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과일 #추억의 맛 #보물 같은 기억r
모처럼 딸들과의 소풍.
산림욕장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띄었다.
빨갛게 살이 오동통한 앵두가 작은 일회용 컵에 소복하게 담겨 가판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반가운지 작게 환호성을 지르며 얼른 한 컵을 집어 들었다.
한 컵에 천 원. 한 컵을 더 살까 잠시 머뭇하다가 욕심을 얼른 내려놓고 돌아 섰다.
예전의 십원가치나 될까 싶은 천 원 한 장에 이렇게 만나기 힘든 앵두를 한 컵 얻다니.
꼭 보물을 거저 얻은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빨간 루비처럼 투명하게 빛나며 엄지손톱만큼 큰 앵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옛 친구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앵두를 품에 안고 산길을 올랐다.
예쁜 앵두알을 하나 입에 넣으니 달고 시큼한 앵두맛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스르르 녹아버리고 큰 씨만 남는다.
씨만 크고 과육이란 게 별로 없는 것이 앵두지만 모처럼의 앵두맛은
가슴 가득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행복감에 취해 나는 딸들에게 앵두컵을 내밀며 행복감 공유를 권했다.
나는 딸들도 같은 마음인 줄 알았다.
엄마의 권유에 두 딸은 마지못한 듯 한알을 입에 넣더니
“에그, 이게 무슨 맛이야.” 하며 퉤 뱉는다.
딸들의 예상밖 반응에 마음이 좀 언짢아지려고 하면서 언성이 살짝 높아진다.
“어머, 앵두맛을 모르네!”
그렇구나. 요즘 도시 젊은애들은 앵두맛을 잘 모른다.
단맛도 적고 시큼 떨떨한 맛의 앵두가 과일축에 낄 수나 있던가.
다디달고, 맛이 풍부한 과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그에 비하면 앵두 맛은 참 소박하다.
양념 많이 들어가 진하고 느끼한 음식과는 다른
담백하고, 순수한 자연산 재료의 엄마 반찬 같은 맛이다.
앵두나무를 본 적도 없고 앵두를 먹어본 적도 없는 도시 젊은 사람들이 어찌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오래전 친정집 작은 마당 한 귀퉁이에 앵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키가 크지 않은 앵두나무는 앵두꽃이 한가득 필 무렵이면
나무 전체가 연분홍색 솜사탕처럼 보였다.
그 곱디고운 앵두꽃은 작은 마당을 환하게 만들었다.
여름이 시작되면 작은 나무에 앵두 열매가 다닥다닥 가지가 휘게 열렸었다.
그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들여다보면 내 가슴에도 작은 기쁨이 빨갛게 차올랐었지.
휴일 아침, 잘 익은 앵두를 은빛 양푼 가득 따서 마당의 펌프물에 씻어 입에 넣던 기억.
그 빨간 앵두알의 달고 새큰한 맛은 자연산 행복이었다.
앞마당 한 귀퉁이에
빨간 보석 같은 앵두알이 빽빽하게 달려있는 앵두나무 한그루.
그 그림 같은 풍경은 아주 소중한 기억이다.
산길을 오르며 두 딸이 공감해주지 않는 앵두 맛에 혼자만 취해
나는 연신 앵두씨를 숲으로 던지며 중얼거린다.
“흥, 앵두 맛을 모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