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기억의 구슬| ②바다와 산

[30대의 바다] 직장인으로서의 프리다이빙 도전기_7편

by 황제펭귄
때는 2024.05.25.(토)
일상 속 힐링 한 티스푼, 즐거움 한 스푼, 푸른 바다 한 줌과 햇살 한 아름 안고 살고 싶은 30대 직장인 씀


노란색 기억의 구슬


티스푼


바다와 산



내가 이렇게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소소하고 작은 불행'도 겪어봤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30대 초반,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경험을 했다.

바로 그 흔한 ‘번아웃.’이다.


그 당시 난 내가 '번아웃'이라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번아웃'이었다.


결혼을 앞둔 시기였다.

회사에선 끝내 제대로 오르지 않은 성과급과

아무 쓸모 없는 스톡옵션에 희망고문 당하고,

‘핵심 멤버니까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상사의 가스라이팅까지 겪었다.


그리고 물론 포괄적 임금제 안에서

평일 밤은 기본이고 주말까지

나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일했다.


그럴 리가요.


당시 나는 정말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다.

한번 시작한 일, 성실하게 잘해보고 싶었고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적 성취도 맛보고,

내 분야에서 커리어도 차분히 쌓아 나가고,

매월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결혼도 하고, 집도 구하고 싶었다.


나도 WIN, 회사도 WIN.

건강한 윈윈 관계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회사는 WIN.WIN.WIN.

나는 LOSE.LOSE.KO.


회사는 승승장구하며 보란 듯이

쭉쭉 성장해 갔지만,

나는 점점 더 소진되어 갔다.


초점과 영혼이 나가도 일하는 근로소득자


과도한 업무로 돌발성 난청 증상이 나타나고

허리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난생처음 디스크 주사도 맞았다.


촉촉하던 내 눈은 시장에 오래 걸려 있었던

동태눈처럼 건조해져만 갔고

30년 인생 웃는 상이던 내 인상은

점점 날카로워져만 갔다.


손목터널증후군은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라테시절 조직 문화에 익숙한 상사와

MZ오피스를 방불케 하는 부하직원까지.

내 인상의 변화


그럼에도 K-직장인에게는

'원래 다 그렇지' 싶었다.


워낙 밤을 새우고

집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잦아,

회사 동료들과 흔히 나누던 인사가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였을 정도였다.


심지어 신혼여행 중에도

업무 연락은 받아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예상했어, 그럼 그렇지'


일부러 바쁜 시기를 피해서

간 신혼여행이었음에도

나는 나의 일을 잠시 대신 대응해 줄 수 있는

팀원이나 사수를 기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밑으로는 다 인턴이었고

그 인턴조차도 1~3개월 대학생 계약직이었다.

가르치고 키울 수 있는 정규직 팀원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속 없는 열정 바보였다.

누가 신혼여행 중에 업무 전화받으라고 하냐고


사실 그 상사는 동료 직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오래전부터 '공황장애 메이커'였다.

그 상사와 일했던 사람들 중 유독

공황장애를 갖게 된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얼굴의 가면을 쓴 사람처럼

밖으로는 능력 있고 인정받는

멋있는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안으로는 직원을 건전지처럼 갈아 끼우고

배즙처럼 갈아 쓰며

가끔 화가 나면 문을 세게 발로 쾅! 걷어 차고

커피 머신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있는 힘껏 내려치고

불만이 쌓이면 꺼지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나누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정치와 종교 논쟁,

인격 모독, 성차별, 그리고 간헐적 분노’

모두를 겪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그 기억들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마음 한켠에 깊은 흉터처럼 남아,

가끔은 PTSD처럼 올라온다.


상사가 거지 같은데, 상사는 돈이 많고 나는 돈이 없으니. 내가 거지구나.


누군가 보기에는 바보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쉽사리 퇴사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끝까지 해내고 싶은 열정과 의지도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을 거듭 해내고 있었고

그 성장의 결실을 회사와의 약속대로

언젠가는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가스라이팅 경험은 기본이고,

주말 근무, 야근, 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장 트러블은 필수죠.

분노표출과 인신공격은 선택 사항 아닌가요?"

직장인 공감짤 中 | 직장인은 건강과 돈을 맞바꾸는 게 인지상정


그런 상황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은

다름 아닌 '신혼여행'이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린 나에게

'꿈꿔왔던 신혼여행'보다

'온전한 쉼'이 더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신혼여행으로

늘 가보고 싶었던 유럽 여행 대신,

'몰디브 휴양'을 신혼여행으로 결정했다.


오죽했으면 남들이 힘들다고 하던 결혼 준비가

내 인생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었던 일이었다.


'세상에 다들 내가 1순위네,
모두 말씀을 부드럽게 하시잖아'


내 인생 첫 장거리 비행은

5성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세상에 일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있다니,

오랫동안 잠만 잘 수 있다니 너무 좋아'


18시간 비행도 행복했으니

몰디브는 어떠했겠는가.

