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민낯은 숨을 틈이 적다. 반면 굳게 닫힌 방문 하나, 벽 한 칸 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고립될 수 있다. 숨을 틈이 적을 때, 우리는 답답함과 지겨움을 느끼고. 고립된 순간 속에서, 외로움과 단절을 경험한다.
그런 몇 번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됐다. 헤어져야 하는 사이도 있다는 사실을.
너와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맞지 않는 시절이 있다. 그래서 함께 지내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러니 헤어지자. 헤어짐을 말해도 슬퍼하지 말자. 구태여 엉킨 실타래를 풀겠다고 더 꼬지 말고 잠시 멀어지자. 나에게서 너를 지키고, 너에게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서로를 포기하자. 나에게 지옥을 건네지 말아라. 나도 너에게 지옥이 되지 않을 테니.
이 사실을 알기까지 숱한 이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숱한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내가 나그네방을 운영할 만한 사람이 되기는 한가. 내 인격이, 성품이, 그릇이 안 되는데?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내 욕심이 아닌가.>
한 번은 나그네방을 함께 운영하던 친구와 크게 싸워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하루 이틀 싸움이 아니라 반년 넘게 쌓인 앙금이 서로를 꼴 보기 싫은 존재로 만들었고, 거실은 폭풍 전야의 긴장이 감돌았다. 대화를 해도 오해가 쌓였다. 서로의 말은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다툼과 상처와 시기 질투와 온갖 부정적인 요소로 번졌다. 결국 그녀는 방을 떠나기로 했고, 나도 그맘때쯤 모든 상황에 지쳐 집을 떠났다. 두 사람이 모두 떠나니 남은 건 나그네뿐. 그렇게 나그네방은 처음으로 운영자가 부재한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싫어할 뿐, 나그네방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그네방에 대해 빚 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사적인 관계를 단절한 채로, 나그네방을 유지하자는 이상한 약속을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우리 사이에 거실보다 더 넓은 물리적 거리가 생기고, 서로의 행동을 오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생겼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관계를 재건할 수 있었다. 내가 나그네방을 돌보지 못할 때, 그녀가 나그네방을 돌보아 주었고. 그녀에게 나그네방이 필요할 때, 나는 나그네방 문을 열어 그녀를 맞아들였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고, 이제는 함께 걸으며 이야기한다. <그때 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헤어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녀와의 경험을 통해서 헤어짐에도 이유가 있고, 헤어짐이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로 상처만 남긴 채 모든 힘을 소진한 사람들처럼, 잠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회복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때는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 대신,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자리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다. 혹은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변해서, 이제는 서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최근 한 사람과 힘겨운 이별을 겪었다. 그녀가 보낸 마지막 문자를 읽지 않았고, 읽을 용기도 없었다. 읽는 순간 나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다'는 위로를 듣고 싶었던 걸까. 쏟아질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도 나그네방을 운영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속수무책으로 들지만, 이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보다는, '이번엔 조금 힘들었지만 괜찮아.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서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 희망을 연장한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에 사로잡히면 나그네방을 운영하며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을 지속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나그네의 생활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해야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고, 내가 바로 서 있을 때 누군가에게 쉬어갈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
나그네방 시즌 4를 위한 대출 심사가 모두 마무리되어 승인이 났다. 이제 보름 안에 이사를 준비해 새 집으로 옮기게 된다. 새로운 집은 나그네를 바로 맞이하기에는 생활 환경이 아직 많이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 6년 동안 사람들의 기부와 대물림으로 모인 가구와 가전 중 고장 난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가는 터라, 새 집은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채우기에는 나도 여유가 많지 않아서, 하나씩 천천히 주거 환경을 보완해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나그네방을 운영하면서 번번이 헤어짐을 경험할 것이다. 기분 좋게 독립시키는 나그네가 10명이라면 한 명 즈음 내 속을 후벼 파고 떠나는 이도 있을 테다. 하지만 계속해보자.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나그네방이 나를 넘어설 때까지 이 활동을 잘 보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