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잠을 잘 못 자서 피부가 상하긴 했지만
친한 친구도 생겼고,
살도 빠지고, 근육도 조금 붙었다.
일에 집중도 잘 되고, 성취감에 차있었다.
전 여자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기 전까진.
헤어진 후엔 그 사람의 계정을 검색해서 들어가야 했다.
그날도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검색창에 그 사람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비공개 계정이 풀려있었다.
볼 수 없었던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의 피드를 적나라하게 눈에 담게 되었다.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그 사람이 새 남자가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간관계가 겹치는 친구가 있었기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물어본 것도 있었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땐 화가 났다.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정말 많이 났다.
화가 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복잡하고 짜증 나는 감정이 며칠 동안 지속됐었다.
하지만 전 여자친구의 새 남자 얼굴을 보는 건
말 그대로 새로웠다.
그리고 새 남자가 댓글로 단 하트 이모지와
전 여자친구의 하트 이모지는 더 새로웠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얼굴이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새 남자는 어딘가 나랑 닮아 보였다.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다신 못 찾을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그냥 내가 사라지고 싶었다.
그럼 잃어버린 게 아닌 게 되니까.
그 사람의 스토리엔
새 남자와의 데이트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엔 그 사람 집의 익숙한 테이블.
그 위에 익숙한 아이패드.
내가 좋아했던 맥주 스텔라.
우리가, 아니 그 사람과 내가
좋아했던 군만두.
익숙한 촬영 구도.
테이블 뒤의 벽지.
행복하다는 그 사람의 텍스트까지.
궁금했다.
정말 행복한지.
무슨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는지
나한테도 좀 알려주면
나도 새로운 사랑을 할 텐데.
비참했다.
난 여전히 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그 사람이 행복하니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난 더럽게 이기적이어서 그게 안 된다.
무너졌다.
몸을 질질 끌면서 하루하루를 살았고,
몸은 점점 가벼워져서 직접 걸을 수 있었는데
다시 넘어졌다.
기억이란 건 너무나 잔인해서
아픈 곳을 잘 찾아서 찌른다.
이별을 극복하고 아픔에서 치유된다는 건
기억이 찌르는 부위에 굳은살이 박이는 거다.
완전히 낫는 게 아니다.
근데 웃긴 건 굳은살도 쉽게 연해진다는 것.
실제 몸이랑 달라서 너무도 쉽게 연해진다.
이제 나는 단단해지기 위해 또다시 발악을 하겠지.
언젠간 딱딱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으며
다시 일상생활을 하겠지.
아니 아직은 못한다.
나에게 일상생활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삶이었기에
여전히 일상생활이란 단어는 나에게 어색하다.
언젠간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일상생활을 찾겠지.
내가 이렇게 괴로운 건 그 사람과 헤어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만큼 소중한 다른 사람을 동시에 잃었고,
자책에 빠져 원래의 나를 잃어버렸다.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21년은 나쁜 일과 좋은 일 투성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2022년엔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