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속휘 Sep 12. 2022

고려 술사 계승자

영혼 수사관 Ep. 9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

몸과 마음 모두 안 좋은 상태로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미친 듯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그냥 듣고 있었다.

음악소리는 끊겼다 잠시 후 다시 들렸다.

손을 더듬어 사이드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찾았다.

전화기엔 등록되지 않은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스피커 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아앙? 공필니임~”

어제 그 술사 BJ의 느끼한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오늘 또는 내일 차 한잔 하실까요오?”

“누구시죠?”

“오~ 제가 그만 깜박했네여어! 저는 고려 술사 헌씨 가문의 35대손! 술사 헌미라 하옵니다앙.”

“아…, 술사 BJ님…”

“오늘 시간 좋으신지요오?”

“몇 시요?”

나는 귀찮았다.

“저녁하시겠습니까앙? 미슐랭 추어탕 집에서엉?”

“추어탕요?”

“싫으시면 미슐랭 자라탕으로다가앙?”

“차나 한잔 마시죠. 어디 사세요?”

“저는 영계와 인간계 중간에 거하고 있습니다마안.”

“아… 네에… 그럼 홍익인간들이 많은 홍대에서 보시죠.”

“몇 시 즈음~”

“지금 몇 시죠?”

“오후 5시 23분입니다아앙.”

“그럼 7시에 홍대 입구 9번 출구에서 봬요.”

나는 전화를 인사도 없이 끊어버렸다.

술사 BJ는 가짜고 그냥 주작꾼이라 생각했다.

리얼리티 방송을 하는 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교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에 7시 10분에 올랐다.

대략 도착 시간이 7시 30분쯤 될 것 같았다.


불금의 홍대입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9번 출구로 나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BJ를 찾았다.

그는 항상 명품 티가 확 나는 운동화와 남성 카우치 백을 손에 들고 있으며 뚱뚱한 체구를 가졌고 반짝이는 붉은 실크천으로 만든 상의와 황금색 바지의 양복처럼 보이는 개량 한복을 늘 입고 다녔다. 황금색 실크천으로 상투를 튼 헤어스타일에 반은 흰색으로 반은 진한 검은색으로 염색한 독특한 스타일의 BJ였다.

처음 그의 방송을 보았을 땐 전형적인 뻥가이버 주작꾼이구나 생각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 뚱땡이 술사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맞았다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봤다.

아까 모여 떠들고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나를 보았다.

부끄러웠다.

그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누군가 나왔다.

바로 그 술사 BJ이였다.

주작꾼을 넘어 아주 심한 관종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나와 그 독특한 외모의 술사에게 주변의 모든 행인들의 시선이 꽂혔다.

나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했다.

“감공필입니다.”

“고려 술사 헌씨 가문의 전통 계승자 35대손 술사 헌미 올씨다.”

그가 나와 악수를 하며 주먹을 쥔 왼손을 위로 올랐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비디오 촬영을 하며 일제히 외쳤다.

“레전드! 레전드! 레전드!”

너무 창피했다.

나는 잡고 있던 술사 BJ의 오른손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조용한 곳으로 빨리 이동하시죠!”

“왜요?”

“이런 상태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나는 먼저 빠르게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갔다.

지하철역 밖에서는 아직도 레전드라 외치는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술사 BJ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 개찰구로 들어갔다.

“관종 주작꾼하고… 합방은 무슨…” 나는 승강장으로 향해 빠르게 걸었다.

승강장 맨 앞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 있었다.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승강장에 퍼졌다.

나는 스크린 도어로 천천히 다가갔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며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에 오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아당겼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회피했다.

그 관종 BJ 술사가 서 있었다.

오~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까 환호하던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뭡니까?” 불쾌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술헌사사들입니다. 제 열성 팬들이시죠.”

“팬? 팬도 있으세요?”

그 술사 BJ의 튀어나온 가느다란 눈이 나를 노려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너그러운 말투의 술사가 엄지를 치켜세워 구경하고 있는 그의 팬들에게 보였다.

그 사람들은 또다시 오~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팬분들 보내시고 저랑 조용히 대화하시죠. 진짜로 합방하시고 싶으시면요.”

“합방 구애는 내가 아니라 공필님이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

“공필님 윱 구독자가 얼마나 되시죠?”

“15만 정도 됩니다.”

“윱만 하시죠?”

“네.”

저는 250 윱버이자, 300 틱척커이자, 150 인그램 파워 유저이자, 랭킹 1, 2위를 다투는 아플카 TV BJ  시다.”

…”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몰라뵈서 쬐성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머시합니다.”

“뭐하시다구요?” 나는 정말 아주 정말 이 BJ와 합방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Mercy 하다 했습니다. 내가!”

