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립 Nov 18. 2023

청각이 아니라 촉각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개업 후 반복되고 지쳐가는 일상에서 생존을 위해 혹은 취미 생활을 위해 필라테스와 성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필타테스는 오래 앉아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보니 등과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시작을 한 것이 어느새 3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클래식 필라테스로 옮겨서 초급에서 중급과정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음악을 좋아하기고 하고,   (어쩌다 보니) 대화로 먹고사는 일을 하게 되다 보니 오래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몇 달씩 보컬이나 성악레슨을 받은 적이 있어서 금년부터 성악을 다시 이어서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정말 적성에 안 맞다고 느낄 정도로 진도가 더디고 어렵습니다.

도중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고민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해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평생 취미로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못 할만한 활동이고,  그래서 더 노력이 필요한 훈련이자 취미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 자신이 워낙 몸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운동은 거의 안 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전 다른 글에서 남긴 것처럼 체육시간에 '공 던지기, 뜀틀..' 같이 톤 조절이 필요한 운동에서 스스로 장애라고 생각할 정도로 실수를 하거나 못 해서 창피하게 느낀 경험들도 운동을 피한 이유입니다.

점심시간 짬을 이용해서 어울려 놀 수 있는 운동들, 고등학교 때는 농구, 대학 때는 팩차기, 군의관 때는 탁구..  모든 종목에서 저는 공인된 구멍이었습니다.


군의관으로 전역해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던 날의 인상 깊은 경험도 있습니다.

당시 20대의 어린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모형 수류탄을 있는 힘껏 던졌지만 땅바닥에 내리꽂았습니다. 

뒤에서 대단하다며 소곤거립니다.

'와 저분 세다. 다시 주우러 가기 귀찮다고 자기 앞에다가 던졌어..'  

다시 주워와야 하는 수고를 안 하려는 짬 많은 선임이라고 감탄한 건지, 진심 못 던진다고 놀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태연한 척하며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독서, 음악, 그림, 역사, 드라마와 같은 서사나 볼거리가 있어서 생갹하고 곱씹을 수 있는 취미만을 즐겼습니다.


그게 전문의가 되고 나서야 ADHD가 감각과 운동을 섬세하게 조작하는데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제 과거의 창피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지시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몸으로 느껴야 하는 훈련인 필라테스와 성악은 다른 배움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요.  

이런 근육들을 조절해야 한다고??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필라테스든, 성악에서든 선생님들께서 한결같이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십니다. 서로 미리 저에 대해 문제 사례 회의를 했나 할 정도로 말이죠.


너무 생각해서 하려고 하지 마세요.

단순하게 하세요.

느끼려고 하세요.

힘을 쥐어짜지 말고 놓아주세요.

(힘 혹은 소리 혹은 호흡을) 붙들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세요.


그렇게 똑같은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듣던 어느 날, 성악 선생님께서


소리 내는 것을 배우시는 중이지만 본질은 청각이 아니라 촉각입니다.
소리를 듣고 조절하려고 하지 말고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세요.

라는 말을 듣고 머리에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아............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그 순간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을 몸과 연결하는 것!  


그것이 내가 못 하는 것이라서 안 하거나 피해왔던 것들이구나!

그렇기에 내게 가장 필요한 연습이구나!라는 현타가 왔습니다.


제가 잘하는 생각 위주로 사는 삶도(그래서 강박과 반추로 고생) 톤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고,
취약한 몸의 감각과 근육의 인식과 조절이 취약한 것도 톤 조절이 안 되는 것이구나..


그 톤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 ADHD가 있는 사람들의 취약점이 되어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도록 하는 원인이고 그렇기에 성악이나 필라테스가 제게 더욱  필요한 것들이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부터는 진도가 더디고 잘 못하더라도 조급해지지 않으려 하면서 더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취미에 정착한 것이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 쪽을 찾아간 이유가 있었음이 이해가 됩니다.


열심히 익혀서 ADHD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도 증상 극복의 관점으로 안내드리려는 동기부여를 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 ADHD가 있으면 치매도 온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