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어제 나그네와 같이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될 일은 굳이 그렇게 긴장하고 불안해할 필요 없어요. 순리대로 잘 진행될 거야.> 나그네의 독립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든 건 부동산 계약 당일 그녀의 어머니가 보내온 꾸러미 때문이었습니다. 경기도 끝자락에서 서울까지, 딸의 집 계약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아버지의 손에는 두 손 가득 짐이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계약을 마치고 부동산을 떠나기 직전, 아버지는 드디어 두 손 가득 무겁게 들고 온 꾸러미를 부동산 사장님에게 넘기며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저희 집사람이 우리 아이 계약 잘 부탁한다며 챙겨 주었어요. 여기 여주 말린 것, 오이고추, 밭에서 막 딴 상추, 아주 건강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꾸러미 안에는 어머니가 직접 밭에서 기르신 작물이 들어 있었다고 해요. 직접 딸의 독립을 챙기러 오시지는 못했지만,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꾸러미에 담겨 서울에 도착한 것입니다.
<엄마는 딸처럼 집을 구해 본 적이 없어서 계약이나 대출에 대해서 도움줄 수 없지만, 마음으로 늘 너의 앞길을 빛으로 비추고 있어> 꾸러미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생각해 봅니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는 나그네와 그러니 엄마에게 잘하라며 애써 올라오는 눈물을 참는 제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방을 구하러 다닌 나그네의 발품과 나그네방의 노력 이전에 자신의 딸이 가장 안전하기를 바라온 어머니의 마음이 그녀의 자립을 도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그네를 독립시킵니다.
나그네방을 운영하면서 여러 사람을 독립시켰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때가 되어 이 집을 떠날 때마다 부동산을 같이 알아보고, 발품을 팔고, 이사를 도왔지요. 사람들은 때가 되어 왔다가 또 다른 때를 맞이하여 떠났습니다. 그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지난 1년 간 머물렀던 나그네가 독립할 집을 계약하고 날, 퇴근하고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그네는 말했습니다. 집을 계약하고 왔다고 말이지요.
"계약 잘하고 왔어요?"
"네, 저 너무 떨렸어요"
나그네방이 다음 공간으로 이사를 준비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자신의 거처를 찾아 한 달 전부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성북구와 마포구 사이의 일대를 돌며 집을 알아보았고, 밤마다 거실에서 어느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매물을 둘러보고, 대출을 상담하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중 몇 번의 괜찮은 매물을 놓치며 초조함이 쌓였고, 이사 갈 집을 찾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고민이 깊어질 때쯤 운이 좋게도 좋은 집을 발견합니다.
부동산 블로그에 올라온 매물이 한눈에 보아도 좋아서 그녀가 바로 가계약금을 넣은 것이죠. 어떤 확신이 그녀를 이끌었을까요. 다행히 그녀가 계약한 집은 참 살기 좋은 동네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서울의 중심인 남산이 한눈에 보이고, 처음 독립한 이에게 필요한 풀옵션 원룸에 가격도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죠. 순식간에 계약서도 작성하고, 계약금도 납입하고, 대출 신청도 하고 돌아와 '떨린다'며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기특했습니다. 우리 나그네가 1년 사이에 정말 자신의 자립을 준비해 떠난다는 소식에 마치 언니가 된 것처럼 기뻤어요.
첫 자립을 대출까지 받아 가면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한다는 사실이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고, 또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알기에 그녀의 자립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월세가 아닌 전셋집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일 년 간 나그네방에 머물며 기둥 같이 든든한 존재가 되어준 . 이제 한 달여 남은 입주까지 순리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그녀는 무리 없이 전셋집을 얻어 독립하는 멋진 나그네가 될 것입니다.
그간 나그네방을 운영하면서 여러 사람의 독립을 지켜봤지만, K처럼 좋은 집을 잘 구해서, 대출까지 수월하게 신청하고 무사히 독립을 이루어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번민을 겪기 일쑤였고,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가족과의 원치 않는 갈등을 겪는 모습도 흔하게 보았지요. 나 한 사람이 생활하기 위한 집을 구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자립을 준비하는 일은 길고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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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나그네방 이사를 준비하며 같은 고민을 합니다. 왜 이토록 집을 구하는 건 어려울까. 때로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은 그 사람에게는 홀로 걸어가기에는 어려운 길, 묻고 싶은 걸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막막한 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한편에는 언제나 우리를 돕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어서, 마치 선선한 가을바람이 내 등을 살며시 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듯, 주변의 다양한 손길이 그가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차분히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요. 이 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직감적으로 느끼고 경험을 통해 믿고 있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그 일이 그때 이렇게 풀리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나그네의 자립을 축하하는 밤, 나그네방을 스쳐간 또 다른 여러 나그네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공항동에 살고 있는 S, 보문동 나그네방 가까이로 이사 간 J, 서초에 살고 있는 M, 효창공원역으로 이사 갔던 K, 서대문구에 둥지를 튼 H까지. 나그네방이 시즌 3 공간을 마무리하고,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어느 산들바람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어려운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어깨를 살포시 안아줄까요. 나그네방은 누군가에게 도움닫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립을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 머물다 가는 곳, 빈 틈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넉넉히 머물다 가는 곳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