“네에~, 그럼 머시기 하시고 저는 이만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공필님, 미제 사건 해결하고 싶어서 방송하시는 게 아니라 그 영혼들 돈벌이로 이용하시는 거군요!”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요! 이 사람이!”

그 술사 BJ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셀카 모드로 해서 화가 나 우락부락 해진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보시요. 공필님의 진짜 얼굴 이외다.”

화가 난 내 얼굴을 처음 본 나는 당혹스러웠다.

“얼굴이 별로네요. 화가 나니…” 흘러내린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화내지 마시오. 화는 악을 부르고 악은 죄의 씨앗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이치오.”

술사 BJ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뭔가 그럴싸하게 들렸다.

“좋습니다. 사과 먼저 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술사 BJ도 고개를 숙여 나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이제 대화를   보실까요.”

술사 BJ 구경하고 있는 그의 팬들을 향해 가라 손짓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일사 분란하게 해산하였다. 무슨 사이비 종교 집단 같아 보였다.

“혹시 종교집단 뭐 그런 거 하시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저는 고려 술사 집안 35대손 계승 술사입니다.”

“그런데, 헌 씨는 처음 들어 봅니다.”

“희귀 성씨입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술사들을 모조리 잡아 다 처형을 했답니다. 그때 저희 선조님께서 술수로 몸을 가리시고 백두산으로 단숨에 날아가 숨으셨다고 집안 대대로 전해지고 있지요.”

“네, 그러시구나. 그럼 헌미님도 날아다니시나요?”

“허허허, 비! 밀!” 하며 불룩하게 나온 배를 박자에 맞춰 툭툭 내밀었다.

“어디서 이야기할까요?” 나는 애써 외면했다.

“여기서 하시죠.” 그러더니 어디론 가 걸어갔다.

“어디 가세요?” 나는 뒤를 따라갔다.

자판기 앞에 멈춰 서더니 동전을 달라는 손동작을 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건넸다.

“율무차 너어~ 무 쪼아!” 자판기에서 종이컵을 꺼내며 술사 BJ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승강장 벤치에 앉는 술사를 따라 옆에 앉았다.

이거 진짜 맛있다오. 여기 가끔 오면 반드시 기필코 꼬옥 마셔줘야만 하는 물질계의 중요한   하나랍니다~앙.”

종이컵의 율무차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뢰감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냥 앉아있었다.


“이따 새벽에 방송하세요?” 술사 BJ가 두터운 저음의 평범한 말투로 물었다.

할 예정입니다…”

“그 논두렁 가실 건가요?”

“글쎄요. 다른데 가볼까 합니다.”

“저랑 논두렁 이따 합방합시다.”

“글쎄요.” 나는 승강장 천정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피해자 영가 묶인 거 같다고 하시던데 방송에서요.”

“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합니다.”

“이따 합방 때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나 고려 술사 35대손 전통 계승자! 술사 헌미가 말입니다.”

“글쎄요.”

“그러시지요.”

“글쎄요.”

“그러합시다.”

“글쎄요.”

“내가 사기꾼 뭐 그런 걸로 보이시나 보오. 안 그렇소?”

“글쎄요.”

술사 BJ가 다 마신 종이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명품 파우치백에서 또 다른 명품 브랜드의 장지갑을 꺼냈다.

나는 벤치의자 등받이에 드러눕다시피 앉아서 술사 BJ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술사 BJ는 장지갑에서 하얀 한지 같은 것에 잿빛 문양이 그려진 부적 같은 것을 한 장 꺼내 들고는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종이를 복잡하게 여러 번 접어 빈 종이컵 안에 찔러 넣었다.

순간 종이는 사라지고 율무차가 종이컵에 가득 채워졌다.

나는 깜짝 놀라 등받이에 기대 있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마술 하신 건 가요!”

“마술이 아니라 도술이라 하는 겁니다.”

“마술사세요?”

“술사입니다.”

“오~, 신기! 방기!”

“신통 방통이지요.”

“이래서 구독자 팔로워가 많으시구나! 인기 마술사셨네!”

“인기 술사입니다. 고려 전통 술사 집안의 35대 계승자!”

“다른 마술 없어요?”

“술수입니다.”

“Anyway! 보여줘! 보여줘!” 나는 주먹을 위아래로 조금씩 흔들며 속삭였다.

술사 BJ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율무차가 가득 담긴 종이컵을 나에게 주었다.

“이거 드시고…, 이따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왜요?”

“어허!, 논두렁 합방해야죠!”

“글쎄요.”

“이따 전화드립니다.”

술사 BJ는 빠른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눈속임 마술로 만든 율무차의 맛이 궁금해진 난 조심스레 종이컵에 입을 가져갔다.

그리고 살짝 기울여 마셔 보려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확인해본 종이컵 안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어쩌면 진짜 술사  수도 있겠다 잠시 생각했다.


이전 08화 영이(靈耳): 귀신의 소리를 듣는 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