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토요일 오전, 대학가 앞 스타벅스 2층에 앉아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맞은편 편의점 앞에 새하얀 G80이 서있었다. 누구 차인지는 모르지만 대학가이니 젊은 사람의 차일 것 같다 추측하며, 차 주인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차 주인과 남편의 삶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저 차의 주인은 분명 남편보다 어리고 남편보다 편하게 살았으며 앞으로도 남편보다 훨씬 윤택하게 살 것이다 생각한 순간 차 주인이 편의점에서 나왔다.
역시 젊은 남자였는데 다리를 조금 다친 것 같았다. 오른쪽 다리에 지지대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운전석으로 들어갔으니 다쳤어도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남편에 대해 쓴 글의 개수를 헤아려보니 80개가 훌쩍 넘었다. 나의 글들은 나의 하소연이었다. 남들에게 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활자로나마 풀어내야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남편을 원망하고 안쓰러워했으며, 남편으로 인해 어둠 속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연민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진흙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남편이 불쌍했지만, 남편과 손을 놓지 못하며 같이 진흙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내가 더 불쌍했다. 남편에게 항상 말했던 것처럼 내가 한 유일한 실수는 남편을 선택하여 결혼한 것, 딱 그거 하나였다고 생각했다.
지금 거의 한 달째 남편과 대화하지 않는다.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칫솔꽂이에 새 칫솔을 갖다 두면서 남편의 칫솔을 함께 챙겨 넣을 때, 남편의 속옷을 개서 남편 속옷 서랍에 넣을 때, 남편이 더럽게 쓴 변기를 닦을 때 말고는 남편과 가족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는,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구질구질한 번복의 순간들을, 후회와 고독의 시간들을 지나서야 드디어, 남편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편에 대한 글도 이것으로 마치려고 한다.
내가 글을 끝내게 되는 순간은 남편과 깔끔하게 이혼하는 순간, 또는 오랜 소망처럼 남편이 결국은 잘되어 해피엔딩을 맞아하게 되는 순간일 줄 알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여전히 빚으로 허덕이고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연체된 빚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글을 끝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끝내야 할 때인 것 같다. 남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며 남편을 더는 안타까워하고 싶지 않다. 착한데 박복하다고, 그래서 사람이 참 안됐다고 마음 아파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읽어준, 한 마디씩 댓글을 남겨준, 기꺼이 라이킷을 눌러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보낸다. 독자님들의 관심 덕분에 지금껏 쓸 수 있었고,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버텨 볼 생각이다. 남편을 생각하지 않고, 남편을 연민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마이 허즈번드를, 함께 불쌍해하며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앞으로 독자님들의 삶에, 또한 나의 삶에는 글로 풀어내지 않아도 쉽게 휘발될 수 있는 작은 고통들만 존재하길.
그리하여 짧게 아프고 오래 평안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