 알면 경복궁을 좀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에서 구애는 구도의 경지이며 여기서 말하는 도는 유대교의 생명나무에 기초한 동양식 개념으로 말하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시의 이해를 돕는 차원 정도로 만 언급하겠습니다.)   이 시의 첫 세연을 읽어 보겠습니다.  


광대는 정원을 걸었다

적막에 잠긴 정원을  

그는 영혼에게 명령했다 

위로 올라가 그녀의 창틀 위에 서라고. 


그의 영혼은 푸른빛의 긴 옷을 걸치고 올라갔다   

부엉이들이 울기 시작하자 

영혼은 조용하고 가벼운 발자국 소리를 

생각하면서 현명해졌다.   


그러나 젊은 여왕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백한 빛의 잠옷을 걸친 채 일어나  

육중한 여닫이 창문을 닫고는 

걸쇠로 잠가버렸다   


The jester walked in the garden:

The garden had fallen still;

He bade his soul rise upward

And stand on her window-sill.


It rose in a straight blue garment,

When owls began to call:

It had grown wise-tongued by thinking

Of a quiet and light footfall;


But the young queen would not listen;

She rose in her pale night-gown;

She drew in the heavy casement

And pushed the latches down.


시는 광대가 정원에서 이 층의 발코니 방에 있는 젊은 여왕에게 구애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광대(시인)는 싸이의 히트송 “연예인”처럼 젊은 여왕(모드 곤)을 위한 엔터테이너일 뿐만 아니라 여왕을 지혜로 인도하는 현자입니다. (광대는『리어왕』혹은 드라마『튜더스』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왕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지적하며 왕들을 지혜롭게 만드는  역입니다.) 광대가 구애하는 모습은 구도자의 자세와 같습니다. 땅에 있는 구도자가 하늘에 위치한 여왕(생명나무의 왕관으로 신성을 상징)을 갈망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적막에 잠긴 정원과 부엉이 울음소리는 광대가 여왕의 발코니를 찾은 시점이 저녁임을 암시합니다. 시인은 먼저 푸른빛의 옷을 걸친 영혼을 올려 보내 여왕의 맘을 빼앗으려 합니다. 푸른색은 카발라 생명나무의 왼편에 위치한 원의 색으로 한없는 사랑, 친절, 자비를 상징합니다. 영혼은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무장하고 여왕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여왕은 귀찮은 듯 창문을 닫아버립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연을 읽어봅니다.    


그는 마음에게 명령했다 여왕에게 가라고 

부엉이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붉은빛의 떨리는 옷을 입고 

마음은 문틈으로 그녀에게 노래했다   


마음은 출렁거리는 꽃 같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꿈꾸면서 달콤해졌다.    

그러나 여왕은 테이블에서 부채를 들어 

마음을 공중에서 날려버렸다.  


He bade his heart go to her,

When the owls called out no more;

In a red and quivering garment

It sang to her through the door.


It had grown sweet-tongued by dreaming

Of a flutter of flower-like hair;

But she took up her fan from the table

And waved it off on the air.


영혼이 실패하자 이제 마음을 올려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마음에게 명령한 시점은 밤새 울던 부엉이들이 그 울음을 멈춘 새벽 즈음입니다. 마음이 입은 옷의 붉은색은 생명나무 오른편에 위치한 원이며 불 같은 정열과 힘을 상징합니다.  마음을 보내자마자 성급한 시인은 벌써 여왕과 달콤한 포옹을 꿈꿉니다. 그러나 여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인의 마음을 부채질하여 날려버립니다. 영혼과 마음이 다 실패합니다. 광대가 여왕의 사랑을 얻는 일은 구도의 길과 같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섯 번째 연입니다.      


나는 방울 달린 모자가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난 그걸 보내고 죽어야지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자 

그는 여왕이 지나갔던 자리에 방울 모자를 놓았다  


'I have cap and bells,’ he pondered,

'I will send them to her and die’;

And when the morning whitened

He left them where she went by.