신혼여행을 위해 간 몰디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실제 신혼여행 때 사진 | 내 인생 여행지 1위는 단언컨대 몰디브의 바다, 2위는 스위스의 산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 끝에 마신 시원한 물처럼

오랜 과업에 지친 나에게

몰디브의 민트빛 푸른 바다는 청량한 소다,

톡 쏘는 해방 그 자체였다.


매일 마셨던 레모네이드 | 모히또 가서 레모네이드 한잔.


우리 부부는 한동안 제대로 된 여행도 못했던 터라

광고 속 CF보다 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바다,

그 위에 자리 잡은 편안하고 아늑한 숙소.

올인클루시브 덕분에 마음껏 즐긴

다양한 음료와 음식, 액티비티에

풍덩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특히 숙소 앞에서 즐긴 스노클링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수많은 열대어들과 산호,

투명하고 맑은 바다,

따뜻한 햇살,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랑스러운 남편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물속 풍경에서 아름답게 보였다.


첫 스노클링 사진 | 하루종일 스노클링 하느라 등뒤가 빨개져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는 프리다이빙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주위엔 전용 부이가 있고, 안전요원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선 알지 못했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남편의 철저한 안전주의 덕분에
골반 밑까지 잠수하고 수영하는 정도로만 놀았다.

그런데도 충분히 행복했다.


신혼여행 때 사진 | 첫 스노클링, 숙소 근처에 프리다이빙 포인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얕은 곳에서만 놀았다.


나는 그렇게 4일간 몰디브에서

먹고, 쉬고, 자고, 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행복'을

다시 1순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몰디브의 석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난 참 바보같이 살았군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나를 싱그러운 '꽃'으로 가꾸어야 했는데

꽃을 심을 곳을 찾아 산만 계속 오르느라

내 앞에 펼쳐진 바다와

들판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었다.


먼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디브 첫날 석양, 물멍하기 좋은 시간


그렇게 한동안 석양을 바라보며

회사에서 내가 봤던, 들었던, 경험했던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앞으로도 보고 듣고

경험해도 되는 일들인가?'


'이곳에서의 노력이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거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미래를
꿈꿀 수 있는가?'


답은 분명해졌다.


'돔. 황. 챠 (도. 망. 처)'

위기탈출 넘버원, 어서 빨리 대탈출


그렇게 몰디브의 석양을 보며

나는 굳게 '퇴사'를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쌓여있는 업무부터 시키고

고가의 기념품을 사 오지 않았다고

투정 부리던 상사의 태도에도

바로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이 안타깝다.


나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쌓여있던 업무를 얼추 마무리하고

알게 모르게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던
동료들의 퇴사를 먼저 바라본 뒤

나 역시 적당한 타이밍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4개월 만에 퇴사했다.


'정상'만 바라보며 등산하듯 했던

나의 첫 직장 생활은

그렇게 평온한 몰디브의 바다에서

'잠수'와 함께 끝을 맺었다.


몰디브에서 쌍무지개를 봤던 날,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그 이후,

나는 운 좋게도 나를 아껴주는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은 무자비한 야근과 주말 업무,

인신공격과 정치·종교 문제 성차별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정말 배울 점 많은 상사 밑에서

좋은 동료 팀원들과 함께

회사와 상생하며 일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2주간 휴가를 내고

로망이었던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아픈 회사 생활을 통해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만들어가고,

아쉬웠던 스노클링 경험을 바탕으로

더 멋진 프리다이빙을 꿈꾸며,

나는 하루하루를 더욱 나답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너는 너. 나는 나. 난 나대로 나의 길을 가며 나답게 행복할게.


山 뫼 산

- 산인줄 알고 올라갔던 것이
알고 보니 무덤이었던 건에 대하여 -

그러니까 이것은 산. 이것은 욕이 아니라 산이다.


'뫼 산(山 )'의 뫼는 '산'의 의미도 있지만
'무덤'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난 내가 열심히 올랐던 것이 산인 줄 알았으나

지금와서 생각하면 나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은

무덤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더블 마운틴 山山 산 먹어 두 번 먹어 (빠더너스짤 中)


그럼에도, 산인들 무덤인들,

내가 열심히 올라가 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지만

앞으로 또 다른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나의 몸과 마음의 근육을 강화시켜 준

나의 前회사


하지만 또 그렇게 경험 해 봤기에

크게 한번 '휴식'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앞으로 내 삶에 있어서는

오래오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흡.. 그래도 더럽게 힘들긴 했어


때로는 현실이라는 산에서,

때로는 이상이라는 바다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야지.

높이도 있지만 넓이도 있는 거니까.


하늘은 높고 세상은 넓고 나와 너는 소중하다.

산이든 바다든 우리 모두 행복하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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