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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속휘 Sep 14. 2022

술사와의 합방

영혼 수사관 Ep. 10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나는 라이브로 소통 방송을 하며 논두렁 사건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술사 BJ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무시하고 혼자 가고 있었다.

채팅창에는 술사와의 합방에 대해 물어보는 글이 많았지만 깡그리 무시했다.


현장에 다가가자 대낮처럼 환한 조명 빛들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TV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있나 생각했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은 접어야 하나 걱정하며 차를 주차했다.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먼저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촬영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굉장히 많은 카메라들과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송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슬쩍 한 카메라맨의 어깨너머로 촬영장을 엿봤다.

“헉!” 그 빌어먹을 뚱땡이 술사 BJ가 환한 미소로 교태를 부리며 방송을 하고 있었다.

뒤로 잽싸게 몸을 돌려 차로 향했다.

‘대단하네! 역시 유명 BJ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차의 문을 여는 순간,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빛이 비쳐오는 뒤를 돌아봤다. 눈이 너무 부셨다. 그리고 엄청난 광명 속에서 번쩍이는 뚱땡이가 걸어 나왔다.

“드디엉! 그토록 갈망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스트 헌팅계의 영원한 레전드! 영혼 수사관님이 도착하셨네요옹!”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더 나빴다.

난 손으로 조명 빛을 가린 채 그 술사 BJ를 보았다.

“자아~ 이리로 오시죠옹~” 술사 BJ가 과장된 몸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 BJ에게 니가 오라고 손짓했다.

술사 BJ가 움직이자 수많은 카메라와 스텝들이 따라 움직였다.

난 소리쳤다.

“술사! 당신만 와!”

카메라의 반은 나를 나머지 반은 그 술사 BJ로 앵글이 향했다.

검붉은 뿔테안경을 쓴 한 여자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기요. 이거 라이브 중이고요. 저기로 빨리 가세요.”

나도 속삭였다.

“누구세요?”

“저는 막내 작가입니다.”

“작가요?”

“네. 지금 유튜브 100만, 아프리카 50만 넘게 시청 중입니다.”

“네?!” 난 너무 놀랐다.

“거짓말이죠?”

“아니요. 빨리 저리로 가세요” 그 작가라는 여성이 속삭이더니 조명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난 다시 술사 BJ를 향해 오라 손짓했다.

술사가 움직이자 또다시 모든 스텝이 우르르 따라 움직였다.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단 둘이!”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술사 BJ가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같아 보였다.

술사와 함께 진행 중이던 모델 같은 여성분들이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소리에 맞춰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제로 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들을 뒤로 한채 술사 BJ가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짜증 난 목소리로 술사 BJ에게 따지듯 물었다.

“공필님 기다렸습니다.”

“왜요?”

“허허~, 벌써부터 기억이 깜빡깜빡하시면 큰일인데…”

“제 기억은 엑사바이트급이구요.”

“합방하기로 했잖습니까? 우리! 오늘! 여기서!”

“합방하기로 안 했는데요! 우리! 오늘! 여기서!”

“뭔들 어떠하리! 기왕지사 이리된 거 '우리는 전설이다'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술사 BJ가 소리치더니 덩실덩실 제로 투 댄스를 추고 있는 여성분들 쪽으로 나를 밀고 갔다.

밀려가며 팔뚝에 차고 있는 스마트폰의 채팅창을 보았다.

채팅창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는 돌아서 술사 BJ에게 제안했다.

“그래요! 까짓것 합방합시다. 이렇게 된 거…, 근데! 버라이어티 예능처럼은 하지 맙시다! 억울하게 죽으신 영가님과 함께 하는 리얼리티 방송이니까!”

“그럽시다!” 술사 BJ가 흔쾌히 수락했다.

“말투도 정상인처럼 하시고 좀…”

“그럽시다” 술사 BJ가 또 흔쾌히 수락했다.

“공필님, 잠시만 여기 계세요. 제가 정리를 좀 하고 방송합시다” 술사 BJ가 환한 조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난 장비들을 차에서 꺼내며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나 막막했다.


술사가 나를 불렀다.

나도 환한 조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많은 카메라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떨려왔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여러분! 어렵사리 모셨습니다! 고스트 헌터계의 살아있는 전설! 감! 공필님과 합방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인사하시죠.”

“아…안녕..하세요..”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고개를 숙이는 상체가 떨떨 떨렸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처럼 홀로 어둠과 사투를 벌이시는 분이라 지금 이 상황에 적응이 잘 안 되시죠?”

