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완치되었을 즘의 나는
하루하루가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불면증 없이
며칠을 7-8시간 푹 자니까
온몸과 정신이 너무 가뿐했다.
신체적 불안 증상 없이 마음도 편안해지니까
자신감도 자연스레 조금씩 올랐다.
그러자 문득,
나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 치료한답시고 한동안 쉴 만큼 쉬기도 했고
이제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침 그 시기에 학원을 다닐 기회가 생기면서
오전엔 포토샵 일러스트 학원
오후엔 영상 개인 공부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이런 생활을 한창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간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밤 집에 가고 있었다.
문득,
너무나도 갑자기,
내 안에 들려온 목소리.
아 XX 뭐해? 바보야?
당황스러움을 조금 느꼈지만
뭐 이런 마음은 처음도 아니고,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너무나 익숙했던 터.
이내 다시 진정하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을까
방에 누워서 고민하다 보니 몇 가지가 생각났다.
나이를 많이 먹고서 간 학원
다른 어린 수강생들보다 뒤떨어지고
나만 진도를 못 따라가고
오후 시간엔 점점 게을러지고
공부는커녕 잠만 자고
편의점 물건 정리는 맨날 제시간에 못하고
자체 연장근무를 하고 새벽에 터벅터벅
...
아, 그랬구나..
나는 또다시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너무나 기뻤던 내 우울증의 의학적인 완치가
그 순간부터는
이제 '더 이상의 핑계란 없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우울증으로 힘들었기에,
잠시 동안만 남들보다 못한 줄 알았다.
근데 거기서 ‘우울증’이라는 말을 빼버리니까
그냥 ‘나’라는 사람은 남들보다 못난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너무 우울해졌다.
오랜만에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몰라서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자낙스도
참 오랜만에 떠올랐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 이 글은 위윌 자조모임 정회원 릴라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