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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Mar 26. 2024

같이 사는 삶의 즐거움

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그러니까 나그네방은 어쩌다 생겼습니다. 어쩌다 보니 두 친구가 만났고, 어쩌다 보니 우리는 닮은 점이 있었고, 어쩌다 같이 살기로 해서, 어쩌다 거실 바닥에 앉아 남은 방 하나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보니, 어찌어찌 저 방은 우리가 쓰지 말고 남에게 주자 라는 결정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첫 나그네는 친척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 집에서부터 먼 거리를 통학해야 했던 그녀는 체력이 조금씩 너덜너덜 해졌고. 어느샌가 밥도 거르고 출퇴근길 지하철에 실려 영혼이 사라져 가고 있었지요. 새내기의 풋풋함은 어디 가고, 늘 검은 롱패딩에 돌돌 말려 1호선을 탔는데. 문득 이렇게 살다가는 건강도 잃고 젊음도 잃고 시간을 낭비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아니 그 이유가 아니었나) 아버지랑 싸워서 나왔던가. 아무튼 어떤 그녀만의 이유로 나그네방에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맞이하게 된 첫 나그네를 위해 분주히 방을 꾸몄습니다. 본가에 있던 앉은뱅이 책상을 차에 실어 오고, 인터넷에서 후기 좋은 원목 행거를 하나 사서 설치하고, 친구 집에 빌려 주었던 소파베드를 짊어지고 돌아와 사람이 살만한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맞이한 나그네는 제법 방에 대한 기대가 없었는지, 우리가 제공해 드린 방에 큰 불평 없이 머물러 주었습니다. 역시나 함께 사는 일은 참 즐거웠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을 셰어 한다고 해서 함께 산다고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문을 닫아 버리는 순간 서로를 볼 수 없으니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같이 산다는 건 서로를 침투할 기회를 열어 놓을 때, 즉 방문을 열 우정과 신뢰를 나눌 때 성립하는 일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하빈하우스에 살고 나그네방을 하면서, 방문을 열면 언제나 말 걸 누군가가 집안에 있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왜 그렇게 인생이란 웃긴 지 시시콜콜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첫 나그네가 표정이 좋지 않은 채로 귀가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와 다툰 뒤 마음이 크게 실족한 상황이었는데, 방 안에 틀어 박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울고만 있길래, 밥 먹을래?라고 물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슬플 때 밥도 안 챙겨 먹으면 더 슬퍼지는 나는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 줄 방법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말았지요.


오랜 시간 그녀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 늦게 귀가한 친구에게 '야, 나그네 울어.. 어떻게 도와주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의 친구는 나그네방으로 쿰척쿰척 걸어가서 광광 노크를 했습니다. '똑 똑 똑. 어이 나그네님 울어요? 밥도 안 먹고 울고 있어요?'라고 말이지요. 질문이 이상했는지 나그네는 여전히 묵묵부답 입니다. 그러자 '똑 똑 똑, 나그네님 들어가도 돼요? 문 열어주시면 들어가고, 안 열어주시면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던 나그네가 스르륵 방문을 열어 주더군요. 그녀는 소파베드에 누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걱정되는데 약간 웃기고, 슬픈데 많이 웃겼습니다. 그래서.. 웃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가 갑자기 웃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아 내가 지금 웃긴가? 생각하며 당황한 것 같습니다. '왜 울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줄까요, 같이 나갈래요? 산책할까요?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더 힘들어져요. 우리랑 나가요.'


몇 시간을 방 안에서 울던 그녀를 끌고 나와 우리들의 화랑빌라를 지나 옆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슬픔에 무거워진 몸을 털어보자며 국민체조 스트레칭을 하고, 구석진 어둠 속에서 노래를 틀고 춤도 췄습니다. 팔을 쭉쭉 펼치고 허리도 엉덩이도 가슴도 털고 나니 슬픔도 같이 털렸는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웃는 나그네를 보며 나와 친구는 어떻게 하면 저 여자를 더 웃길 수 있을까 배틀을 뜨듯 황당한 춤사위를 늘어놓았고, 그녀는 마침내 깔깔깔 웃기에 이릅니다.


'아 열심히 놀았더니 덥다.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진 덕분에 이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 입맛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왔을 때 나그네는 우리에게 고맙다며 인사했습니다. '이런 위로는 처음인데 나쁘지 않네요'.


저는 나그네방을 하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목격하고 친구들의 좋은 점을 많이 배웠습니다. 삶은 저마다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더군요. 누구 하나 사연 없는 나그네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모두의 슬픔을 견디는 방식과 이겨내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아픈 친구가 있으면 세심한 언어로 정성 들여 마음을 위로하고, 밥을 먹이고 시간을 들이는 편인데요. 제 친구는 그 사람이 웃을 때까지 농담을 걸고 찔러도 보고 귀찮게도 하며 그 고통의 순간에서 한 사람을 훅 건져 올립니다. 만약 제가 나그네방을 하지 않았다면 다양한 슬픔의 존재와 위로의 방식을 모른 채 내 방식으로만 살아가고 있었겠지요. 나그네방은 새로운 사람을 맞아 들이게 했고, 새로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나의 그릇은 자연히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그네방을 운영하며 후회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관계적으로 힘든 날에도 나그네방을 탓한 적은 없습니다. 나그네방은 그 자체로 내게 선물이었으니까요. 나그네방을 통해 배운 함께 사는 삶, 함께 사는 일은 역시나 흥미롭고 좋은 일입니다. 혼자 사는 삶에 편안함이라는 유익이 있다면 같이 사는 일은 더 장기적으로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스킬을 배우게 합니다. 같이 살아 보세요. 같이 살면 참 웃기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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