“아…네..에… 좀 그렇..네요.”

“긴장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하시죠!”

나름 나도 6년 차 라이브 방송을 해온 베테랑인데 생각하며 내 스타일로 방송을 이끌어 가기로 결심했다.

“우선 죄송하지만, 여기 조명이 너무 많습니다. 조명 한 두 개만 남기고 모두 꺼 주세요. 혹시 모를 주변에 계시는 주민분들께 피해가 없도록 말입니다. 카메라 스텝분들도 서로 협의하셔서 3분만 남아 주시고 모두 철수 부탁드립니다.”

많은 스텝들이 술렁였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깐깐하게 생긴 여성 한 분이 나에게 걸어왔다.

“제가 여기 책임 작가인데, 당신이 지휘할 권한 같은 거 없어요. 우린 우리 방식이 있습니다.”

난 술사 BJ를 쳐다봤다.

“거장이신 작가 누님, 오늘은 고스트 헌터 합방 날이니 스타일 맞춥시다.”

술사 BJ가 왕작가라는 여성을 달래며 술렁이고 있는 스텝들에게 데려갔다.

무언가 심각한 회의를 하는 상황에서도 카메라 몇 대와 조명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라이브로 각각의 플랫폼에 동일하게 송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명이 꺼지며 많은 인원들이 술사 BJ의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진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방송의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는 동안 버스가 천천히 어디론가 이동했다.

3대의 카메라와 4명의 스텝이 남아있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술사 BJ가 내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분, 본의 아니게 갑자기 술사 헌미님과 합방 진행하게 됐어” 나는 내 방송의 시청자들에게 술사 BJ를 소개했다.

“고려 헌씨 술사 가문의 35대손 전통 계승자 술사! 헌미 인사드립니다.”

지켜보던 스텝 하나가 테마 음악을 틀었다.

“오늘은 좀 경건하게 갑시다” 내가 다시 당부했다.

그리고 술사와의 라이브 합방이 시작되었다.


술사 BJ가 황금빛 부채를 확 펼쳤다 접으며 피해자 영가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그 영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으로 요상한 기운이 있네요.”

“요상한 기운이요?”

술사 BJ는 부채를 다시 활짝 펴더니 논바닥을 향해 휘휘 바람을 일으키며 주문 같은 것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걸어갔다.

나와 스텝들이 그에 뒤를 따랐다.

술사 BJ가 걸음을 멈춰 섰다.

“여기 이곳 땅 밟은 기억이 아직 그 테라바이트 메모리에 남아 있나요?”

“네? 엑사바이트입니다만,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어디로 진입하셨나요? 전에 라이브 하실 때” 술사 BJ의 가느다란 눈에서 광채가 보였다.

“글쎄… 전에는 이 쪽이 아니라 저 쪽으로 들어왔던 거 같아요.”

술사 BJ가 스텝 한분에게 손을 내밀며 “적말뚝” 하자 끌고 다니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의 커다란 금속 상자 안에서 붉은 칠이 되어 있는 가느다랗고 긴 말뚝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술사 BJ가 높이 들어 올리더니 빙글빙글 머리 위에서 돌리다 공중에 던졌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 섰다. 말뚝이 쿵 소리를 내며 논바닥에 박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스텝들을 광채가 번뜩거리는 가느다란 눈으로 훑으며 술사 BJ가 경고하듯 말했다.

“이 주변은 얼씬도 하지 마!”

그렇게 걷는 걸음 중간중간에 말뚝을 박았다.


피해자 영가가 있는 위치에 다다른 술사 BJ는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볼 법한 손동작을 했다.

“영가가 결계 안 덫에 걸려있네. 결계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덫까지…”

“피해자 영가가 결계 안 덫에 걸려 있다구요?”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 주술 방책이 아니야.”

“그럼, 다른 나라 사람이 했다는 건가요?”

“요망스럽네… 이게 이 결계에서 기운이 나오는 게 아니고 위에서 내리 꽂히거든!”

술사 BJ가 오른손을 힘차게 하늘로 들어 올리자 반짝이는 작은 별들 같은 것이 위로 뿜어져 올랐다.

그리고 그 별들 같은 것이 응집되며 빛줄기를 만들며 어딘가로 이어져 나갔다.

그 빛줄기는 논두렁 위에 있는 전봇대로 향했다. 그리고 전봇대 변압기 위에 새 둥지처럼 보이는 곳에서 사라 졌다.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본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단한 마술쇼를 직관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밟은 곳만 밟고 따라야 합니다” 술사 BJ가 천천히 부채질을 논바닥에 하며 그 전봇대로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걸어 나갔다.

