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아직 대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대출을 받기 위한 소득 심사와 자산 심사가 남았고, 이 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여럿이기 때문에 노트북 한편에 정부 포털 사이트가 항시 켜져 있지요. 처음 세 번의 대출 신청을 거절받고 나자 기운이 빠지더군요. 왜 안 되지? 그러나 거절 사유를 정확히 확인하고, 내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고 나자 피곤함보다는 차분히 절차를 밟아 나가면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하나 둘 해내면 집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 과정은 조금 더디고 어렵지만 소중한 것일수록 차근차근해야 하는 법이니까. 마음의 번민을 가라앉히고 책상에 앉자.> 여러 번의 인증 절차를 거쳐 서류를 다운로드하고, 결제하고, 업로드하고, 이의 신청을 하고 그렇게 대출 성공의 길로 다가가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나그네방 활동에 대해 전해 들은 사단법인 점프에서 나그네방 운영에 대한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듣고자 찾아오신 일이에요. 점프는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 기회의 허들을 낮추는, 교육 기회를 확장하는 사업을 지난 13년간 실행해 왔어요. 그중에서 '너를 응원해'라는 사업은 청년들에게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거나, 청년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주거 지원 사업을 하는데. 특별히 주거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절차나 필요한 점을 묻기 위해 나그네방을 찾아 주셨어요. 점프와 함께 나눈 대화에서는 여태껏 글로 남기지 못했던 나그네방만의 문화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오늘 소개해 보려고 해요.
나그네방은 갈등을 환영합니다
바닷가 항구에 가면 선박을 항구에 정착시키기 위해 단단히 밧줄로 묶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밧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세 겹줄로 꼬아 거대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모습입니다. 갈등은 꼬임입니다. 꼬임은 단단함을 상징해요. 갈등이 발생했다는 건 당신과 내가 꼬이고 있다는 증거, 드디어 단순히 공간을공유하는 걸 넘어 서로의 생활로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불평이 나오고 불편해지겠죠. 내 고유성이 침해당하는 느낌도 들고, 너와 나의 다름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몇 주 버티다 보면 쟤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맘때쯤 소통해야 해요. 나 더 이상 못 살겠어 나갈래,라는 결단을 마음속으로 혼자 내리기 전에 거실 테이블에 앉아 무엇이 힘들고 불편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갈등이 있어도 우리는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갈등을 겪는 당사자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 서로를 마주할 때 필요한 건 신뢰입니다. 물론 나는 너의 행동이나 말이나 태도나 아우라 등 여러 가지로 화가 났고 마음이 상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대화를 하기에 앞서 서로를 의도적으로 상처 주려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상대에 대한 실낱같은 존중과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A가 한 행동을 내가 A+, A-로 해석해서 문제가 아닌 일을 문제로 키우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다른 언어를 계속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풀어 설명해 줄 인내심과 이해력을 갖는 것. 대화의 테이블을 누구 하나 먼저 뜨지 않고, 상처를 받아 토라지거나, 말을 오해하고 곡해한 채로 귀를 막거나, '됐어 그냥 그만하자'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인내심과 이해력을 옆구리에 끼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같이 살기 힘들면 나가서 살면 되는데 왜 굳이 갈등을 환영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갈등으로 빚어 여러 갈래로 꼬은 단단한 밧줄이 지켜주는 게 결국 이 집에 사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갈등을 해결해서 보호받는 건 언젠가 바다로 다시 돌아갈 나그네들과 저이니까요. 나그네방 안에 살면서 나와 다른 배경의 사람을 알아가고, 그의 생활상이 나에게 뭍고 그러면서 갈등을 겪고, 갈등 속에서 서로를 깨뜨리면서 내 부족함이 무엇인지, 나의 연약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나는 꽤나 인격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뿐인 사람일 수 있고. 의식의 수준이 꽤나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의식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행동을 보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빚어진 갈등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걸, 여러 명의 나그네와 살아가며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나의 성격과 못난 인성을 견뎌주는 이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나그네방에서는 갈등을 환영합니다. 꼬임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꼬여서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나그네방은 늘 우리에게 삶으로 가르칩니다. 집안에 새겨진 하우스 룰은 없지만, 우리 안에 흐르는 어떤 문화가 있습니다. 그 문화가 이방인들로 만나 나그네방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 주고 있어요. 함께 살아가는 일은 역시나 어렵지만 의미 있고, 우리는 나그네방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는 나그네방만의 문화와 이야기를 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