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최헌, 우순실, 에픽하이와 윤하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집에 있는 우산을 챙겨나간다.
이때 성한 것들 중에서 간혹 우산살이 휘어져서 사용하기가 애매한 것들을 걸러내야 한다.
그런데 외출 중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면 좀 난감하다.
옛날에는 비를 맞으며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오~" 김현식의 노래를 부르는 낭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편의점이나 다이소에 가서 일회용 우산을 산다.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 옛날 일회용 우산은 대나무 우산살에 얇은 파란 비닐로 만든 것이었다.
정말 1회용이었다. 두 번은 어렵단 얘기.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 재수 없이 비바람을 만나면 휙 하고 날아가거나 휘어져 제 형태를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 손으로 대나무 살을 힘겹게 붙잡아도 뒤집히는 얇은 비닐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차라리 안 쓰고 말지!
그런데 요즘 일회용은 미들급은 되는 것 같다. 튼실한 뼈대에 비닐도 더 두꺼워서 10번은 써도 충분해 보인다.
문제가 있다. 이런 우산이 집에 넘쳐난다.
찢어지지 않아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쉽게 우산을 사고 고장 난 우산을 고치는 수고도 전보다 덜한 시대여서 그런가 보다.
일회용이든 튼튼한 우산이든 모든 우산에는 우산 속 공간이 있다.
그러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산 속은 늘 고독과 사랑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고독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곧 누군가 그 공간에 우연을 가장해서 들어온다.
이때 우산을 쓴 주인공은 잠깐 고민을 하지만 곧 자신의 공간을 내어 준다.
공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곧 마음도 내어준다는 것이리라!
우연이 필연이 되고 또 인연이 되어 우산 속 공간은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 된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인가?
현실은 우산이 넘쳐 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공간과 마음을 나누어 주는 넉넉함이 부족한 우리들의 마음.
우산 속 공간처럼
기꺼이 자신의 공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름답다.
그 사람이 그립다. 보고 싶다. 그리고 만나고 싶다.
우산하면 떠 오르는 노래 세 곡이 있다.
우선 1978년 발표한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이 떠 오른다. 1978년이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데도 이 노래의 가사가 기억이 나고 그 이후에도 흥얼거렸던 기억이 나니 꽤나 인기 있었던 노래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hjNps02aJkY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 흐름 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 봐야지
슬픔도 그리움도 나혼자서 잊어야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잊어지겠지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두 번째 노래는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이다. 1982년 한양대 작곡과 재학 중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동상을 받은 곡이다. 역시 이별의 슬픔과 회한이 담긴 노래인데, 멜로디가 참 아름답다.
https://www.youtube.com/watch?v=6qpghVMx87E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이젠 지나 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같지만
하얀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라랄 라라라랄 랄랄라랄라 랄라 라라라랄라
잊혀져 간 그 날의 기억들은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내겐 우산이 되리라
~~~
마지막으로, 2008년 세상에 나온 에픽하이와 윤하의 '우산'이 있다. 앞의 두 노래보다 많이 최근? 노래지만 윤하의 청량한 목소리와 이별의 슬픔이 대비되는 명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IPtyAKxlRs
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I cry...
텅 빈 방엔 시계소리 지붕과 입 맞추는 비의 소리
오랜만에 입은 코트 주머니 속에 반지
손 틈새 스며드는 memory.
며칠 만에 나서보는 밤의 서울 고인 빗물은 작은 거울
그 속에 난 비틀거리며 아프니까
그대 없이 난 한쪽 다리가 짧은 의자
둘이서 쓰긴 작았던 우산
차가운 세상에 섬 같았던 우산
이젠 너무 크고 어색해
그대 곁에 늘 젖어있던 왼쪽 어깨
기억의 무게에 고개 숙여보니
버려진 듯 풀어진 내 신발끈
하나 곁엔 오직 비와 바람 (없다)
잠시라도 우산을 들어줄 사람 and I cry
**
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I cry.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 alone in the rain **
Alone in the rain rain rain
Nothing but pain pain pain
하늘의 눈물이 고인 땅
별을 감춘 구름에 보인 달
골목길 홀로 외로운 구두 소리
메아리에 돌아보며 가슴 졸인 맘
나를 꼭 닮은 그림자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었던 우리가
이제야 둘인가? 대답을 그리다
머릿속 그림과 대답을 흐린다
내 눈엔 너무 컸던 우산
날 울린 세상을 향해 접던 우산
영원의 약속에 활짝 폈던 우산
이제는 찢긴 우산 아래 두 맘
돌아봐도 이제는 없겠죠?
두 손은 주머니 속 깊게 넣겠죠
이리저리 자유롭게 걸어도
두 볼은 가랑비도 쉽게 젖겠죠?
** repeat
난 열어놨어 내 맘의 문을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그대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난 열어놨어 내 맘의 문을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그대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나의 곁에 그대가 없기에
내 창밖에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그대
I cry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없는 반쪽의 세상
그댄 나 없이는 안 돼요
forever in the rain
세 노래는 모두 우산과 이별이 연결되어 있다. 아무래도 가요에는 대중적인 정서가 많이 담겨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