나도 그리고 모든 스텝들도 술사 BJ가 밟은 발자국을 따라 일렬로 뒤따랐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더딘 걸음을 걷던 술사 BJ가 바로 뒤를 따르던 나를 돌아봤다.

“이제 좀 믿음이 가신다고요! 허허허”

나는 술사 뒤를 따르며 진짜 술사인가 아주 잠깐 생각했었다. 그러자 마자 앞서 걷던 술사 BJ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 것이었다. 놀란 난 그 BJ가 점점 진짜 술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더딘 걸음으로 도착한 전봇대 근처에서 술사의 걸음이 멈췄다. 술사 헌미는 그 금속 상자에서 자그마한 자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휘익 돌아 동그랗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소금을 뿌렸다. 그 가운데 서서 기묘한 손동작을 하더니 양팔을 벌려 주문을 외우며 빙빙 돌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정가운데에 안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속 상자를 나르던 스텝 한 분이 무슨 나뭇가지들을 소금 위에 꽂고 새끼줄로 나뭇가지들을 둥그렇게 연결하더니 오색천을 찢어 부적과 함께 그 새끼줄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메어 달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하면서 속삭이듯 주문 같은 것을 읊조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술사 헌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이 안으로 들어오세요” 술사 헌미가 말하며 소금 원 밖으로 나갔다.

“이게 뭔가요?” 내가 소금 원 안에서 술사 헌미에게 물었다.

“안전한 터를 만든 겁니다. 혹시 몰라서요.”

“그럼 저 나뭇가지들은 뭔가요?”

“복숭아나무로 만든 말뚝입니다. 이렇게 결계로 안전한 방어 땅을 만들어 부정을 피하는 거죠.”

술사 헌미가 스텝들에게 힘 있게 말했다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이 안에서 나오지 말거라!”

그리고는 전봇대 위의 새 둥지로 보이는 곳 바로 아래로 갔다. 그리고 커다란 금속 상자 안에서 두 개의 자루를 꺼냈다. 중간 크기의 자루에 들어 있던 검은 가루를 수북이 쌓일 정도로 둥지 바로 아래 전봇대 앞에 부었다. 그리고 다른 커다란 자루에 담긴 고운 황토처럼 보이는 가루를 수북이 쌓은 검은 가루 위에 조금 붇더니 왔던 길을 따라 가루를 가늘게 부어가며 피해자 영가가 갇혀 있다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나와 다른 스텝들은 소금 원 안에서 술사 헌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가가 있는 장소 주변에 황토처럼 보이는 가루를 빙 둘러 뿌려 놓고는 한 발치 떨어져 섰다.

그러고 나서 다시 기묘한 손동작을 하더니 가부좌를 틀고 그 자리에 앉았다.

어디선가 여러 새소리와 까치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얼마 후, 나는 머리에 깨질 듯한 편두통이 생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헛구역질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피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뒤돌아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귀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금속 상자를 옮기던 스텝이 나의 등을 탁 쳤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 스텝이 내 이마를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로 탁 내리쳤다. 그러자 두통도 구역질도 사라지고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스텝이 들고 있는 것을 봤다. 붓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내 이마를 타고 물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이마를 쓱 닦아냈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난 이마를 닦은 손을 보았다. 붉은 액체가 묽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 스텝을 보았다.

그 스텝이 나의 오른쪽 발끝을 원안으로 넣으라고 가리켰다. 그리고 붓처럼 보이는 것을 대나무 대롱 같은 통에 조심스레 넣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신발 끝이 소금원을 밟고 밖으로 나가 있었다.

“이게 뭐냐구요!”

스텝이 그 통을 메고 있던 봇짐에 넣었다.

“닭 피요.”

“네? 닭피요!”

“그냥 닭피가 아니오.”

“그럼 무슨 닭 핍니까? 뭐 타노스의 닭이라도 됩니까!”

“신령한 기운으로 8년을 치성을 드려 키운 붉은 장닭의 피입니다.”

“그래요! 그 귀한 걸 왜 나한테 뿌리십니까?”

그 스텝은 따지는 나를 무시하더니 뒤돌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술사 헌미를 향해 합장을 하고는 서 있었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이 일로 내 두통과 구역질이 사라졌단 생각에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술사 헌미의 몸이 움찔 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합장하며 서 있던 스텝이 주문 같은 것을 외우자 그의 몸통이 종처럼 울렸다. 그 울림이 뒤에 서있던 나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술사 헌미를 카메라의 줌을 당겨 보았다.

