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보낸 시간의 단편
서울 본사로 출근한 첫날, 안주머니에서 꺼낸 건 작은 연필 받침이었습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연필 받침은 위에서 바라보면 볼 수 없는 네 개의 작은 다리가 있습니다. 그 위에 펜 두어 개를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데 나무의 표면이 살아 있어 책상 위에 두고 보면,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고성에서의 모든 업무 일정을 마치고 서울 본사 복귀를 앞둔 주말, 아무런 준비 없이 오피스텔을 나섰습니다. 마치 다시 돌아올 사람인 것 마냥 가방 하나 달랑 챙긴 채, 잠시 주말 동안 본가에 다녀오는 것처럼 집을 나섰습니다. 열쇠를 잠그려고 집 안을 다시 살펴보니 모든 생활 짐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서울에 다녀올게, 잘 있어' 집에게 인사를 건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주변에는 이미 말을 해둔 상태였습니다. '속초 짐을 챙길 겨를이 없었어요, 일주일 간 서울 생활을 하고 속초로 돌아와서 이삿짐을 모두 정리할게요'. 하지만 사실 제 속마음은 이곳을 떠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에둘러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 저는 이곳을 떠날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왜 그렇게 고성을 떠나기 싫었는지 찬찬히 마음을 돌아봤습니다. 돌아보지 않는다면 영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난다 한들 계속 그리워하며 살아가리라 짐작했지 때문이지요. 살아가는 동안 이사를 한 적도 여러 번, 일터가 변한 것도 여러 번인데 왜 이번만큼은 그리도 이곳을 떠나기 싫은지, 저도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여럿이었습니다.
마음이 이토록 애타는 것은 단순히 강원도 고성이라는 지역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고, 여기서 어울리는 멤버들과의 인연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우뚝 서있는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그것은 내게 주어진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모든 관계의 굴레와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공간, 마음껏 발이 이끄는 대로 걷고 뛰어놀 수 있는 자유. 나의 시간을 스스로 진두지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결정권이 고성에서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몹시도 나르시시스트처럼 스스로를 사랑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는 의사 결정권을 사랑했고, 광활한 바다와 높은 하늘과 우뚝 솟은 소나무를 관찰하며 나를 둘러싼 모든 지역과 교감하며 살아갈 자유를 사랑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며 드넓은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는 일을 즐겼고, 그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감상에 젖어들길 기뻐했습니다. 산과 바다를 달리며 가슴을 활짝 열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땀과 바닷물로 온몸을 적시며 살아갈 때, 자유로 빛나는 엄청난 에너지가 내 안에서 희망처럼 샘솟았습니다. 나는 그 기분 좋은 자유에 도취되어, 이곳을 떠난다면 내게서 사라질 그 자유를 강한 손으로 움켜쥐고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 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김경주, 몽상가>
일주일이 흘러, 이제 정말 고성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짐을 싸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작은 방 구석구석 무슨 짐이 그리도 많았는지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몇 박스가 금세 가득 찼어요. 박스 하나하나에 책과 생활 용품을 넣고, 귀중품에는 '소중'이라고 글자도 적어 봅니다. 마음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지요. 떠남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번 떠남을 잠시 맺음이라고 적어두고 갑니다. 다시 돌아올 날을 아는 사람처럼 잠시 맺었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이 땅에 이야기하고 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