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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하루 Apr 09. 2023

인생 두 번 살기

서로의 창문이 되어주는 너와 나

내가 33살이 되던 해 나의 딸이 태어났다.


33년이면, 세상을 알만큼 알게 된 나이, 이제 특별히 새로울 건 없는 나이이다. 음식도, 장소도, 사람도 다양하게 겪어봤으니 새로움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세상이 익숙해지고 권태로워질 때쯤 작고 보드라운 나의 딸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딸은 매순간마다 세상의 새로움에 놀라고 긴장하고 환희했다. 태어나서 점점 찾아가는 시력을 통해 세상의 빛과 어둠, 형형색색의 색깔, 엄마,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의 얼굴을 만나게 되었고, 딸에게는 어떠한 선입견도, 호불호도, 경계도 없었다. 모든 것이 딸에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흡수할 뿐이었다. 딸에게는 모빌이, 나의 얼굴과 행동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나도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아이 앞에 서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나는 인식하지도 못했던 저 멀리 들리는 비닐봉투 스치는 소리 내 딸 신기하게도 두렵게도 만들었으며, 흔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내 딸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온 신경을 쏟도록 만들었다.


이제 4살이 된 아이는 딸기잼을 바른 식빵을 한 입 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나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 빵이 아이에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천상의 맛인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통해 나는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되고, 33년의 시간에 걸쳐 마비되어 무감각해졌던 내 모든 감각들이 다시 깨어나는 듯하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모양이, 소리가, 맛이 있었구나를 다시 깨닫고 느낀다.


오은영 박사님께서 부모는 아이의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를 가진 아이는 크고 튼튼한 창문으로 안정감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딸 아이를 통해서 인생 2회차를 살아가게 된 나는 반대로 내 딸 아이로부터 세상을 다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창문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비단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다시 새롭게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먹먹하면서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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