거듭되는 여왕의 거절에 상심한 광대는 아침 해가 뜨자 죽을 결심을 합니다.  광대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방울모자를 바치고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합니다. 방울모자 없는 광대는 붓을 잃은 서예가이며 검을 빼앗긴 무사입니다. 시인에게 사랑(깨달음)은 구애(도) 자의 전부를 바쳐야 허락되는 경지입니다. 그러자 기적이 생깁니다. 

    

  마지막 세 연입니다.   


여왕은 방울 모자를 자신의 가슴에 놓고 

구름 같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덮었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 입술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하늘에서 별이 나타날 때까지.  


여왕이 문과 창문을 여니  

마음과 영혼이 들어왔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붉은색 마음이 

그녀의 왼손에는 푸른색 영혼이 


마음과 영혼이 귀뚜라미처럼 시끄럽게 울어대니.   

현명하고 달콤하게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머리카락은 접힌 꽃 

사랑의 정적은 그녀의 발에 있네   



She laid them upon her bosom,

Under a cloud of her hair,

And her red lips sang them a love-song

Till stars grew out of the air.


She opened her door and her window,

And the heart and the soul came through,

To her right hand came the red one,

To her left hand came the blue.


They set up a noise like crickets,

A chattering wise and sweet,

And her hair was a folded flower

And the quiet of love in her feet.


광대가 남기고 간 방울모자를 부여안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여왕. 하늘에 별이 나타날 때까지 불렀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부른 셈입니다. 여왕은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여니 생명을 잃었던 광대의 마음과 영혼이 되살아나 그녀와 합일 (“그녀의 오른손에는 붉은색 마음이 / 그녀의 왼손에는 푸른색 영혼이”)을 이룹니다. 오른쪽에 붉은 원,  왼쪽에 푸른 원을 가진 생명나무가 연상됩니다. 흑(밤)과 백(별)이 블랜딩 된 저녁하늘을 배경으로 붉은색(양)과 푸른색(음), 광대(영혼과 마음)와 여왕, 땅과 하늘이 하나(oneness)가 됩니다. 이는  종교적 용어로 신비의 결합(mystical union)이며 유대교 카발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과 신부(soul)의 결혼으로 표현합니다. 이때 여왕의 노래는 마음과 영혼의 소리와 합쳐져 삼중창이 됩니다. 사랑의 완성으로 영적인 깨달음을 얻으니 삼중창의 시끄러운 소음(“a noise”)도 현명하고 달콤한(“sweet”) 재잘거림으로 들립니다. 진정한 환희의 순간입니다. 여왕의 육신은 밤이 오면 접히는 꽃잎처럼 평안을 되찾고  “사랑의 정적”은 “그녀의 발”을 감쌉니다. 광대가 얻은 여왕의 “사랑”과 “깨달음”은 환상이 아닌 땅을 딛는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마지막에 부르는 환희의 찬가는 모드 곤과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꿈을 꾸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주 달콤한 꿈을 꾸고 있던 그 시기 시인의 "젊은 여왕"은 애인의 사생아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카발라의 생명나무 

생명나무 맨 상단은 왕관(케테르)이며 이는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있는 신성, 불교의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왕관은 흰색인데 흰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색이자 가장 눈부신 색으로 최고의 지위 혹은 최상의 의식 상태를 상징합니다. (시에서 젊은 여왕은 케테르의 흰색을 떠올리는 창백한 색의 가운을 걸치고 나옵니다.)   생명나무가 가진 열개의 원은 세피롯이라고 불리며 각각 지혜, 이해, 사랑, 엄격, 미, 영광, 영원, 기초, 구현  등을 나타내는데 이 중 시에는  왕관 아래 좌우에 위치한 청색 원과 홍색 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청색 원은 자비, 사랑의 기운(음)이며 홍색 원은 엄격, 힘, 정의의 기운(양)을 나타냅니다.  이 좌우의 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의 길과 같은 균형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의 갈색 혹은 흑색의 원은 기초 혹은 땅 위에 존재하는 실체를 나타냅니다. 각 원이 대표하는 기운들은 표시된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움직이며 이는 인간이 명상을 통해 신성(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반대로 신이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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