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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니버스 Mar 14. 2024

오늘도 여전히 쓸데없는 루틴에 빠진 ..

아침에 일어났더니 또 눈이 퉁퉁 부었네.


'어, 어제는 유투브도 안보고 미국주식도 안하고 일찍 잤는데 왜이래?'

거울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 쉬어진다.

일어나자 마자 폰을 찾아 간밤의 미국주식의 등락에 탄식을 감추지 못하고, 폰을 던져버린다.


습관처럼 면도기를 착착 갖다 붙이고는 윙 소리를 내며 얼굴 위에 꾹 눌러 밀어본다.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면 뭔가 남아있는 털들의 아쉬움으로, 꼭 면도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털많은 내 인생을 탓하리오, 새롭게 산 비싼 면도기를 탓하리오.


아침부터 투닥투닥 빠르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얼굴로 다가간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내인데 나보다 손도 마음도 빨라 그런지 아침식사 준비가 빠르다.

매일 아침,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해도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걸 잘 아는지 이제는 같이 하자는 얘기도 안한다.

미안한 마음에, '여보~' 하고 다정히 부르면, 언제나 더 다정히 '네~'하고 답이 돌아온다.


부스스 일어난 딸도 식탁에 뒤늦게 합류한다. 얼마전부터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챙겨입고 오는 모습이 여간 대견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언제 저렇게 컸나를 아침마다 입에 달고 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하고 더이상 얘기를 거두자고 쉬쉬해 본다.

오늘 아침은 가벼운 샐러드와 함께 식사가 시작된다. 샐러드 위에 견과류와 새콤한 발사믹을 뿌리는 건 나의 역할, 나보다 잘 뿌리는 사람은 없다. 사인 연습을 하듯 초록의 샐러드와 요거트 위에 휘휘 갈겨 써본다.


시간은 흘러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언제나 그랬듯이 차를 몰고 복잡한 도시의 거리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어제도 갔던 길, 오늘도 그 길을 똑같은 시간에 가고 있자니, 어제 끼어들었던 차에 내 뱉었던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욕들이 살짝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차에 하고 싶었던 얘긴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얘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나의 입에서 나온 그 욕은 내 귀에 잘도 꽂힌다.

이런 복잡하지도 않은 단순한 아침이 빨리 끝나려면 회사에서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겠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차에서 내려 날듯이 회사로 뛰어들어간다.

또, 시간에 맞춰 안전한 도착을 알려주며, 자리에 앉아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회사 포털에 들어가 출근을 찍어야 하는 내 인생이 서럽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시간보다 그렇게 해왔던 시간이 더 나에게 익숙하기 때문일 것 같다.

네이버를 열어놓고 로그인을 한다.

블로그에 들어가 어제의 방문자를 카운트해 보면서, 또 누가 들어왔나, 이웃이 되었나 찾아본다.

집에서 들고온 신문을 펴놓고 신문을 읽기 시작해 본다. 나는 따로 독립된 공간이 있어서 눈치보지 않고 신문을 편인데, 신문 넘기는 소리가 참 좋다.

처음에는 신문보는 것조차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해 보기도 했는데, 1년간 신문을 보다보니 이제 제법 글들이 눈으로 흘러들어온다.

신문을 보고, 메일을 한번 쭉 읽어보고 나면 꼭 9시가 된다.


이제부터 커피와 함께 주식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간밤의 미국주식과 함께 연금계좌의 변화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그다지 변화는 없지만, 뭔가 변화가 많았던 것처럼 계속해서 그래프를 쳐다본다.

한국주식장이 열렸다는 소리와 함께, 삼성전자의 주식을 먼저 살펴보고는 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또 간절해 진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주식가격, 하지만, 다른 주식들은 일제히 내리꽂기만 한다.

주식은 매일 먹는 주식이 될 수 없나보다.

이제 우리 헤어져야 할 때가 된건가 싶다가도 다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9시 10분이 되면 모든 상황이 끝나버린다. 주식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고, 이제 블로그에 들어가서 간단히 글들을 읽어본다.

다들 매일이 행복한 사람들 뿐이고, 다들 부자들 뿐이다. 어찌나 즐겁게 여행과 맛집들을 탐방하는지, 시간들은 어쩜 그리 많은 걸까.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가끔씩 또 다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솟아오른다.

부질없지, 부질없어. 비교하다가 모든 인생을 종칠 수가 있으니.


일에 다시 한번 몰두해 보지만 30분을 집중하지 못하고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인터넷을 뒤지는 건 일상이 아니라, 기계적인 팔의 움직임일 뿐이다. 눈은 거들 뿐 팔이 모든 일을 다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서로의 눈치를 봐가면서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까 고민한다.

오늘은 또 누가 점심을 사나? 더치페이하는건가하면서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보인다.

점심시간이 즐거워야 하는데, 점심시간은 또 다른 고민의 연속.


이제 퇴근 좀 해볼라치면, 시간은 왜그리 흐르지 않나.

비트코인 얘기들, 사기친 얘기들, 아이돌이 사고친 얘기들, 정치인들의 믿을 수 없는 스토리들이 난무한다.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이상하게 몰입이 된다.

그러지 말자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금방 보고 지나친 얘기들을 담아 나르고 있다.


퇴근한다.

오늘의 이 변하지 않는 루틴이 집에서도 계속 되겠지만, 그나마 얼마남지 않은 루틴의 끝은 뭔가 좀 의미있게 보내보고 싶어진다.


한잔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자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을 자면서도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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