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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재앙, 넌 나의 축복

by 휴지기

여름휴가라고 남편이 수요일부터 집에 있다. 아니다, 집에 있는 건 아니다. 경기도에 올라가지 않을 뿐이지 무슨 일들이 그리 많은지 아침에 나가서 늦은 밤에 들어온다. 휴가라고는 하지만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다른 일을 할 뿐이다.


그저께 밤 10시가 넘어 들어온 남편이 나에게 십 분만 놀아달라고 졸랐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던 아들은, 아빠가 왔으니 자신만의 자유를 누려도 되겠느냐며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딱 십 분의 시간을 준다고 했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유튜브를 시청했고 남편은 라면을 끓였다.


우리는 이혼숙려캠프를 보며 소주를 한 병 마셨다. 안주는 남편이 끓인 라면이었다. 이혼숙려캠프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말했다.


"남편이 잘못했네. 무조건 남편이 잘못한 거야. 나도 잘못이지. 내가 능력이 있었어봐, 자기가 이렇게 기센 여자가 되어 있었을까? 자기가 맨날 나한테 욕하고 뭐라고 해도 나는 항상 가만히 있잖아. 물론 기분은 나쁘지. 욕먹는데. 근데 이건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남편의 지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에 나는 소리 내어 웃었고, '오빠는 참 자기 객관화는 잘하네'하면서 소주를 마시고 라면을 먹었다. 라면은 조금 불어있었다. 남편이 또 말했다.


"자기 알지? 나 죽으려고 바다를 몇 번이나 갔었던 거. 나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내가 죽으면 자기랑 애가 더 고생할 거 같아서, 그래서 차마 못 죽겠더라."


나는 잠시 웃고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의 저 말에 내가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죽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애초에 그런 일을, 바다에 빠져 죽을 만큼 힘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은. 자기 잘못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자기 잘못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되었든, 남편이 자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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