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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팬하우어 May 14. 2024

#14. 이석원, <보통의 존재> 리뷰

추억과 일상 돌아보기




"작가님의 공개일기랄까. 이렇게 대중 앞에 내놓아도 될까 싶은 내밀한 이야기와 생각까지 솔직하게 담은 책."


  일기, 나에게 일기란 몰아서 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방학 숙제로 일기를 쓰는 게 있었는데, 하기 싫어서 미루다가 엉엉 울면서 방학 끝자락에 밤을 새면서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는 정말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의 방학 숙제를 하던 가족들처럼, 내 숙제를 하기 위해 사촌누나들은 내 일기를 나눠서 써주고, 엄마는 종이접기를 해주고, 나는 독서록을 정리하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나에게 일기란 그저 해치워야 할 하나의 과제에 지나지 않았다. 일기와 더불어 글쓰기 자체도 너무 싫어했다. 생각하기도 힘들고, 그 생각을 정리해서 쓴다는 것도 너무 어려웠고, 남들에게 내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도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독서하는 재미에 고단한 일상생활을 버텨가고, 글을 짧게라도 이렇게 쓰는 재미에 머리도 조금씩 굴려보고 창작 욕구를 채워가고 있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흥미 있게 글쓰기와 읽기를 했다면, 지금쯤 작가를 하고 있으려나? ㅎㅎㅎ


  아무튼 작가님은 자신의 내밀한 일상생활을 일기의 형태로 작성해 책으로 내놓으셨다. 정말 내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너무 사생활을 공개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 속에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적은 일기가 타인에게 깨달음과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p.31

"사생활의 주요 거점은 아무래도 집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집이 아무리 남루하고 누추하다 해도 피로에 지쳐 집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안도감과 편안함은 언제나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내 집은 정말 최고다. 편하기 때문이다."

  -집돌이로서 매우 공감하는 말이었다. 집에서는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휴식할 수 있다. 나는 취업준비생 시절 때 창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던 고시원 생활을 1년 넘게 한 적이 있다. 침대 하나에 책상, 작은 냉장고 하나, 그리고 바로 앞에 딸려 있던 화장실이 있던 아주 작은 방. 몸집이 작은 내가 서있어도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그렇게 작고 초라한, 힘든 날이면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초라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곳에서만큼은 하루 동안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지우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지금도 취업은 했지만, 바닷가의 작은 관사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어제까지는 수도관이 동파되어 다른 선생님 관사에 가서 씻게 해달라고 굽신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열악하지만, 작은 방안에 있는 침대에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서 은은한 스탠드 조명을 켜고 누워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일상이 행복하다. 집은 최고다. 정말 편하다.



※p.215

"어려서는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그저 한동네에 살고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존재들이 커가면서 본격적인 자신만의 관계망을 맺어감에 따라 순수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고 여러가지 세속적인 고려와 취향의 문제 등을 따져가며 친구를 만들게 됩니다."

  -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도 이 책에서 서술한 것처럼 동네친구들과 이해타산 없이 하루종일 놀았다. 부모님들끼리 친해서 하루는 우리집, 다른 날은 누구네 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엄마들은 호프집에 우리들은 집에 남아서 각종 게임을 하고 놀았다. 부모님의 직업은 상관 없었다. 2023년 20대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내 직업과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나랑 소득 수준이 비슷해 비슷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어울린다.(내 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라, 낮아서 나랑 같은 취향을 견뎌줄 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뜻) 같은 동네에 살고 나이대만 비슷하면 같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고 거리낌 없이 서로의 집에 있는 장난감을 나눠 가지고 놀고, 맛있는 음식이 생겼을 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배달도 가는 그런 순수했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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