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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Oct 09. 2024

함께 사는 우리에게 밥이 중요한 이유

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지난 주말, 나그네방에 사는 세 사람이 모처럼 집에 모두 머물렀습니다. 어쩌면 나그네방 이사를 앞두고 다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사를 제안했습니다. <오늘 제가 밥 해드릴까요?> 하고요. 모두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배가 고픈지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올 동안, 저는 집안을 청소하며 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트에 다녀온다고 떠난 두 사람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어딘가로 새었나 혹은 둘이서 무슨 재미난 걸 발견했나 짐작하며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의 손에는 제가 요청한 닭볶음탕용 고기 이외에도 단호박 한 덩이와 떡 두 팩이 들려 있더군요.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 새로 생긴 동네 떡집에 들러 언제 이 떡집이 새로 생겼는지, 사장님은 어떤 분인지 야무지게 이야기도 들어오고,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이북식 인절미도 사 왔더랍니다. 그 모습이 반갑고 좋아 보였어요. 나그네방에서 처음 만난 낯가림 많은 두 사람이 어느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된 것 같았으니까요.


거실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저는 닭을 손질했습니다. 닭볶음탕에 넣으면 맛있을 것 같다며 사온 단호박을 잘 씻어 껍질을 벗기고, 먹을 만치 잘라 감자, 당근과 함께 냄비에 넣어 주었지요. 집에 있는 소스를 눈대중으로 대강 맞춰 양념장도 만들고,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안에 닭고기와 함께 넣어 맛있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맴돌며 배고픈 우리들의 코끝을 간질일 때까지, 우리는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배고프다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셋이서 둘러앉아 먹는 밥이 얼마만인지, 같이 살지만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참 드물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대화를 하는 사이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조촐하지만 아쉬움 없는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분명 고기와 채소를 많이 넣고 끓였는데, 굶주린 하이에나 셋이 달려 들어 먹으니 냄비가 금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살다 보면 관계가 어렵기도 하고,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때 서로의 감정을 잘 돌볼 수 있는 생활의 기술 중 하나가 밥을 나눠 먹는 일인 것 같습니다. 뜨끈한 국을 끓이거나,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 혹은 내가 대접하고 싶은 음식을 해서 같이 나눠 먹어 보세요. 밥을 먹다 보면 꼬였던 감정이 풀립니다. 밥 한 술 뜨며 서로 대화하다 보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밥을 지어줄 리 없고, 나를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내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을 리도 없으니까요. 같은 테이블을 셰어 한다는 것,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건 서로에 대한 동정과 애정의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남아 있을 때)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나그네방 시즌3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보문동 집은 독특하게도 운영자가 상주하지 않는 날이 길었고, 그래서 나그네들만 머물며 살았던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 사이 나그네방의 가치와 의미가 조금은 퇴색되지 않았나 걱정스러운 날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주춤하던 시간 덕분에 이제는 이 방의 존재를 다시금 돌아보고 존재 이유를 재건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나그네방은 대도시 안에서 누군가의 쉬어갈 곳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자립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도움닫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고, 이 활동이 갖는 의미이자 가치라는 걸 다시금 명시해 봅니다.  


번외

주춤했던 나그네방 대출 문제는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출 사전 자격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었는데요. 소명 자료를 모두 제출하고 자격 심사에서 다시 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난주, 은행에 가서 대출 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긍정적으로 검토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좋은 소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그네방은 늘 자신이 품을 사람을 스스로 부릅니다. 누군가 '나그네방에 자리 있나요?'라고 물으면, 저는 그걸 신호처럼 받아들이곤 해요. <아! 나그네방이 또 새로운 분을 품는구나> 말이죠. 지금 함께 하는 나그네 두 분이 모두 독립을 실현하면서 다음 나그네방 시즌4에 방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친구가 독립을 하고 싶다며 나그네방의 문을 두드려 왔습니다. 그녀의 물음을 받는 순간 반가움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혔어요. 바로 나그네방 시즌4가 원활히 흘러가겠구나, 대출 문제가 잘 풀리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나그네방은 지금까지 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왔고, 때가 되면 필요한 이들을 품어 제 역할을 해내곤 했으니, 이제 저와 이 친구를 품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물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리고 제 안에 올라오는 이 확신이 얼마나 반갑던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내내 긍정적인 확신에 사로 잡혔습니다. 나그네방이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감사했어요.


나그네방 시즌4의 시작이 보름 남았습니다. 이사 예정일은 10월 25일. 그전에 대출 심사가 완료되고 승인이 나면, 이제 정말 다음 챕터로 넘어갑니다. 오늘 제가 받은 강렬한 인상이 실현될까요? 나그네방의 여정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나그네방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품으며 성장할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이 시대의 필요를 채우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며, 필요한 도움을 전하며 그렇게 앞으로 전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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