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자낙스의 효과는 여전히 좋았고
그렇게 어두웠던 그 밤에 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다음날 아침에도
아침 8시에 헐레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씻는 둥 마는 둥
뭐가 뭔지도 모르는 옷을 마구 입고
일단 뛰어가서 출근버스와 지하철에 나를 태워 보냈다.
그렇게 학원에 가는 길.
가득하지만 적막이 찬 그 출근 지하철 속에서
나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날 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학원 선생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학원 자격증반의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이
대뜸 자격증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꺼내자
선생님은 대번에 놀라시는 눈치셨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에게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게 좋은 상황이었다.
"사실 수업시간이 좀 힘들었어요."
"나는 뭐가 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데
내 옆에 있는 다른 학생들은 진작에 다 끝내고
다음 진도 미리 하고 있는 거를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갑자기 분위기가 상담이 되었다.
다행히 학원 선생님은 마치 전문 상담 선생님처럼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나에게 필요한 응원과 조언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해주셨다.
“스트레스받으면서 하지 않아도 돼요.”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지금 안 되면 나중에 따면 되죠.”
그 말씀을 들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만든 틀에
날 스스로 가두고 있음을 알았다.
난 이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두 개의 자격증을 다 내 손에 넣어야만 한다고
안 그러면 실패자라고..
나는 나이도 있으니 다른 학생들보다 지금 더 잘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실패자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이런 기준을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난 며칠 후 편의점 사장님과 대화하면서도
한 번 더 이런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업무시간에 이 정도는 끝내고 인수인계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준은
알고 보니 사장님이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기준이었다.
오히려 나는 다음 근무자가 할 일까지 일부 해내고 있었다.
난 어릴 때부터 사실 누가 나에게 간섭하는 게 싫었다.
원체 화를 내거나 불편한 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가정에서도 어른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배워서
사람들에게 티는 잘 안 났겠지만
나는 누가 나에게 간섭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애초에 나에게 의문을 제기할 일을 없애고 싶었다.
누가 봐도 뭐라 할 말 없이 너무 잘했다고 할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결국 나를 방어하고자 했던 내 방어기제가
오히려 나를 꾸준히 공격해서
이렇게까지 나를 더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그쯤부터 일상에서 소소한 연습들이 시작되었다.
뛰지 않고 걸어가서 학원 지각도 해보고
학원 수업 듣다가 힘들면 딴생각도 좀 하고
편의점 근무 인수인계할 때
“이거 제가 못했으니까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내가 날 얼마나 압박하며 살았는지 알았다.
한참 동안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매일같이 한탄했다.
난 역시 안 된다고 생각했던
기나긴 터널의 끝.
그 끝이 이런 식으로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이 글은 위윌 자조모임 정회원 릴라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