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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예담 Dec 28. 2021

전 여자친구의 새 남자는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잠을 잘 못 자서 피부가 상하긴 했지만

친한 친구도 생겼고,

살도 빠지고, 근육도 조금 붙었다.

일에 집중도 잘 되고, 성취감에 차있었다.


전 여자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기 전까진.



헤어진 후엔 그 사람의 계정을 검색해서 들어가야 했다. 

그날도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검색창에 그 사람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비공개 계정이 풀려있었다.

볼 수 없었던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의 피드를 적나라하게 눈에 담게 되었다.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그 사람이 새 남자가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간관계가 겹치는 친구가 있었기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물어본 것도 있었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땐 화가 났다.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정말 많이 났다.

화가 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복잡하고 짜증 나는 감정이 며칠 동안 지속됐었다.


하지만 전 여자친구의 새 남자 얼굴을 보는 건

말 그대로 새로웠다.

그리고 새 남자가 댓글로 단 하트 이모지와 

전 여자친구의 하트 이모지는 더 새로웠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얼굴이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새 남자는 어딘가 나랑 닮아 보였다.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다신 못 찾을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그냥 내가 사라지고 싶었다. 

그럼 잃어버린 게 아닌 게 되니까.


그 사람의 스토리엔 

새 남자와의 데이트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엔 그 사람 집의 익숙한 테이블.

그 위에 익숙한 아이패드.

내가 좋아했던 맥주 스텔라. 

우리가, 아니 그 사람과 내가 

좋아했던 군만두.

익숙한 촬영 구도.

테이블 뒤의 벽지.

행복하다는 그 사람의 텍스트까지.


궁금했다.

정말 행복한지.

무슨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는지

나한테도 좀 알려주면

나도 새로운 사랑을 할 텐데.


비참했다.

난 여전히 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그 사람이 행복하니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난 더럽게 이기적이어서 그게 안 된다.


무너졌다.

몸을 질질 끌면서 하루하루를 살았고,

몸은 점점 가벼워져서 직접 걸을 수 있었는데

다시 넘어졌다.


기억이란 건 너무나 잔인해서 

아픈 곳을 잘 찾아서 찌른다.


이별을 극복하고 아픔에서 치유된다는 건

기억이 찌르는 부위에 굳은살이 박이는 거다.

완전히 낫는 게 아니다.

근데 웃긴 건 굳은살도 쉽게 연해진다는 것.

실제 몸이랑 달라서 너무도 쉽게 연해진다.


이제 나는 단단해지기 위해 또다시 발악을 하겠지.

언젠간 딱딱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으며

다시 일상생활을 하겠지.


아니 아직은 못한다.

나에게 일상생활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삶이었기에

여전히 일상생활이란 단어는 나에게 어색하다.


언젠간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일상생활을 찾겠지.

 


내가 이렇게 괴로운 건 그 사람과 헤어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만큼 소중한 다른 사람을 동시에 잃었고,

자책에 빠져 원래의 나를 잃어버렸다.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21년은 나쁜 일과 좋은 일 투성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2022년엔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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