“어? 이건.. 말도 안 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으로 줌을 당겨 보았다.

술사 헌미가 가부좌를 튼 상태로 지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협영화에서나 나오는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채팅창의 반응이 궁금했다. 술사 헌미 방송의 채팅창에는 의외의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드뎌 공중부양’, ‘술사 헌미의 위엄’ 등등의 글들이었다. 반면, 내 방송의 시청자들은 마술 쇼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중에 떠있던 술사 헌미의 팔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점점 빨라졌다. 술사 헌미의 채팅창에선 ‘이윽고 펼쳐지는 천수관음 술’ 같은 글이 빠르게 오르며 엄청난 후원금이 터졌다.

카메라 줌에 잡힌 술사 헌미의 모습은 나에겐 흡사 슬램덩크 강백호의 훅훅 디펜스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 술사 헌미의 팔이 무수히 많아지더니 각각의 손마다 다른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야외의 넓은 공간에서 희미한 조명과 멀리서 줌을 당겨 찍다 보니 착시현상이 발생했다 생각했다.

순간, 작고 동그란 푸른 빛덩어리가 술사 헌미의 단전에서 발화되더니 커다랗고 둥그런 원구로 불타올랐다. 그 푸른 불덩어리는 술사 헌미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전봇대 변압기 위의 새 둥지로 일시에 뿜어져 나갔다.


파아악 변압기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변압기가 터지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온 정신이 전봇대로 쏠렸다.

다시 파파파 소리가 나더니 변압기 위의 새 둥지 같은 것이 활활 타올랐다.

술사 헌미가 어느새 전봇대에 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변압기에서 튀어나오던 전기 불꽃이 멈추었다.

술사 헌미가 우리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일차적으로 새 둥지로 위장해 놓은 결계는 소멸시켰습니다만, 다른 결계와 덫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그 영가도 그대로 잡혀 있는 상태고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내가 물었다.

술사 헌미는 지쳐 보였다.

“이게 어디 주술인지 알아야 다른 결계와 덫을 제거할 때 혹시 모를 역염 다시 말해 역살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언제 알 수 있죠?”

“오늘은 돌아가고 다음에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오지 마세요.”

그리고 스텝들의 부축을 받으며 술사 헌미는 떠났다.

나도 서둘러 방송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향했다.

술사 헌미는 두 시간여의 라이브 방송만으로 내가 6년간 받은 후원금의 2배가량이 모인 것 같았다.

같은 유튜브로서 진심으로 부러웠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피칠갑된 내 얼굴이 아마존 강의 식인종 같았다.

샤워기 물을 타고 하수구로 붉은 핏물이 흘러들어 갔다.

김이 서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때였다.

‘배 안 고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난 귓속에 물이 들어갔나 싶어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뛰었다.

‘밑에 집에서 올라온다’ 다시 들렸다.

‘라면 먹자’

“누구야!”

‘나다 신~ 나는 악마’

“중2병?”

‘그래 이제 그 이상한 기계 없이 나랑 말할 수 있어.’

너무너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귀를 통해 듣는 것이 아니라 두개골이 울리며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겁은 나지 않았다.

나는 술사 헌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술사 헌미의 지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렸다.

“술사 샘!”

“허허허 언제부터 내가 술사 샘이 됐나요?”

“지금부터요! 저 좀 도와주세요. 샘!”

“그냥 듣고 싶을 때 듣고 듣기 싫으면 무시하세요. 그럼 됩니다.”

“네? 어찌 알고 있으신지? 뭐 부적이라던가 굿 같은 거 뭐 부정 털어내는 그런 거 해 주셔야 하지 않나요?”

“저는 무속인이 아닙니다.”

“그럼, 샘! 주술 같은 걸로 다가… 어떻게 좀…”

“불가항력입니다. 그냥 영이로 사십시오. 공필님 방송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니… 영이는 또 뭡니까! 영안도 아니고”

“귀신의 소리를 듣는 귀랍니다.”

“그런 귀 필요 없으니 제발 도와주세요. 술사 샘!”

“이제 다른 소리들도 들리실 겁니다. 그러니 걸러 듣는 방법을 찾으세요. 그럼,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샘?”

나는 술사 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술사 헌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그 후로 중2병 영가의 수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퇴마 방법 같은 걸 인터넷을 뒤져가며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 후로 한 동안 그 목소리에 시달려야만 했다.

적응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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