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달동안 평일에는 아이 얼굴을 잘 보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를 잠깐 중단하거나 미룰 수는 없는 터. 중간중간 나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아이를 챙기는 '행위' 자체는 완성도를 조금 낮추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을 할 수 있어도, 엄마라는 '존재'는 어린 아이에게 절대적이며 다른 사람이 대신 되어줄 수 없다. 두돌반도 안 된 아이는 아직 엄마가 많이 고팠고,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하는 탓인지 더 엄마 껌딱지가 되어갔으며, 짜증이나 예민함이 늘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게 맞나', '우선순위를 놓치고 사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함으로써 아이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과 관심과 스킨십을 충분히 충족시켜줌으로써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 때도 많다.
아이가 생긴 지금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회비용을 가진 선택이다. 일을 하는 시간 만큼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일하는 시간이 엄청 값비싼 시간으로 느껴진다.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역설적이게도 아이를 낳고나서 오히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가', '내 꿈은 무엇인가', '일이 그 꿈의 실현을 도와주고 있는가', '나는 일에서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가'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옷, 더 좋은 환경을 줄 수 있는 경제적인 이득 자체도 중요하지만,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과 맞바꾼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아이에게만 엄마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아이 역시 엄마에게 엄청난 에너지원이 된다. 인생과 시간을 귀하게 여길 수 있게 하고 더 알뜰살뜰 열심히 살도록 하는 것이다.
한참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나 고민할 때, 내가 존경하는 스승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딸이 너와 같은 상황이면,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고 싶어?" 이 질문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다. 내 딸에게 해줄 대답은 고민 없이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너의 꿈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좇으라고 얘기해줄 것이다. 내 딸에게는 그렇게 쉽게 얘기할거면서, 나는 왜 그렇게 방황했던 걸까. 아마 지금 현재의 내가 지치기도 했고 어린 딸과의 시간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나에게 소중한 딸에게 해줄 대답을 통해, 나는 내가 인식했던 것보다 꿈과 자아실현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내 딸은 나와 다르게 다른 가치를 더 중요시 할 수 있겠지만, 내 답변을 통해 역으로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